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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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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는 맥주다

등록 2008-04-04 00:00 수정 2020-05-03 04:25

동남아 여행과 함께 추억을 담은 맥주들, 신선하고 독특한 맛으로 ‘맥주파’들의 마음을 사로잡네

아시아 맥주 맛여행

독일은 맥주에 관한 한 폐쇄적인 나라다. 독일인은 물과 맥아, 홉으로만 맥주를 만드는 ‘맥주 원료 순수령’을 거룩한 룰로 받든다. 고집스러운 그들은 다른 나라 맥주를 믿지 않는다. 1987년 유럽공동체가 독일의 보호무역주의를 비판하기에 이르고 독일은 울며 ‘맥주’ 먹기로 외국산 맥주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외국 맥주 소비량은 늘어나지 않았다. 독일산 맥주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독일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맥주회사가 있다. 전국에 걸쳐 1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한국도 맥주에 관한 한 폐쇄적인 나라다. 수입 맥주의 시장점유율은 2%. 수입 맥주 회사들도 5%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산한다. 한국인들은 두 회사의 맥주를 꿋꿋이 소비한다. 그 두 맥주도 잘 가려지지 않는다. 생맥줏집에서는 “그냥 맥주 주세요”라고 하면 다다. 그러나 일본·중국·동남아로 쉽게 나들이 나가게 되면서 사람들이 달라지고 있다. “맥주가 이런 맛이었어?” 하고 놀란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짜릿한 첫 경험으로 각인된 아시아 맥주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부르기 시작했다.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 사진·정수산 기자 jss49@hani.co.kr

강현구(28·한양대 의료원)씨는 동남아 여행을 갈 때마다 꼭 그 지역 맥주를 맛본다. 타이의 싱하 맥주 맛은 특히 좋았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호프와 아로마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며 타이의 열대기후에서도 주눅들지 않는 강렬한 힘을 보여주는 맥주더라고요.” 베트남의 사이공, 333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에게 맥주는 여행의 활력소이자 오아시스다.

최고의 ‘메이드 인 아시아’

마들렌 빵이 아니더라도 맥주는 추억이다. 향을 맛보고 목으로 꿀꺽 넘기면 맥주의 탄산은 추억을 보글보글 터트린다. 주말을 이용해 아시아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부쩍 늘어났다. 우연히 들른 바에서, 노천 카페에서 마시는 맥주는 ‘떠났다’는 느낌을 잔잔히 스며들게 한다. 얼큰한 취기가 돌 때쯤 되면 맥주 마시기는 여행의 절정이다. 그렇게 하여 한국에 와서도 추억을 찾아나선다. 강현구씨는 싱하나 베트남 맥주인 사이공, 333이 생각날 때는 안산 국경 없는 마을의 타이 음식점이나 베트남 음식점에 들른다. 회사원 이주희(29)씨가 삿포로 생맥주를 찾는 것은 삿포로 여행에서 맛보았던 ‘최고의 맛’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의 맛을 다시 맛보지는 못했어요. 어쨌든 거품이 오래가고 부드러운 삿포로가 좋습니다.”

아시아 맥주는 ‘메이드 인 아시아’의 느낌이 별로 안 난다. 뛰어난 맥주들이 아시아에 즐비하다. 아시아 맥주는 20세기 초반 서구열강이 좋은 물을 찾아 세운 공장이 원조가 되었다. 칭다오 맥주는 독일의 조차지 시절인 1903년, 필리핀의 산미겔은 스페인 점령지 시절인 1890년 생산되기 시작했다. 식민 시대 비극의 산물이지만, 외세가 발견한 좋은 물은 그대로 맥주회사들의 자랑이 되었다. 맥주는 보리 발효 ‘물’이고 물맛은 맥주 맛을 좌우한다. 칭다오는 지금도 중국에서 유일하게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칭다오는 독일 개발자들조차 “독일의 오리지널한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놀랄 정도로 인정을 받는다. 산미겔은 세계 10대 브랜드 선정에 빠지지 않는다. 맥주는 필리핀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분야다. 싱가포르 타이거 맥주 역시 동남아인들이 즐기는 맥주다. 축구팬들이라면 동남아 국가대표 대항전인 ‘타이거컵’을 주최하는 타이거가 맥주회사라는 것쯤은 잘 알 것이다. 그만큼 동남아시아 최고의 기업이고 대중적이다.

열강이 물러나자 미군이 진주하면서 아시아의 맥주시장이 ‘라거’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라거 맥주는 ‘하면 발효’ 방식으로 톡 쏘는 맛을 중시한다. 동남아시아의 뜨거운 기후도 여기에 한몫했다. 하지만 맥주마다 독특한 맛이 있다. 타이거 맥주엔 부드럽고 균형 잡힌 단맛이 있고, 산미겔에는 보리와 효모에 잡곡이 더해지는데 이 잡곡향이 잔향에서 두드러진다. 칭다오는 독일 맥주 특유의 쓴맛이 난다. 라거가 많긴 하지만 다양한 제조공법도 발견할 수 있다. 타이의 스파이 와인쿨러는 와인처럼 발효시킨 뒤 탄산을 넣었고, 스리랑카의 라이언은 초콜릿 맛이 나는 스타우트 에일, 일본 은하고원은 벨지안 화이트(밀맥주로 장기숙성 맥주)다.

맥주 맛은 자연스럽게 아시아 문화에 맛을 더한다. 강현구씨는 맥주를 통해 그 나라의 문화를 ‘음미’한다. “베트남의 버어허이는 커다란 얼음에 띄워서 판매하더군요.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는데, 동남아 특유의 기후와 맞물려 뭐라 설명하기 힘든 매력이 있더군요. 맥주라는 게 서양에서 들어오긴 했지만 동양 여러 국가에서 나름의 문화적 기준과 척도를 통해 맥주 문화를 형성한 것 같습니다.” 그 나라 음식을 먹을 때는 그 나라의 맥주가 좋다. 중국어 전공자 김진세(32·가명)씨는 중국요리를 자주 먹고 그때마다 곁들여 칭다오 맥주를 마신다. “칭다오 맥주의 매력은 적당히 시큼한 맛이라고 생각합니다. 맥주 자체의 쌉싸래한 맛과 산도가 잘 배합되어 있어요. 칭다오의 시큼한 맛이 음식의 느끼한 맛을 상쇄해줘서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같은 가격이라면 판매량은 2배

아시아 맥주는 상대적으로 ‘신선’하기도 하다. 유럽산 맥주의 경우 운송 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생산 뒤 3개월 정도 지난 것을 맛보게 되지만, 아시아 맥주는 운송 거리가 훨씬 짧다. 타이거 맥주 수입사인 수석무역은 수입에서 유통까지 길어봤자 1개월 정도 걸린다고 말한다. 맥주의 유통기한은 기본적으로 1년이고 생맥주는 6개월이다.

일본, 중국, 싱가포르, 필리핀, 타이 말고도 말레이시아, 인도, 캄보디아, 버마 등에서도 한국으로 맥주가 수입된다. 그런데 아시아 맥주의 가격이 선택의 가장 큰 장벽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일본은 그렇다 치고, 필리핀에서는 물값보다 싸다는 산미겔이 한국으로 오면 국산 맥주 두 배 값은 족히 넘는다. 세금 때문이다. 수입 맥주는 원 가격에 약 180%의 세금이 붙는다. 먼저 관세가 수입원가의 30% 정도 붙고, 이 가격에 주세가 72% 붙는다. 그리고 주세의 30%가 또 교육세로 붙는다. 이 총합 가격(수입원가+관세+주세+교육세)에 10%의 부가세가 더해진다. 이리저리 따지면 수입원가가 1천원인 맥주는 관세 300원, 주세 936원, 교육세 280.8원, 부가세 251.68원이 붙어 공장도 판매가격이 2768원48전이 된다. 여기에 도·소매 유통마진 등이 더해지면 가격이 4천∼5천원 이상 수준에서 형성된다. 그래도 아시아 맥주는 수입 맥주 중에서는 싸다. 와바의 이효복 사장은 “수입 맥주 중에서는 하한의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격 형성에는 맥주를 담는 용기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맥주 매장에 가서 찬찬히 보면, 국산 맥주는 병맥주가 싼데 외국 맥주는 캔맥주가 싸다. 한국에서는 이 병들이 회수되지 않으므로 병값 할인이 불가능한 것이다. 필리핀 주점 판매용의 산미겔은 일반 판매용과 다른 통로로 들어온다. 재활용병을 사용한 맥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천원 이하로도 가격이 형성된다.

대표적 비관여 상품에서 브랜드 상품으로

그런데 이런 매력의 맥주들이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고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테마파크박물관 기획자 김혁씨는 “싼 아시아 맥주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엄청난 폭발이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조심스럽게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는 예가 있다. 서울 인사동의 쿠캔비어에서는 필리핀산 맥주인 산미겔을 2500원에 판매한다. 국산 맥주와 같은 가격이다. 원래는 3500원이지만 3월17일부터 행사를 시작했다. 반짝 이벤트이긴 하지만 ‘놀라운’ 가격은 ‘놀라운’ 판매율을 형성했다. 쿠캔비어의 한광희 대표는 “가격을 내린 뒤 전체 판매량의 3분의 2가 산미겔”이라고 한다. 매장에서 산미겔 생맥주를 마시던 회사원 김덕희씨는 “기호에 맞으니까요”라고 말한다. 산미겔 생맥주는 독특한 방법으로 싼 가격을 형성했다. 맥주통을 받아 유통시킨 뒤 다시 맥주통을 본국에 돌려준다. 산미겔 생맥주 수입사인 ㈜체트인터는 현재 100여 개 점포에 산미겔 맥주를 공급하고 있다.

전통적인 생맥주는 대표적인 ‘비관여 상품’이다. 그냥 “맥주 주세요”라고 말하지 “무슨 맥주 주세요”라고 하면 ‘맞는다’. 이 생맥주 시장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산미겔을 들여놓기 전 쿠캔비어에서는 ‘생맥주’만 팔았다. 지금은 생맥주가 두 가지로 늘었다. 산미겔과 한국 맥주. 한국 맥주를 선택하는 고객들은 여전히 하이트인지 하이트맥스인지 카스인지 따지지 않는다. 하지만 생맥주 시장에서도 맥주 브랜드화는 점점 더 가속화될 것 같다. 맥주만 주로 먹는 ‘맥주파’ 이주희씨는 ‘삿포로 라이온’에 자주 들른다. 그는 요즘 홍익대 주변이 섭섭하기도 하다. “편안하게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호프집이 많이 없어졌어요. 닭집 빼고요. 최근에 닭집에서 맥주 맛에 된통 당하고 나서 여기 자주 오게 됐어요. 어떤 생맥주가 나올지 모르는 데 비해 여기는 시킬 수가 있잖아요.” 서울에 4개의 매장이 있는 ‘아사히 오리엔’에서는 아사히 생맥주를, 역시 서울에 4개의 매장이 있는 삿포로 라이온에서는 삿포로 생맥주를 제공한다. 여기서는 한국 맥주도 하이트와 카스를 구별해서 판매한다. 삿포로 맥주의 가격은 8천원, 카스와 하이트로 구분되어 있는 한국 생맥주는 2500원이므로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삿포로 라이온 홍대점의 손주호 점장은 두 가지 생맥주가 비슷하게 팔린다고 말한다.

서울 편은 한국 맥주를 ‘싱겁다’(waterly)고 평한다. 배낭여행족이 모이는 더백패커닷넷(www.thebackpacker.net)에서도 한국의 한 맥주에 대해 ‘싱거워, 다른 한국 맥주들처럼’(Watery, like all Korean beer)이라고 적어놓고는 4점(10점 만점)을 주었다(그 밑으로는 한국에 거주했음을 밝히는 네티즌을 포함해 8점·9점·10점을 준 평가자도 눈에 띈다).

한국의 맥주 산업은 오랫동안 보호 속에서 자랐다. 주세법에 의해 독점 체제가 보호되었다. 독점 체제는 다양성을 가로막았다. 과거 주세법 시행령의 시설 기준으로는 1년에 2억ℓ, 그러니까 330㎖ 병으로 연간 6억 병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춰야만 맥주를 제조할 수 있었다. 설비 투자에만 최소 수백억원이 드는 규모다.

2002년 2월4일 주세법 시행령이 개정돼 ‘소규모 양조’ 맥주(하우스 맥주)가 가능해졌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뒤늦은 ‘허용’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조건이 붙었다. 매장 내에서만 맥주가 소비되어야 했다. 2008년 7월1일부터 발효되는 주세법 시행령에서는 매장 안에서 맥주를 사서 나갈 수 있도록 했다. 매장 간 공급도 가능하다. 여기에도 까다로운 조건은 붙는다. 동일인 명의 매장에만 공급이 가능한 것이다. 옥토버페스타 이원식 사장은 “맥주 같은 경우 프랜차이즈가 가능해지면 소비자 접근성도 높아지고 소비량이 늘어나면서 가격도 낮아질 수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한때 100곳까지 흥하던 하우스 맥주장은 현재 전국에 50곳 정도만 운영되고 있다. 인토외식산업의 이효복 대표는 7월에 발효되는 시행령도 반쪽짜리 법이라고 말한다. “독일의 유수한 맥주회사들은 하우스 맥주부터 차근차근 닦아나갔다. 국내에선 여러 가지 규제로 이러한 성장이 아예 불가능하다.”

한국 맥주도 다양성을 찾을 때

테마파크박물관 기획자 김혁씨는 “한국의 맥주 산업은 자동차 산업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국민들에게 몇 개의 맥주만을 건네주면서 선택아닌 선택을 강요해온 꼴이다. 시장의 보호로는 기술적 진보를 이뤄낼 수 없다.” 맥주 애호가들이 아시아 맥주의 다양성이 눈을 떠가는 요즘, 한국 맥주도 다양성으로 맞대응해야 할 차례다.



김혁이 고심 끝에 추천하는 아시아 맥주 10

문명을 안아보자, 레츠 드링크!

어떻게 하면 맥주박물관을 만들어 이 세상의 모든 맥주를 마셔볼 수 있을까 밤낮으로 궁리하는 나에게 아시아 맥주 10개 추천은 곤욕이다.
무엇보다 ‘일본 맥주’를 어떻게 배려할까가 난관이다. 아시아를 대표할 수 있는 맥주를, 일본 것에서만 30개 정도 내세울 수 있다. 일본에는 아사히·산토리·삿포로로 대표되는 3대 메이저급 외에도 200개가 넘는 토산 맥주들과 독특한 퓨전 맥주들이 넘쳐난다. 필스너 타입의 라거 맥주가 대부분인 다른 아시아 맥주들과 단순 비교한다는 것은 조금은 체급이 다른 선수들의 게임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음식은 혀끝으로 만나는 문명! 비싸봐야 몇천원 안짝의 대가를 치르고 맛보는 맥주들이지만 그 속에 쟁여진 장인정신과 역사의식과 문화와 문명은 장난이 아니다. 국내에 수입되는 친구들도 있고 아닌 것도 있으며, 현지에 가서도 이 친구를 맛보려면 상당한 발품을 팔아야 하는 희귀품도 섞여 있다. 그들의 문명을 안아보고 싶다면 반드시 레쯔 드륑~ 아~ 참 마딛군하~



① 은하고원(銀河高原)/ 일본
일본 이와테현의 토속 맥주. 독일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밀맥주로 고급스럽고 부드러운 맛이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푸른색의 병과 캔 디자인이 맛만큼이나 고급스럽다. 발효시 효모를 위에 띄우는 ‘상면 발효’ 맥주, 즉 에일(Ale)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하면 발효’ 맥주 라거의 반대 개념이다. 알코올 도수 5.5%.

② 아사히 슈퍼드라이/ 일본
시원하고 짜릿하고…. ‘맥주’라는 단어가 가진 모든 느낌을 다 가지고 있다. ‘드라이’라는 표현은 달지 않다는 뜻으로, 맥주를 만들 때 100% 완전 발효로 당을 완전히 제거해 쌉쌀한 맛을 강조했다. 1980년대 후반 처음 이 맥주를 기획했을 때, 아사히의 모든 고참 양조 기술자들은 고통을 주는 맥주 맛이라고 반대했지만 발매 뒤 대성공을 거뒀다. 최근 슈퍼드라이의 맛을 고급스럽게 차별화한 프라임 맥주가 인기를 끌고 있다. 알코올 도수 5%.

③ 칭다오/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생산되는 맥주. 몇 병을 마셔도 물리지 않는 세계 최고급의 품질이란 평을 듣는다. 칭다오 맥주가 독일 맥주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산둥성과 독일의 특수한 관계 때문이다. 1897년 독일은 칭다오 일대를 99년간 강제 조차(독일이 1차 세계대전 패배 뒤 돌려줌)하는데, 독일 사람들이 칭다오의 지하수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는 현지의 맥주 장인과 장비를 가져와 공장을 차렸다. 역설적으로, 여러 차례 개량을 해온 독일과 달리 칭다오는 처음의 기술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생산되고 있다. ‘마시는 독일제 골동품’인 셈. 알코올 도수 5%.

④ 싱하/ 타이
타이를 대표하는 맥주. 개인적으로 격찬을 아끼지 않는 맥주 중 하나다. 약간 도수가 높지만 특유의 쌉쌀한 맛과 청량감이 좋다. 매콤하고 짠 타이 음식에 특히 잘 어울린다. 뒷맛이 오래 남는다. 알코올 도수 6%.

⑤ 에비스/ 일본
일본 3대 맥주회사인 삿포로 맥주의 프리미엄 버전. 현대-제네시스, 도요타-렉서스처럼 모 브랜드를 내세우지 않고 에비스라는 고유 브랜드만을 사용하고 있다. 실제 상당수의 일본인들도 에비스 맥주가 삿포로 맥주와 상관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부드럽고 풍부한 맛이 일품이다. 알코올 도수 5%.

⑥ 라이언 스타우트/ 스리랑카
위스키 전문가로 더욱 명성을 떨친 마이클 잭슨(가수와 동명이인으로 위스키와 맥주에 관한 한 최고의 스페셜리스트)이 ‘위대한 맛’으로 격찬한 스리랑카의 흑맥주. 세계 최고급 초콜릿 리큐어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아름다운 맛이다. 강렬하면서도 깊은 맛과 향이 일품. 알코올 도수 8%.

⑦ 하얼빈/ 중국
칭다오보다 3년 앞서 1900년 생산된 중국 최초의 근대식 맥주로, 당을 최소화해 발효시킨 저당 맥주다. 조금 싱겁다는 느낌도 들지만 추운 지방의 맥주답게 톡 쏘는 맛이 진하다. 하얼빈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곳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지명이다. 안 의사가 거사 며칠 전 어머니와 가족,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이 맥주를 들이켜지 않았을까 망상(?)하며 마시면 감개무량해진다. 알코올 도수 4.5%.

⑧ 산미겔 페일 필젠/ 필리핀
필리핀을 대표하는 맥주. 실제로 세계 10대 맥주, 15대 맥주 등을 선정할 때마다 항상 상위에 랭크된다. 산미겔은 ‘라이트’(Lite)와 ‘다크’(Dark)도 있지만 중간쯤의 위치에 있는 ‘페일 필젠’(Pale Pilsen)이 가장 대표적이다. 은은한 향과 맛이 특징으로 맛이 조화롭다. 완성도 높은 맛이 느껴지는데, 필리핀 현지에선 물 대신 소비되기도 한다. 필리핀에서 산미겔 한 병이 20페소(400원가량)지만 에비앙 미네랄워터는 50페소(1천원가량)다. 필리핀 현지에서는 주로 얼음을 채운 잔에 따라 마신다. 깔끔하고 산뜻한 맛이지만 뒷맛이 오래 남는다. 알코올 도수 5%.

⑨ 마하라자/인도
인도에서 생산되는 맥주 중 품질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최상의 홉을 사용해 만든 정통 필스너 타입의 맥주로 마치 잘 만든 미국식 맥주를 마시는 듯한 상쾌함이 느껴진다. 부드러운 거품이 특징이다. 알코올 도수 5%.

⑩ 하노이 비어/ 베트남
맛이 강하다. 홉 특유의 씁쓸한 맛이 제대로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베트남 음식들과 궁합이 잘 맞는다. 더운 날씨 속에 먹기엔 조금 밍밍하고 탄산기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게 아쉽긴 하지만 매력 있는 맥주다. ‘맥주다운’ 맥주를 찾는다면 제격이다. 알코올 도수 5.1%.
▣ 김혁 테마파크박물관 기획자 http://blog.naver.com/khe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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