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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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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장아찌[손바닥문학상 우수상]

조주영 작가
등록 2024-12-14 17:02 수정 2024-12-19 15:54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지니 네트워크 월간 리포트]

 

총 소통 건수: 40,378건

- SNS: 21,100건

- 메시지: 11,078건

- 기타: 8,200건

 

총 경조사비: 1,407,200원

- 모바일 쿠폰: 83,200원

- 현금: 1,200,000원

- 선물 배송: 124,000원

 

충전 포인트 잔액: 220,000원

습관처럼 메일을 확인하던 해영의 시선이 총 경조사비 1,407,200원에 멈췄다. 해영은 마늘장아찌를 집으려던 젓가락을 ‘탁!’ 소리가 나도록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 바람에 밥그릇과 반찬통 여기저기를 오가는 동안에도 끄떡없이 젓가락에 붙어 있던 밥풀이 식탁 위에 맥없이 굴러떨어졌다. 식탁 위에는 젓가락으로 휘적거린 흔적이 역력한 반찬통과 양념이 말라붙은 채 배를 까뒤집고 있는 뚜껑들이 자유롭게 널브러져 있었다. 해영은 양손 엄지로 핸드폰 화면을 최대한 확대했다. 분명 때 이른 노안 때문에 숫자 0이 두 개로 겹쳐 보인 것이리라. 1,407,200원이 아니라 140,720원이리라.

그러나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범인은 경조사비 중 현금 1,200,000원이었다. 해영은 메일 하단에 붙어 있는 ‘상세 명세 확인’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지니 네트워크 앱으로 넘어가며 요술 램프 모양 로딩 이미지가 뱅글뱅글 돌았다. 그와 동시에 해영의 머릿속에도 지난달 달력이 뱅글뱅글 돌아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난달에 경조사비가 이렇게 많이 나갈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앱이 열리며 월간 리포트 상세 내용이 화면에 펼쳐졌다. 경조사비 지급 건을 금액 높은 순으로 정렬하니 ‘김지현–조의금 300,000원’ 항목이 맨 윗줄에 나타났다. 그런데 바로 그 아랫줄에 ‘김지현–조의금 300,000원’이 똑같이 기재돼 있었다. 해영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난달에 이미지 메이킹 강사 에이전시의 김지현 차장이 모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건으로 지급된 모양이다. 바쁜 출근 시간에 경조사비 지급을 승인해달라는 알람이 와서 제대로 보지도 않고 확인 버튼을 눌렀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같은 건이 두 번 표기된 것은 오류가 틀림없다. 단순히 월간 리포트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뭔가 문제가 생겨 이중 지급된 걸까? 만약 이중 지급된 거라면 잘못 보낸 게 아닌지 연락이 왔을 법한데. 설마 그냥 받아버린 건가? 그럼, 잘못 보냈으니 되돌려달라고 해야 하나? 해영은 다시 젓가락을 들어 마늘장아찌를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별로 달갑지 않은 가능성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에이, 설마.”

해영은 찜찜함을 뒤로하고 리포트 첫 줄의 ‘김지현’을 선택했다. 화면이 핸드폰 연락처로 넘어가며 프로필난에 ‘김지현-모아에이전시 차장’이라는 문구가 떴다. 해영은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른 뒤, 이번에는 리포트 두 번째 줄의 ‘김지현’을 선택했다. 화면이 다시 연락처로 넘어갔다. 두 번째 김지현의 프로필을 확인한 그녀는 곧장 싱크대로 달려가 먹다 만 장아찌를 뱉어버렸다. 밍밍하고 시금털털한 것이 아무래도 상한 것 같다. 화면에는 ‘김지현–중학교 동창’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김지현은 해영이 중학생 시절 주로 어울렸던 아홉 명 무리 중 하나였다. 해영은 무리 중 다섯과는 단둘이 밥도 먹고 놀기도 했지만, 나머지 셋과는 그러지 않았다. 김지현은 그런 셋 중 하나였다. 무리 안에서는 괜찮지만, 굳이 단둘이 만나지는 않는 그런 사이. 이후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그런데 5개월 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 속 목소리는 도레미파 ‘솔’ 음역과 알레그로 속도를 유지하며 “나야, 나! 진화여중 김지현. 기억 안 나? 서운하다, 야”라고 퍼부었다. 해영의 머릿속에 김지현의 얼굴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그녀는 십몇 년 만에 갑자기 결혼 소식을 알렸다.

 

김지현의 결혼식 당일, 해영은 당연히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지니 네트워크는 그녀에게 축의금 3만원을 보낼 테니 승인해달라고 했다. 해영은 그대로 승인했고, 김지현은 결혼식 이후 중학교 동창들을 부른 집들이 모임에 해영을 초대하지 않았다. 그런 지현에게 갑자기 30만원을, 그것도 조의금 명목으로 잘못 보낸 거라면 영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침부터 이래저래 입맛을 버렸다.

해영은 발을 달달 떨며 지니 네트워크 앱의 홈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앱 초기 화면이 다 열리기도 전에 화면 오른쪽 하단에 둥둥 떠 있는 요술 램프 아이콘을 재빨리 눌렀다. 그러자 파랗고 통통한 몸, 끝이 갈퀴처럼 구부러진 검은 수염, 두툼한 입술까지 정교하게 재현한 지니 챗봇이 요술 램프 아이콘에서 빠져나와 화면을 가득 덮도록 커졌다.

“무슨 일이신가요? 도움이 필요한 내용을 이, 용, 요, 금, 과 같이 또박또박 말씀해….”

“전화 연결.”

해영이 챗봇의 안내가 채 끝나기도 전에 말했다.

“잘 알아듣지 못했어요. 조용한 곳에서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씀해주세요.”

“아오, 짜증 나.”

해영이 입술을 말아 훅! 하고 입김을 내뱉자, 며칠 감지 않아 떡 진 앞머리가 들썩이며 기름기에 반질반질해진 이마가 드러났다. 해영은 자신이 이미지 메이킹 강의 시간에 청중에게 가르친 것처럼 가슴을 쓸며 날숨을 내쉬었다. 여러분, 흥분될 때는 크게 심호흡하시고 입꼬리를 살짝 올려보세요. 흥분을 제어하고 미소 짓는 연습을 하다보면, 차분하고 선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어요. 해영은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또박또박 말씀해달라는 챗봇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상, 담, 원, 전, 화, 연, 결.”

“도움이 필요한 내용을 말씀해주시면 제가 먼저 도와드릴게요.”

“씨발, 진짜 짜증 나네!”

해영이 핸드폰을 식탁에 던지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방금 제가 욕설을 들은 것 같은데요?”

식탁에 널브러진 핸드폰에서 천연덕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처구니없는 챗봇의 반응에, 해영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던져버린 핸드폰을 다시 주워 들었다. 기분 탓인지, 화면 속에서 방긋 웃고 있는 지니의 입꼬리가 왠지 한쪽으로만 실룩 올라간 것 같았다.

“경! 조! 사! 비! 가! 잘! 못! 지! 급! 된! 것! 같! 아! 요!”

결국 해영은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가며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내용을 확인해드릴까요? 화면에서 선택해주세요.”

화면에 두 명의 김지현에게 지급된 경조사비가 떴다. 해영은 두 번째 김지현 항목을 선택했다.

“김지현님이 지급된 경조사비를 이미 수락하셨습니다. 회수 요청 진행해드릴까요?”

드디어 화면에 [네] [아니요] 버튼과 함께 [상담원 전화 연결] 버튼이 떴다. 해영은 얼른 상담원 전화 연결 버튼을 눌렀다. 김지현이 경조사비를 이미 수락했다는 사실이 의아하기도 어이가 없기도 해서 생각에 빠져 있느라,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지니 챗봇의 걸쭉한 목소리도 그다지 거슬리지 않았다.

상담원이 자신이 잘못한 일이 아님에도 잔뜩 미안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확인 결과, 예상대로 동명이인 김지현 두 사람에게 각각 30만원이 조의금으로 지급됐고, 명백한 서비스 오류였다. 상담원이 정말 죄송하다며 중학교 동창 김지현에게 회수 요청을 할 것인지 물었다.

상담원의 말에 해영은 핸드폰 뒷면을 검지 손톱으로 툭툭 치며 생각에 잠겼다. 약간의 쪽팔림만 감수한다면 소중한 30만원을 되돌려받을 수 있다. 본인이 직접 회수 요청을 하는 것도 아니기에 엄밀히 말하면 쪽팔림은 그녀의 몫이 아니기도 하다. 그러려고 비싼 구독료를 내면서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거니까.

“회수 요청해주세요. 그리고 왜 그쪽에서 경조사비를 수락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분명히 잘못 보낸 걸 알았을 텐데요.”

“네, 고객님. 확인해보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처리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불편하게 해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

 

1년 반 전의 일이다. 해영은 여느 때처럼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 누운 채로 핸드폰 화면을 가득 채운 알림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녀가 올린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준 사람들의 목록이 주르륵 떴다. 에스엔에스(SNS)를 열어 모든 새로운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다. 물론 정말로 그 게시물이 좋아서 누른 것은 아니다. 사실 게시물의 내용이 좋은지 아닌지 알 수도 없다. 그렇게 일일이 주의 깊게 읽어볼 시간은 없으니까. ‘내 계정’ 화면으로 돌아와보니 처음 보는 아이디로 누군가 사진에 댓글을 남겼다. ‘관심사가 비슷한 것 같아 반갑네요. 좋아요 꾹 누르고 갑니다’라는 댓글에 활짝 웃는 이모지도 잊지 않고 남겨주었다. 해영은 ‘반갑습니다. 소통해요’라고 대댓글을 남겼다. 계정 관리를 마치고 나니 한 시간이 흘렀다. 왼쪽으로 돌아누워 핸드폰을 했더니 볼살을 비롯한 모든 장기가 왼쪽으로 쏠려버린 듯했다.

알고 지내는 프리랜서 강사들이 SNS를 통해 강의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며, 이미지 메이킹 강사라는 직업 특성상 퍼스널 브랜딩은 필수이니 SNS를 하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계정을 열었다. ‘좋아요’ 답방(답장 방문)은 꼭 가야 한다, 이왕이면 댓글을 남겨라, 잘 찾아보면 ‘좋아요’나 댓글을 품앗이하는 커뮤니티가 있으니 들어가서 활동해봐라 등등의 조언에 따라 활동을 해보았으나, 팔로어가 늘어나는 속도는 영 시원찮았다.

해영이 지니 네트워크 서비스를 알게 된 것은 그맘때였다. 매일같이 쌓이는 대부업체 광고와 상한가 종목 추천 광고 가운데 지니 네트워크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에이아이(AI) 기반 온·오프라인 인맥 관리 대행 서비스. 심지어 한 달 무료 이용 후 자유롭게 해지 가능. AI의 이름은 요술 램프를 문지르면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였다. 속는 셈 치고 서비스에 가입한 그날 이후, 해영은 1년 반째 수시로 요술 램프를 문지르고 있다.

무료 체험 버전에서는 이용자가 선택한 최대 열 명에게 AI 지니가 안부 인사를 보내거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생일 메시지와 선물을 보내주는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용자가 할 일은 한 달 동안 연락할 열 명을 고심해서 뽑는 것뿐이었다.

해영은 한 달 동안 서비스 진행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대보다 훨씬 놀라운 수준이었다. 지니는 해영과 상대방이 나눈 기존 대화 내용, 주고받은 선물용 모바일 쿠폰의 금액, 상대방의 생일과 기념일, 심지어 문자로 받은 모바일 청첩장에 기재된 결혼식 일정까지 분석해서 연락을 돌렸다. 일례로 엄마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동료 강사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톤앤매너가 180도 달랐다.

지니 네트워크 서비스에 가입하기 전 해영이 엄마와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메시지는 반찬에 대한 내용이었다. 엄마가 ‘밑반찬 몇 개 해서 냉장고에 넣어놨다’고 메시지를 보냈고, 그녀는 별 답장 없이 대화창을 닫았다. 서비스 가입 후 지니가 엄마에게 ‘엄마 반찬 다 먹었어. 생큐’라고 답장을 보냈고 엄마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생일을 맞이한 동료 강사 K에게는 예의 바름과 딱딱함 사이 미묘한 경계에 있는 생일 축하 메시지와 함께 2만원 상당의 커피와 디저트 세트 쿠폰을 보냈는데, 이는 과거에 해영이 K에게 받은 생일 축하 쿠폰보다 정확히 1천원 더 비싼 쿠폰이었다. 이만하면 매우 훌륭했다. 아니, 오히려 그녀보다 훨씬 나았다.

무료 체험 기간 중, 독서 동호회에서 알게 된 회원이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왔다. 지니는 그에게 축의금 3만원을 지급할 것을 제안했다. 이 역시 그와의 연락 빈도, 서로 주고받은 경조사비, 해영의 기존 경조사비 지출 패턴 등을 분석해서 나온 결과였다. 충분히 합리적이라는 생각에 축의금 지급 승인 버튼을 누르는 순간, 여기부터는 유료 서비스라는 안내 메시지가 떴다. 해영은 망설임 없이 연간 정기 구독권을 결제했다.

 

***

 

현재 해영은 가장 비싼 구독료를 내고 풀옵션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관리 인맥 수에 제한이 없고, 이메일, 메신저, 채팅앱, SNS에 이르기까지 모든 온라인 연락망을 관리해준다. 심지어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간단한 회의나 모임에도 대신 참여해준다. 덕분에 아침마다 SNS를 열어 ‘좋아요’를 누르고 다니던 일상도 없어졌다. 지니가 해영이 관심 있을 만한 SNS 계정을 찾아가 대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겨주었다. 그녀가 무성의하게 남겼던 ‘반갑습니다. 소통해요’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고 따뜻한 댓글을 말이다.

서비스 이용 후, 천 명 수준에서 도저히 늘지 않았던 팔로어가 일 년 만에 스무 배가 늘어 2만 명을 넘어섰다. 이제 누가 뭐라 해도 인플루언서라고 말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숫자다. 지난 생일, 해영은 역대급으로 많은 생일 축하 메시지와 선물 쿠폰을 받았다. 매일같이 팔로어 수가 늘어났고, 쉴 새 없이 채팅앱이 울렸다.

해영은 지니 네트워크의 서비스 중 경조사를 알아서 챙겨주는 서비스를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관리하는 인맥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경조사 소식도 비례해서 늘어났는데, 지니가 경조사비를 책정하는 솜씨는 믿고 맡길 만했다. 누군가의 경조사 소식을 듣고 해영이 나름대로 마음속의 저울질을 마친 후 3만원이냐, 5만원이냐, 10만원이냐 경조사비를 결정하면 지니는 거의 틀림없이 그녀가 생각한 것과 똑같은 금액을 제시했다. 서비스 이용 초기에는 자신이 생각한 금액과 지니가 제시한 금액이 일치하는지 일일이 대조해봤지만, 지금은 그냥 믿고 맡긴다. 그의 결정은 헝클어진 머리카락 속에서 흰머리만 정확히 쏙 뽑아낸 듯, 늘 정교하고 개운했다.

이렇게 장기 충성 고객으로 만족스럽게 서비스를 이용하던 중에 경조사비가 잘못 지급된 사건이 발생해 해영은 몹시 심기가 불편했다. 이번에는 금액이 워낙 커서 이상한 점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지만, 그동안 알게 모르게 잘못 지급된 건들이 또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해영은 순간 등골이 싸해져 한동안 내버려두었던 지난 내용을 모조리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앱을 열려는 순간 핸드폰에서 또 다른 알람이 울렸다.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진행하는 온라인 독서 모임이 10분 남았다는 알람이었다. 아침부터 경조사비 건을 신경 쓰느라 아침밥도 먹다 말았고, 세수는 물론 눈곱도 떼지 못한 상태였다. 이 꼴로 화상회의에 참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영은 온라인 회의에 접속해 카메라와 오디오를 끄고 지니에게 회의 아이디(ID)와 오늘 이야기 나누기로 한 책 제목을 알려줬다. 이제 지니가 화면을 켜지 않은 이유를 적당히 둘러대고 그녀 대신 회의에 참여할 것이다. 뭐, 어차피 진짜 독서가 좋아서 시작한 모임이라기보다는 인맥 관리를 위한 모임이었으니까.

해영은 지니 네트워크 앱을 열어 메시지함을 선택했다. 메시지함을 훑어보던 해영의 미간이 점점 좁아졌다. 채팅앱과 연동되어 사람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은 기록, SNS와 연동되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단 기록, 경조사비와 각종 모바일 쿠폰이 오간 기록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아래로 화면을 끝없이 내리며 대략 500건까지 확인한 해영은 핸드폰을 식탁 구석으로 밀쳐버렸다. 이제 겨우 오전 10시, 눈뜬 지 고작 두 시간 만에 주고받은 내용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동안의 오류 건을 찾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해영은 양손을 얼굴에 마구 비비며 마른세수를 했다.

 

***

 

다음날, 해영은 새벽에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전날 아침에 먹은 마늘장아찌 맛이 어째 이상하더라니. 점심 이후부터 배가 사르르 아프더니 결국 새벽녘에는 침대에 눕기가 무섭게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심술 난 대장을 달래야만 했다. 덕분에 아침에는 완전히 녹초가 됐지만, 오늘은 몇 달 전부터 잡혀 있던 기업 신입사원 대상 이미지 메이킹 특강이 있는 날이라 기어서라도 나가야만 했다. 해영은 변기 위에 앉아 텅 빈 두루마리 휴지심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마지막에는 더 이상 비워낼 것도 없는지 물만 주르륵 나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강의 중간에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뛰어갈 일은 없을 것 같다.

해영은 강의 내내 머리가 핑핑 돌고 속이 메스꺼웠지만 가까스로 강의를 마쳤다. 강의실을 정리하고 있는데 지니 네트워크 고객센터 상담원에게 연락이 왔다. 김지현에게 잘못 지급된 경조사비를 돌려받아 지니 포인트로 재충전했다는 내용이었다. 죄송하다는 의미로 만 포인트를 추가로 적립해주었다는 안내도 덧붙였다.

“그리고 고객님, 별도로 요청하셨던 내용도 확인했습니다. 김지현님께 왜 경조사비를 수락했는지 여쭤보았는데요. 결혼식 축의금을 다시 보낸 건 줄 알고 수락했다고 하셨습니다. 예전에 축의금을 3만원만 보냈길래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참에 30만원이 도착했길래 당연히 해영님이 다시 축의금을 보낸 것으로 생각하고 수락했다고 하셨어요. 조의금으로 메시지가 갔을 텐데 축의금이라고 착각하신 게 의아해서 다시 여쭈었는데 사실 메시지 내용은 제대로 안 봤고, 모바일 봉투에 한자가 쓰여 있는 것만 보고 수락하셨다고 해요. 축의와 조의 한자를 헷갈렸다고.”

그 말에 해영의 코에서 콧방귀가 절로 나왔다. 앞으로 김지현과 연락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해영은 상담원에게 김지현을 블랙리스트에 추가해달라고 요청한 후 통화 종료 버튼을 따다닥! 하고 여러 차례 눌렀다. 물론, 다른 김지현과 절대 헷갈리면 안 된다는 신신당부도 잊지 않았다.

“쌤! 저 왔어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자마자 웬 남자가 해영의 눈앞에 얼굴을 쑥 들이밀며 알은체했다. 그는 인사와 동시에 커다란 리본이 달린 쇼핑백도 함께 내밀었다. 해영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재빨리 그를 살폈다. 깔끔하게 정리한 헤어스타일과 초롱초롱한 눈매, 어딘가 어색한지 자꾸 정장 옷소매를 매만지는 모습이 영락없는 새내기 직장인이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기억에 전혀 없는 얼굴이었다.

“아! 강의 들었어요?”

해영은 얼른 당황스러움을 지우고, 누구인지 묻는 대신 아는 척을 했다. 이렇게 친근하게 다가와 선물까지 주면서 인사하는 사람에게 도저히 누구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다른 데도 아니고 우리 회사에서 강의하시는데 당연히 와야죠. 그리고 직접 뵙고 감사하다는 인사도 드리는 게 예의일 것 같아서요.”

그의 말 때문인지, 또다시 복통이 도지는 것인지, 배 근육이 뭉치며 사르르 아프기 시작했다. 해영은 얼굴도 모르는 이 남자에게 무슨 감사받을 일을 했던 것인지 재빨리 뇌 속을 뒤졌다.

“솔직히 입사 축하 선물까지 챙겨주실 줄은 몰랐어요. 그동안 제가 취업 준비하면서 디엠(DM·Direct Message)이랑 댓글로 귀찮게 이것저것 많이 여쭤봤는데 하나하나 다 친절하게 대답해주시고 이미지 컨설팅 조언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쌤 덕분에 취업 성공한 거나 다름없는데 오히려 입사 축하한다고 먼저 챙겨주시고….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오늘 직접 뵙고 인사하고 싶었거든요. 저, 이거 작은 선물인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저번에 한소라 작가 좋아한다고 하신 거 기억나서 이번에 나온 신간이랑 독서대 같이 사봤는데 잘 고른 건지.”

남자가 곱게 정리한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제 복통에 이어 명치까지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놀이동산에서 제일 무서운 바이킹 맨 끝에 탄 채 아래로 내리꽂을 때 경험할 수 있는 울렁거림이다. 해영은 눈을 감고 머리 위에 요술 램프를 띄운 후 그것을 양손으로 마구 문지르며 빌었다. 빌어먹을 지니, 제발 나타나서 도와줘.

 

***

 

해영은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와의 식은땀 나는 대면을 마치고 어기적거리며 회사 주차장으로 빠져나왔다. 지하 주차장의 꿉꿉한 곰팡내에 급기야 속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먹고 배 속에 있는 것을 쏟아내기만 한 데다가 두 시간의 강의, 꺼림칙한 만남, 노트북과 무선 마이크 등 강의 장비가 담긴 가방까지 연달아 그녀의 어깨를 망치질하며 바닥 깊은 곳으로 박아버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서투른 망치질에 빗맞은 못처럼 바닥에 구겨지고 말았다.

해영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하얀 커튼에 둘러싸인 채 손목에 링거를 꽂고 있었다. 간호사 말로는 급성 장염으로 인한 일시적인 쇼크였고, 누군가 지하 주차장에 쓰러져 있던 그녀를 발견하여 119에 신고해 응급실에 실려 왔다고 한다.

“환자분 핸드폰이 계속 울려서 무음으로 바꿔두었어요. 급한 연락이 많은 것 같은데 한번 확인해보세요.”

핸드폰은 침대 옆 협탁에 얌전히 누워 쉴 새 없이 번쩍이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해영은 핸드폰을 들자마자 다시 침대에 던져버리고 두 손을 환자복에 문질러 닦았다. 화면 위로 끊임없이 넘어가는 각종 앱 알람이 마치 입을 벌려 손가락을 깨물려는 것 같았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해영아. 뭔 일이야. 엄마 청소하느라 메시지 이제 봤어. 급성 장염이라며. 괜찮아?”

“어, 엄마. 근데 어떻게 알았어?”

“네가 메시지 보냈잖아. 아직 정신이 안 들었어? 청소기 돌리다가 까무러쳤네.”

해영은 귀에 갖다 댄 핸드폰을 천천히 눈앞으로 가져왔다. 진동 모드도 아닌데 손에 쥔 핸드폰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지니 네트워크 앱을 열었다.

불과 1분 전, 급성 장염 쇼크로 응급실에 실려 왔다는 간호사와의 대화 직후 해영은, 아니 지니는 엄마에게 응급실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 시간 전에는 기업 이미지 메이킹 특강을 잘 마쳤다는 내용으로 SNS에 게시물을 올렸고, 30분 전에는 갑자기 응급실에 가게 되어 연락이 힘들 수 있으니 메시지 남겨주시면 순차적으로 답변드리겠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그 게시물을 올린 후 30분 동안 각종 SNS에서 엄청난 양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채팅앱 선물함에는 쾌유를 빈다는 메시지와 함께 모바일 쿠폰 선물이 실시간으로 쌓여가고 있었고, 받은 메시지와 선물에 대한 답장이 눈 깜짝할 새에 생성되어 전송되고 있었다. 해영이 눈으로 메시지 내용을 따라가는 속도보다 메시지가 생성되는 속도가 더 빨랐다. 지니가 수리수리 마수리를 외치며 금은보화를 끝도 없이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어서 이 마법을 멈춰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금은보화 더미에 깔려 죽고 말 것이다.

이렇게까지 많은 금은보화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

 

지니가 부려놓은 마법이 풀린 지 한 달이 지났다. 해영은 지니 네트워크 서비스 구독을 해지하고 앱을 삭제했다. 강의 제안을 제외한 모든 연락을 받지 않았고, SNS 활동도 중단했다. DM과 ‘맞팔’ 메시지에 응답하지 않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팔로어 수 그래프는 계단식으로 뚝뚝 떨어졌고, 무슨 일이 있냐는 메시지도 차츰 줄어들더니 한 달 정도 지나자 거의 다 수그러들었다. 그럼에도 해영은 습관처럼 핸드폰을 힐끔거렸다. 늘 과열돼 있던 핸드폰은 이제야 금속 본연의 차가움을 되찾은 듯, 냉랭했다.

한 달 전에 걸렸던 장염의 여파로 지독한 변비가 찾아왔다. 복부에 가스가 차오르며 부글부글 신호를 보내자, 해영은 오랜만에 찾아온 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얼른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자세를 잡았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두루마리 휴지를 꼭 부여잡고, 아랫배에 있는 힘껏 힘을 주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물이 찔끔 나도록 시원했다. 해영은 손에 든 두루마리 휴지를 뜯어 뒤처리한 후 물을 내렸다. 회오리치는 변기 속에서 휴지가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다가 힘없이 빨려 들어갔다. 해영은 변기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지니가 만들어놓은 그녀의 인맥은 단단한 동아줄로 만든 줄 알았지만, 마법이 걷히고 보니 고작 두루마리 휴지가 둔갑한 것이었다. 툭 당기면 끊어지고, 물에 녹아 싱겁게 풀어져버리는 그것. 요술 램프 속에 꾸역꾸역 붙잡아두었던 지니도, 두루마리 휴지 같던 관계들도 모두 싱겁게 녹아 없어져버렸다. 싱겁게, 아주 싱겁게.

“해영아, 마늘장아찌 이거 곰팡이 폈네. 버려야겠다. 에휴, 아까워라.”

해영이 개운한 표정으로 화장실을 나오는데 냉장고를 정리하던 엄마가 장아찌 통을 손에 들고 혀끝을 찼다.

“아, 장아찌. 저번에 그거 먹고 장염 걸린 거 같아. 치우려고 했는데 깜빡하고 그냥 뒀네.”

“냄새가 딱 이상하구먼, 상한 줄도 모르고 먹었어?”

“장아찌는 안 상하는 줄 알았지. 근데 장아찌에도 곰팡이가 펴?”

“잘 안 피긴 하는데, 싱겁게 담그면 숙성되기 전에 상해서 피기도 하지. 저번에 담근 게 너무 싱거웠나?”

엄마가 냄새를 맡아보라며 장아찌 통을 해영의 코밑에 들이밀었다. 시큼하고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해영은 그것을 한참 바라보다가 개수대에 쏟아부었다.

“다시 담가야지 뭐.”

 

조주영

 

 

수상 소감
제16회 손바닥문학상 우수상 수상자 조주영씨. 류우종 기자

제16회 손바닥문학상 우수상 수상자 조주영씨. 류우종 기자


제목 : 초심자의 행운을 지나

‘마늘장아찌’는 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많은 팔로어를 원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온라인에서 소통하는 것은 어쩐지 조금 어색합니다. 짧은 명령어만으로 근사한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미드저니 AI’를 유용하게 사용하면서도, 몇 가지 소재를 던져주면 순식간에 글 한 바닥을 써내는 ‘클로드 AI’를 보며 창작자의 미래를 근심합니다. 과도기 가운데 모순적으로 살아가는 저에게 ‘인공지능’이라는 주제는 미래가 아닌 현재였습니다.

응모하는 것 자체가 목표였던 첫 단편소설로 귀한 상에 이름을 올리게 되어 믿기지 않고 어리둥절합니다. 초심자의 행운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것도 모자라 초심자의 행운을 끌어 쓸 수 있도록 우주의 기운을 모아주신 심사위원분들과 관계자 여러분, 언제나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내주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깊은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행운은 지나갔으니, 앞으로 가혹한 시험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지금까지 그래왔듯, 기꺼이 시험을 맞이하며 뚜벅뚜벅 걸어나가겠습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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