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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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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 없는 가격 천원입니다”

등록 2008-04-25 00:00 수정 2020-05-03 04:25

지하철을 ‘비상구’ 삼은 행상들… 단속 벌금 최소화하는 ‘구역’ 내에서 ‘트렌드’ 상품을 판다네

가끔씩 기다려지는 지하철 그분

심심하다. 지하철을 타면 말이다. 오랜 시간 지하철을 타야 할 일이 생긴다면 그 긴긴 시간은 고통에 가깝다. 더욱이 마주 보게끔 설치된 의자 때문에 눈 둘 때라고는 바닥이나 천장뿐. 그래서 ‘스르륵’ 문이 열리고 입장하시는 ‘그분’은 가끔씩 기다려지기도 한다. “이 상품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다.



현재 서울 시내 지하철에서 이렇게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1천여 명에 이른다. 상인들은 여러 가지 상품을 취급하지 않고 가장 잘 팔릴 만한 한 가지에 ‘올인’한다. 그래서 그들이 고르고 골라 들고 나온 상품에는 계절별로 확실한 트렌드가 있다. 이제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자. 상품을 소개하는 그들만의 전략과 상품 트렌드를 읽을 수 있을 테니까.

▣ 글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이것은 화합물 반도체 특성을 이용한 전구입니다. 전후좌우 360도 회전이 가능하고요. 집게가 달려 있어 옷이나 모자에 부착이 가능합니다. 1천원짜리 한 장만 받겠습니다.”

4월15일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총신대입구역 구간. 정장 차림에 옷깃과 모자 챙에 플래시를 매단 김민배(58·가명)씨가 지하철을 오가며 능숙하게 물건을 팔고 있었다. 플래시를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남자이다. “밤낚시나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사가는 것 같아요.” 이날 김씨가 들고 나온 플래시는 모두 340개.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모두 200여 개를 팔았다. 그는 “장사가 잘된 날”이라고 했다.

100만원 소매치기 당한 날, 지하철에서

김씨가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기 시작한 것은 1998년 3월께다. 그 일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김씨는 한때 대전의 한 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사생활 3년 만에 미련 없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서울 고속터미널 근처에 꽃가게를 열었다. “돈을 벌고 싶었어요. 요즘에는 교사가 인기 직종이지만 70, 80년대만 해도 그렇지 않았거든요.” 꽃도매업을 하면서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꽃바구니 사업을 함께 시작했다. 꽃바구니가 입소문을 타면서 국방부에 의전행사용 꽃을 납품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꽃바구니 가계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1993년 김씨는 꽃사업을 접고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대형 건설업체의 하청을 담당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한창 사업을 키워나가던 차에 터진 외환위기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원청업체가 부도나면서 자신의 회사도 끝이 났다. 60여 평 대궐 같던 아파트는 14평 단칸방으로 바뀌고,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미 돈을 빌릴 대로 빌린 친구들과 친지는 찾아갈 엄두도 못 냈다. 하루하루를 술로 버텼다. 그런 생활이 반년 동안 이어졌다. 아내도 그와 이혼하는 길을 택했다. 아내는 떠나면서 고등학교 1학년과 중학교 2학년인 두 딸을 남겨뒀다. 그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고 했다.

충남 홍성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친구를 찾아가 어렵게 100만원을 빌렸다. 포장마차를 차려볼 생각에서였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해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지갑이 없었다.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었다. 그는 “어이가 없어 눈물도 안 나왔다”고 한다. 다 포기하고 지하철을 탔다. 그때 누군가가 지하철에서 볼펜을 팔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법한 풍경을 보며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그 사람을 3시간여나 쫓아다닌 끝에 물건을 구하는 곳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1998년 3월의 어느 날이었다. 초봄이었는데도 그날은 눈이 많이 내렸다.

담배 뒤에는 양치질, 월요일은 휴일

매일 새벽 첫 지하철에 올라 막차를 타고 올 때까지 물건을 팔았다. 소리를 크게 내다 보니 목이 부어 말이 안 나오기도 하고 가래를 뱉으면 피가 섞여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두 달여가 지났을 때, 중고생이던 두 딸이 눈치를 챘다.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에 상처가 컸을 거예요. 애들이 눈도 안 마주치더라고요. 대화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장 먹고살 게 막막했던 그는 매일 지하철에 올라 물건을 팔았다. 그렇게 1년여가 지난 1999년 어버이날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차를 타기 위해 옷을 걸쳤을 때 속주머니 속에서 뭔가 만져졌다. 손을 넣어보니 편지 한 장이 나왔다. “오뚝이처럼 살아줘서 고마워요, 아빠.” 큰딸이었다. 그는 이 편지를 여전히 지갑 속에 넣고 다닌다.

현재 서울 시내 지하철에서 김씨처럼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수는 1천여 명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사업에 실패하거나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밀리고 밀려 이곳까지 오게 된 사람들이다. 지하철 판매 경력 11년차인 신아무개(55)씨는 맞춤양복점을 운영하다가 기성복의 인기로 장사가 안되자 일찌감치 이 일에 뛰어들었다. 주부였던 정아무개(48)씨는 당뇨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와 방광암 수술을 받은 남편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3년 전 일을 시작했다. 노래방을 운영했던 우아무개(54)씨는 남편이 외도로 집을 나간 6년 전부터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우씨의 남편은 최근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우씨는 돌아온 남편에게 작은 트럭을 마련할 만한 돈을 내놓을 수 있었다. 남편은 현재 아파트 단지 등을 돌며 채소를 팔고 있다. 물론 성인오락실이나 경마장 등에 가기 위해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 동대문에서 지하철 상인들에게 물건을 공급하는 업체의 최아무개(52)씨는 “물건을 팔기 무섭게 오락실이나 경마장으로 직행하는 사람들도 많다”며 “그들은 성실히 물건을 파는 사람들과 달리 원칙이나 철학이 없다. 겉모습만 봐도 어느 정도 구분이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일할 때 항상 정장 차림이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손님에 대한 예의”라고 답했다. 담배를 피운 뒤에는 항상 양치질을 한다. 손님에게 물건을 설명할 때 혹시라도 담배 냄새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는 또 지하철 이용객이 많은 시간이나 손님이 많이 탄 칸에서는 물건을 팔지 않는다. 일을 할 때도 시간을 철저하게 지킨다. 매주 월요일은 쉬고 영업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회사에 소속돼 일을 하는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도매상에서 물건을 떼어와 파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은 회사에 소속돼 있다. 회사에 소속되면 초기 비용이 들지 않는다. 회사에서 물건을 받아다 팔고 팔린 물건에 대해서만 정산을 한다. 못 판 물건은 그대로 반납한다. 그래서 재고 부담도 없다. 회사는 이렇게 들어온 물건을 다른 판매원이나 도매상에게 되판다. 개인적으로 물건을 파는 경우 수익률이 높은 대신 팔지 못한 물건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엄격하게 말해 불법은 아냐

지하철 상품에도 트렌드가 있다. 상인들은 여러 가지 상품을 가지고 다니지 않고 한 가지에만 ‘올인’하기 때문에 상품을 잘 고르는 게 이문을 많이 남기는 요령이다. 외출이 잦아지는 봄철에는 플래시나 등산용 장갑 등이 인기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볼펜도 잘 팔린다. 겨울옷을 보관하기 위한 옷커버와 황사 마스크도 빼놓을 수 없는 계절 상품이다. 여름철에는 부채와 선캡, 모시 내의, 발목 스타킹 등이 인기다. 오이를 얇게 썰 수 있는 오이마사지기도 최근 뜨고 있는 품목이다. 여름 휴가철 특수도 있다. 칫솔이나 돗자리, 휴대전화 케이스 등의 판매율이 높다. 날이 조금씩 쌀쌀해지면 선풍기 덮개를 시작으로 파스와 무릎보호대, 안마기 등 ‘실버상품’이 인기를 끈다. 겨울철에는 핫팩이나 장갑, 그리고 ‘쫄쫄이’로 불리는 검정색 내의 등 방한 제품이 잘 팔린다.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이 가까워질 때 인기 있는 상품도 있다. 밤칼이나 만두틀이 잘 팔린다. 밤칼은 지난해 히트 상품이었다. 우산, 빨래바구니, 일회용 밴드, 면도기는 계절에 상관없이 잘 나간다.

지하철에 오르면 꼭 같은 곳에서 같은 상인을 만나곤 하는데, 이는 물건을 파는 장소에 일종의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종로3가~지축, 명동~총신대입구, 총신대입구~금정 식으로 ‘구역’이 나뉜다. 지하철 상인들은 한 구역 안에서만 맴돌며 물건을 판다. 이는 단속 때문이다. 상인들이 나눈 구역은 서울메트로나 도시철도공사의 단속요원들이 각자 나눠 맡고 있는 단속 구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하루에 여러 차례 단속에 걸리더라도 같은 단속요원에게 걸리게 돼 선처를 바랄 수 있는 것이다.

현행법상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행위는 엄밀히 말해 불법이 아니다. 2005년 개정된 철도안전법에는 이런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해놓은 조항이 없다. 지하철 단속요원들은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적발하면 ‘퇴거’ 조처만 할 수 있다. 지하철에서 내리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하철 상인들이 마음 놓고 물건을 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속요원들에게 적발돼 인근 지구대로 넘어가게 되면 ‘소란행위’라는 명목으로 3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늘 적발당할 위험에 처한 사람에겐 적은 액수가 아니다. 5호선에서 빨래바구니를 파는 최진철(49)씨는 “요즘 많이 벌 때는 하루에 6만원에서 7만원 정도 버는데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해도 지구대에 두 번만 갔다 오면 하루 일이 ‘허탕’이 된다”고 말했다.

“몸으로 느끼는 압박이 훨씬 심해졌다”

최근 단속이 부쩍 강화됐다. 김민배씨는 “몸으로 느끼는 단속과 압박의 정도가 전보다 훨씬 심해졌다”고 말한다. 김씨는 “나를 비롯해 이 일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더라”고 말한다. 노점상 경험이 있으니 자신들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아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관적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기초질서 확립을 강조했다. 이에 발맞춰 불법 노점상, 무단 광고물, 교통법규 위반, 폭력시위 등에 대한 엄정한 대처 방침이 세워졌다. 더욱이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지난 4월14일 사무직 308명으로 구성된 서비스지원단을 꾸려 ‘잡상인 등 지하철 안 무질서 행위 단속’을 강화했다. 지하철 상인들은 호소한다.

“우리는 외계인이 아닙니다. 지하철은 ‘막장’ 인생들인 우리에게 열린 유일한 비상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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