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이번 편은 ‘독자 초대석’이다. 소개한다.
“이 일은 제 개인의 문제를 넘어 관계 보편의 문제이기에 용기를 내어 편지를 씁니다.
오늘 산부인과에 다녀왔습니다. ‘콘딜로마’(성병의 일종)라더군요. 사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 1년 전 모씨와 마지막 관계를 가진 뒤였는데, 병원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미루다 일이 커졌습니다. 모씨는 큰일 낼 사람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콘돔을 죽어도 안 쓰려고 해요. 감이 떨어진다나요. ‘우주복 입고 마라톤하는 기분’이랍니다. 게다가 자기는 정자 함량이 치명적으로 적어서 병원에서 이대로 가다간 불임이 될 거라 했답니다. ‘그래도 꼭 콘돔을 써야 돼!’ 다짐하면 ‘응, 알았어’ 어물쩍 넘어갑니다. 삽입 직전에 ‘아, 저기’ 했더니 덥석 키스를 하데요. 제 말을 막으려고 그랬다는 혐의가 지워지지 않네요.

그간 제 성생활에 죄의식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강요한 적도, 내 의지를 거슬러 한 적도 없습니다. ‘능동적 주체로서 즐거움을 누린다’가 모토였는데, 그 핑크빛 기대가 진흙탕에 처박히는 기분입니다. 병원 접수를 하고 간호사의 묘한 시선을 견디고 진료대에 다리를 벌리고 누워 금속성 물질들이 그곳을 헤집고 찌르는 것을 참아냈습니다. 임신이 아니고 이 정도인 게 다행이라 자위하기도 했습니다. ‘서로 필요에 따라 즐겼다’는 명제 아래 깔린 무책임함과 남은 책임을 혼자 뒤집어써야 하는 이 더럽고 치사한 상황이라니요. 아, 돈도 무지막지 깨지고. 그놈은 이걸 알까요?
어이없는 사례가 또 떠오르는데, 어떤 남자는 ‘원나이트’ 하는 여자에게 병원 진단서를 보여준대요. ‘정관수술 했고, 성병 검사 결과 이상 없음. 그러니 콘돔 쓰지 맙시다.’ 검사 날짜 뒤로 또 누구랑 잤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진단서 떼어 보여주는 그 갸륵한 정성으로 ‘오리지널 사가미’ 같은 고급 콘돔 좀 찾아보라지요. 제 사촌언니의 미국인 남친도 ‘너 같으면 광랜 쓰다가 전화 모뎀으로 돌아가고 싶냐’면서 끝까지 버틴다니 이 개념 상실은 국제적인 문제인가 봅니다.
이런 놈 한둘이 아니에요. 모씨도 박식하고 글 잘 쓰고 여자들이 혹할 만한 남자인데(그래서 저도 혹했…), 그 사람 블로그의 수많은 찬양성 댓글에다 ‘이놈 섹스할 때 콘돔 안 쓰려고 발악하는 색히예요’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도 아니고…. 아, 당나귀 귀는 짧지는 않죠. 이 인간 그러면서 섹스 칼럼도 씁니다. 말이 됩니까?
세이프 섹스. 이거 백만 번 천만 번을 강조해도 모자랍니다. ‘콘돔 안 쓰는 넘들은 매장해야 한다’고 으름장 좀 놓아주세요. 이 바닥에서 퇴출시켜야 합니다. 저는 거금을 투자해 이놈의 콘딜로마를 박멸하고 당분간 정숙하게 살렵니다. 앞으로 ‘나의 쾌락’보다 ‘너의 안전’을 더 신경쓰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모를까요. 수업료 내고 공부했다 생각하기로 맘먹었지만, 병원 영수증을 보니 다시 화딱지가 납니다.”
이 독자께 보낸 답메일이다. “비용 청구하세요. 앞으로 발생할 비용까지. 모씨가 개전의 정을 안 보이면 가까운 사돈의 팔촌 범위 안에서 실명 까세요.”
이로써 장안의 여성들이 공유할 블랙리스트를 한 번 더 ‘업데’한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임은정, ‘한명숙 사건’ 소환해 백해룡 저격…“세관마약 수사, 검찰과 다를 바 없어”
![[단독] 김용현 변호인 ‘감치 15일’ 집행 못 했다…남은 5일은? [단독] 김용현 변호인 ‘감치 15일’ 집행 못 했다…남은 5일은?](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226/53_17720869463045_20260226502791.jpg)
[단독] 김용현 변호인 ‘감치 15일’ 집행 못 했다…남은 5일은?

국힘 지지율 17% “바닥도 아닌 지하”…재선들 “절윤 거부에 민심 경고”

이 대통령 “투자·투기용, 1주택자도 보유보다 매각이 유리하게 할 것”

박정훈, ‘항명’ 기소 군검사 재판서 “권력의 사냥개들” 비판

‘재판소원 육탄방어’ 조희대 대법원…양승태 사법농단 문건 ‘계획’ 따랐나

조희대, ‘노태악 후임’ 선거관리위원에 천대엽 내정

기초연금 개편, 차등 지급·수급자 감축 검토

러시아 “돈바스 내놓고 나토 나가”…선 넘는 요구에 우크라전 종전협상 ‘난망’

트럼프 새 관세, FTA 맺은 한국은 유리…기존 세율에 10% 더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