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한때 직장 남편이 있었다. 밥도 같이 먹고 일도 같이 하고 간혹 잠도 같이 잤다. 회의실 구석의 낡은 소파가 우리의 잠자리였지. 지금은 다른 부서로 간 그에 대한 기억은 ‘낫 소 배드’(‘베드’ 아님). 회사 사람들은 물론 가족 친지 기타 등등의 뒷담화를 까며, 업무를 덜어주고, 누가 상대의 흉을 보면 잽싸게 달려와 고자질해줬다. 지금도 그가 삽겹살 회식을 하고 들어와 빈둥대다 야식으로 컵라면 하나를 해치운 뒤 코를 골며 자는 모습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많이 먹어 배를 꺼뜨리고 집에 가려다 잠이 든 거겠지만, 한 시절 밤샘 근무의 유일한 동반자였다. 내가 아그리파처럼 쪼개진 턱에 대한 페티시즘을 갖고 있는 걸 안 뒤로는 틈만 나면 손가락을 세워 턱을 문질러대는 재롱도 선보였다. 그는 나의 ‘펫 가이’였다.
그와 내가 원만한 직장 부부의 연을 이어간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 사이에 성적 긴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창때의 남녀가 성적 긴장이 없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뜻인데,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부부 만세였다. 하긴 밤낮으로 붙어 지내도 아무도 우리를 눈여겨보지 않았지, 쩝.
지난 연말 전세계를 놀래킨 해외 토픽은 중국 국영 〈CCTV〉의 베이징올림픽 관련 생방송 도중 다른 방송사 여성 앵커가 단상에 뛰어올라 마침 그 생방송을 진행하던 남성 앵커를 밀어내며 “두 시간 전 이 남자가 딴 여자랑 부적절한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폭로한 사건이었다. 둘은 부부다. 옷차림이나 발언으로 미루어보건대 ‘꼭지가 돌아’ 뛰쳐올라온 것 같았다. 여성은 남성을 향해 “그러고도 괜찮을 줄 알아?” “만천하에 공인으로서 있어서는 안 될 행실이다”라고 퍼부었다. 공인이든 사인이든 욕먹을 수 있으나, 꼭 그렇게 나 죽고 너 죽자 모드로 해야 했는지 묻고 싶다. 남편이 그렇게까지 가치 있는 상대였나요?
그러고 보면 CCTV가 언제나 문제다. 몇 년 전 서울 종로 바닥에는 한 외국계 기업의 사건이 널리 회자됐다. 각각 배우자가 있는 한 유부남 유부녀 커플이 틈만 나면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서 물고 빨았는데, 회사 안에 다른 ‘불미스런 일’이 생겨 CCTV를 조사하는 와중에 그야말로 만천하에 관계가 들통났다. 그러나 이들은 그 뒤로도 멀쩡히 회사를 다녔다. 아무도 얘기를 안 해줬기 때문이다. 둘은 계속 쉬쉬하며 애정행각을 벌였고, 둘을 제외한 모두는 쉬쉬하며 즐겼다. 어휴, 못됐다. 사내 연애에 너무 빠지면 이렇듯 온갖 정보에서 해맑게 소외된다는 가르침을 준 사건이다.
최근 우리 사무실의 짝없는 선남선녀에게 눈길이 꽂히고 있다. 지난해 마지막 날 그들이 같은 동네에서 각각 약속이 있어 같은 버스를 타고 갔다는 얘기에 “둘이 만나는 걸 거야”라고 한 해의 마지막 날 집 빼고는 갈 곳 없는 이들은 수군댔다. 정확히 말하면 진심으로 소망했다. 꺾어진 연배의 이들에게는 한창때의 그들이 “부디 했으면…” 싶다. 몸 되고 시간 되는 그들이 하지 않으면 누가 하랴. 소박한 엿보기이자, 내 삶에 더 이상의 사건 사고가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처연한 예감이다. 그러니 얘들아. 업무로 기여하기 어려우면 연애질로라도 조직에 기여해주길. 새해 복 많이 받고 덕 많이 베풀어야지. 보시가 별거냐? 응? 그러니 어서 해,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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