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아프리카 노예들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두 권의 책</font>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우연히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아이티에 대한 책 두 권이 동시에 나왔다. 이 멋진 우연은 우리를 아이티의 현재와 과거로 안내한다.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지음, 이두부 옮김, 이후 펴냄)은 아이티의 빈곤 문제에 대한 사회운동가의 통찰을, (C. L. R 제임스 지음, 우태정 옮김, 필맥 펴냄)은 프랑스혁명과 함께 시작된 아이티 흑인 노예들의 해방전쟁을 보여준다.
아이티란 어떤 나라일까. 이 나라의 이름을 들으면 우리 뇌는 관심 영역에서 영원히 추방된 나라들의 목록을 잠시 뒤적이다가 곧 다른 일을 하게 된다. 아이티는 1804년 세계 최초로 노예해방 혁명을 성공시키고 독립을 쟁취한 나라다. 제3세계에 특히 무관심한 대한민국 시민들이 잊고 있는 진실. 우리는 점점 타자를 이해하지 않는 것이 폭력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부터 살펴보자. 카리브해의 영국 식민지였던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태어나 전투적 마르크스주의자로 평생을 살아온 지은이는 아이티 노예해방 운동의 역사를 계급적 관점에서 구성한다. 아이티 혁명사 연구에 기념비가 된 책이지만 역사 연구서라기보다는 소설처럼 읽힌다. 이 역사극의 정점에는 투생 루베르튀르라는 혁명가가 서 있다.
1629년 프랑스의 모험가들(혹은 그렇게 오인되는 부랑자와 범법자들)이 산도밍고 섬의 북부 해안에 상륙했다. 사탕수수 농장이 번성한 아이티는 1789년 프랑스 해외무역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부유한 식민지였다. 그러나 이 섬은 카리브해의 소돔과 고모라였다. 농장 건설과 함께 유럽인이라면 몇 분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악취가 나는 선실 속에 주검들과 뒤엉킨 아프리카인들이 실려 들어왔다. 노예들은 1789년 46만 명에 이른다. 곧 백인 농장주들의 약탈과 강간으로 생긴 제3의 인종, 물라토(흑백혼혈)가 등장한다. ‘더러운 풍요’가 혁명의 시작이었다. 백인 농장주들은 차마 입에 옮기기도 힘든 잔혹한 방법으로 흑인들을 지배했다. 물라토들은 백인과 흑인의 중간지대에 서서 백인의 마름 역할을 하며 그들에게서 받은 경멸을 흑인들에게 돌려줬다. 그리고 멀리 본국에서 프랑스혁명의 소식이 들려온다.
백인 농장주들은 왕당파니 애국파니 편을 가르며 싸웠지만 오직 자신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있었다. 물라토들도 정치적·경제적 권리를 따내기 위해 일어섰다. 프랑스의 의회, 백인, 물라토들은 서로 아귀다툼을 벌였지만, 아프리카 노예들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어느 날 갑자기 노예들의 폭동이 시작된다. 혁명 초기 폭동은 지배층의 분열 사이로 터져나온 분노였지만, 곧 조직화된다. 투생은 마흔 살이 넘어 혁명에 참여해 탁월한 지도자로 부상한다. 그는 농장주와 프랑스군뿐만 아니라 군침을 흘리며 들어온 스페인군과 영국군의 침공도 막아낸다. 지은이는 자신이 아는 한 세계 최고의 전략가는 나폴레옹과 투생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폴레옹 군대에 잡혀 생을 마감했지만 아이티의 아프리카인들은 세계 최초의 해방을 이뤄낸다. 지은이의 관점에 따르면 아이티 혁명은 중앙아메리카 모든 지역에 영향을 끼쳤으며 쿠바 혁명에까지 이른다.
은 아리스티드가 빈곤 문제에 대해 쓴 8통의 편지다. 그는 반독재 투쟁에 앞장서다 세 차례 대통령직에 오르고 모두 쿠데타로 쫓겨났다. 2004년 미국이 주도한 쿠데타 때엔 유명한 미군의 ‘납치’ 논란을 일으켰고 아직까지 아프리카에 유배돼 있다. 책은 2001년 그의 동지였던 르네 프레발이 대통령직에 있을 때 쓰여졌다(‘동지’ 프레발은 지금 우여곡절 끝에 다시 대통령직에 올라 아프리카에 있는 아리스티드의 입국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그의 글엔 아이티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애정이 가득하다. 그의 언어는 따뜻하고 명상적이다. 그는 미국과 세계기구가 처방한 ‘신자유주의’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가 얘기하는 제3의 길은 ‘존엄한 가난’이다. 대안은행, 문맹퇴치, 어린이 구호활동 등 여전히 가난할지라도 ‘뱃속의 평화’와 ‘머릿속 평화’를 이루는 길을 조근조근 설명한다. 그가 지금 어떤 처지에 있든, 이것은 제3세계의 모든 빈자들을 위한 실현 가능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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