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한 대학 교정을 운동 삼아 어슬렁거리다 한 학생에게 담배 한 대를 꾸던 친구가, 아주 즐거운 경험을 했다. 학생은 자기가 태우는 담배가 마지막이라며 “담배 파는 곳은 후문 쪽에 있는데 사다드릴까요?” 했단다. 친구는 그 학생에게 교양 있고 다정하게 “아, 제가 갈게요. 고마워요” 라고 말한 뒤 돌아서는데 입이 절로 벌어지고 발걸음이 날아갈 것 같았단다. 그 학생이 분명 자기에게 마음이 있어서 친절했을 거라는 거다. 여보세요. 성질 난 여자 교수나 애 잡으러 온 학부모로 알았겠지.
이제 20대로 접어든 남학생이 30대 후반의 아줌마에게 친절하다면? 으하하하. 어쨌든 노동과 육아에 찌들어 사는 친구에게 그 학생의 한마디는 최소 두 달 동안은 ‘약발’ 먹히는 원기회복 자양강장제일 것 같다. 역시 대학은 지역사회 발전의 요람이다.
살다 보면 이처럼 건강한 착각도 있다. 선의의 거짓말처럼. 남자들이 제일 듣기 좋아하는 말은 ‘자기 참 괜찮은 남자야’가 아니라 ‘자기 참 잘하는 남자야’란 말이다. 영악한 암컷은 때론 이 말을 무기 삼아 단순한 수컷을 부린다. 너 그거 진짜 잘한다는 한마디에, ‘마님~’ 수준으로 다른 모든 것에 충성한다. 거꾸로 너 그거 진짜 못한다는 말은 관계를, 사람을 망친다(오빠, 미안. 그때는 내가 진짜 철이 없었어. 부디 좋은 사람 만나서 잘하길 바랄게).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말은 이래서 나왔나 보다. 성기능에 대한 남자들의 공포는 ‘더 크게 더 세게 더 오래 간다’는 속 보이는 광고들을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여자들은 어떨까? 그냥 잘해서 좋다가 아니라, 어떻게 왜 좋은지 디테일하게 묘사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어휘 구사력이 달리는 남자일수록 단순하게 칭찬했다가 꼬리 잡히기 십상이다. 그러니 어설프게 형이상학 하지 말고, ‘형이하학’에 매진해야 할까? 아니다. 이것 또한 ‘크고세고오래’류의 신화이다. 왜 성기능은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말기능에는 대범할까. 과묵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가부장제의 전통 때문에? 철 지난 핑계다. 게으르거나 이기적이라서다. 여자친구가 밤자리를 피한다면 듣고 싶은 말을 못 들어서일수도 있다. 마음을 읽어야 몸을 읽는다. 힘만 쓰지 말고 제발 머리 좀 쓰길.
일찍이 이 칼럼에 소개됐던 내 친구의 이모는 연하 남친에게 “자긴 어쩜 이런 것도 잘해”라고 허벅지를 슬쩍 쓰다듬으며 말하곤 한다(그것을 잘한다는 뜻이 진하게 배어 있음). 이런 언니들은 대체로 무거운 건 절대 들지 않는다. 따로 만나 눈을 부라릴지언정 남친 앞에서는 시비 거는 상대에게 상처받은 척한다. 한마디로 어머니같이 굴지 않고 여동생같이 군다(실제 나이는 어머니뻘이라도). 과도한 칭찬을 해주는 여자라면 둘 중 하나다. 찰떡궁합이거나 찰거머리이거나. 세치 혀로 남자를 쥐락펴락하는 여자들은 주로 ‘크고세고오래’류의 감성을 자극하는데, 평생 데리고 살 게 아니면서 맥락 없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은 모럴해저드, 아니 ‘오럴해저드’다. 다행히 내 친구의 이모는 평생 데리고 살면서 부릴 작정인 것 같으니, 뭐.
솔직히 늘 ‘크고세고오래’ 대접받는 것은 꽤 지루한 일이다(므훗). 재수없다고? 진짜 비극은 그중 하나만 유독 잘하는 거. 차라리 골고루 모자란만 못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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