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왜 어떤 여자들은 까발리는 반면 어떤 여자들은 함구할까. ‘헤픈 여자’와 ‘헤프지 않은’ 아니 ‘헤퍼 보이지 않는 여자’ 사이의 갈등과 투쟁 속에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발을 걸치고 살아간다. 여자든 남자든. 애든 어른이든.
얼마 전 이 칼럼의 마지막에 “내가 많이 헤플 거라고 생각하시는데…”라고 썼다. 그걸 읽고 한 친구가 “대체 헤픈 게 뭔데, 뭔데?” 하며 시비를 걸었다. 그녀는 이 단어에 알레르기가 있다. 일찍이 20대 중반 ‘헤프다’는 판정을 받고, 다른 범상한 여자들(대체로 말은 많은데 남자 운은 별로 없는)이 이를 널리 퍼뜨리는 동안, “내가 뭘 잘못했지?” 어리둥절해하며 쉼없이 남자를 만났던 그녀다.
‘헤픈 남자’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헤픈 여자’ 판정은 남자들이 내리는 것으로 이해한다. 과연 그럴까? 남자들은 그녀를 ‘공유’ 하고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다. 문제는 그걸 보는 여자들이 가만히 있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에게 비상한 재주가 있다면, ‘다가오는 사랑’을 마다하지 않고 어떤 상대라도 좋은 점을 찾아내어 사랑하는 것이었다. 과거에 아버지 사랑을 못 받은 것도 아니고, 숫자 채우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절세미인인가? 아니다. 야한가? 그것도 아니다. 수수하다면 수수하고 밋밋하다면 밋밋하다. 그래서 본인도 ‘기대 이상’ 남자가 꼬이는 걸 이해 못했다. 그러니 다른 여자들은 오죽했을까. 남자들이 그녀에게 보내는 호감을 이해 못했고, 나아가 안절부절못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쉽게 몸을 내주니까 꼬인다’는 단순하고 부박한 것이었다. 기꺼이 판관으로 나선 여자들은 ‘쉽게 몸을 내주면 남자들이 도망간다’는 신념으로 애꿎은 거울만 붙잡고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안 헤프니?’ 물으며 시간을 죽였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우리의 ‘헤픈 여자’는 이런 공격을 슬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데….
세월이 흘렀다. 서른 줄을 훌쩍 넘자 재미있는 현상이 생겼다. 떼를 지어 그녀를 ‘헤픈 여자’로 규정했던 그녀들이 하나둘 흩어지고, 하나둘 접근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철든 것일까? 아니면 원래 그녀들의 ‘경멸’은 ‘선망’의 다른 이름이었던 게 아닐까? 자신이 할 수 없는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혼동한 것 말이다. 누군가에 대한 질투를 인정하고 싶지 않으면 뒤집어씌우는 방식으로 자신을 합리화한다. 이런 마음속의 ‘찌질함’이 ‘헤픈 여자’들의 ‘뻔뻔함’과 화학작용을 일으키면, 심각한 사회현상이 된다. 이것을 씹고 또 씹어달라는 게 친구의 주문이었다. 지가 다 결론 내놓고 뭘.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친구는 요즘 이런 생각도 든단다. 한때는 “우씨, 왜 나만 미워해?” 했지만, 지금은 “그녀들이 날 소외시킨 게 아니라 내가 그녀들을 소외시켰던 게 아닐까?”라고. 여-여 관계의 모순은 ‘알고 보면 원래 다르다’는 게 아니라 ‘여자니까 같다고 착각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도 덧붙였다. 왜? ‘자극’보다는 ‘위로’를 얻고 싶어하니까. 왜왜? 그래야 안심이 되니까. 그 다음은?
어느 시인은 “나는 너다”라고 했지만, 오늘날의 ‘헤픈 여자’들은 이런 시를 쓴다. “나는 너 아니다.” ‘헤픈 여자’에 대한 정의를 재정립해야 할 시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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