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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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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

등록 2007-12-14 00:00 수정 2020-05-03 04:25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몸가짐이 정숙하고 단정한 이가 실제 펠라티오(혹은 쿤닐링구스)를 잘할 수 있고, 입만 열면 쿨하고도 핫한 이가 콤플렉스로 똘똘 뭉쳐 훔쳐보기만 하고 살 수 있으며, 허허실실 있는 거 없는 거 다 줄 듯한 이가 때와 장소를 심하게 가릴 수 있다. 그런 거다. 적어도 잠자리에 관해서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는 두 얼굴로 살아간다. 상대가 이율배반적이거나 골 때린다면 어느 정도는 나 때문일 수 있다.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니까.

물론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이도 있다. 아직도 자기가 ‘뻐꾸기’ 날리면 모든 여자들이 앞에 와서 자빠질 거라는 믿음을 굳건히 갖고 사는 그 오빠는 부친의 유언이 “여자에게는 무조건 이쁘다고 해라”였단다. 그는 나이 마흔 중반이 돼서도 여전히 소녀부터 누나들까지 몰고 다닌다. 그가 대단히 섹시해서라기보다는 대단히 말이 안 날 것 같아서인데,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심리학자는 융의 원형이론을 바탕으로 우리 안에 6개의 얼굴이 숨어 있다고 했다. 각각 고아, 방랑자, 전사, 이타주의자, 순수주의자, 마법사. 다는 몰라도 최소한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 정도는 알고 살아야 하지 않겠니?

올해 동료들의 눈을 맑게 해줬던 우리 사무실 훈남이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누가 오가며 틈만 나면 찔러대니 할 수 없이 실토했다는…). 메트로폴리탄적인 일상을 영위하며 자기 관리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또 그렇게 보이고자 하지만 실제 자기 안에는 일종의 ‘패배주의’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두어 해 전 언니들과의 관계에서 ‘질서 있게 퇴각’ 하고 한 명에게 ‘몰빵’ 했는데, 그 실패의 후유증인 것 같기도 하단다. 두부와 계란, 닭고기 등 깔끔한 식단을 선호하는 것도 순전히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인데, 근육을 키우는 이유는 배가 잘 안 들어가 다른 데를 나오게 하기 위함이라고도 했다(아무렴 어때, 다 괜찮아 괜찮아). 그가 금요일 퇴근 시간에 예쁜 옷을 입고 앉아 골똘히 고민에 빠져 있는 것은 주말 구상을 하느라 그렇다. 내용은 대략 ‘밀린 빨래를 하고, 셔츠 넉 장을 다려놓고, 욕실 → 베란다 → 방, 아니아니 방 → 욕실 → 베란다 순서로 청소를 한 다음, 뭐하지…?’.

이 ‘훈나미’는 요즘 용불용설의 공포에도 시달린다. 몸의 어떤 기관을 오래 사용하지 않으면 차차 약해지고 기능도 쇠퇴한다는 동물 진화설의 하나로, 네이버 백과사전은 “뿐만 아니라 그 크기도 작아져 마침내는 거의 없어지고 만다”는 무시무시한 설명을 담고 있다. 잘나갈 것 같은 사람도 이렇듯 남모를 고민을 안고 산다. 그런 그에게 네 안의 얼굴을 잘 찾아보라는 말은 하나 마나다. 너무 잘 알아서 탈이다.

한 대선 후보를 유독 싫어하는 친구가 어느 날 밤에 벌떡 일어나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이러다 진짜 거시기가 될 것 같아. 차라리 (그를 제칠 가능성이 그나마 있는) 머시기를 찍을 거야” 소리쳤더니, 파트너가 “그런 걸 두고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하는 거야”라고 말했단다. ‘홧김에 서방질’도 내 진짜 얼굴의 하나라면 뭐. 그래도 사람은 가려야 하지 않을까?

많은 분들이 내가 많이 헤플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결코 절대로 죽어도 그렇지 않다. 이렇게 지나친 부정을 하는 이유는 아주 진짜 무조건 그렇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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