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사유에 대한 쉽고 재밌는 접근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강신주 지음, 이학사 펴냄)는 정말로 철학과 삶을 만나게 한다. 이런 유의 제목을 단 책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유치한 장광설을 늘어놓을 때가 많다. 따라서 대부분 책의 제목은 거짓말이다. 이 책을 책상 한켠에 밀어놓은 이유는 책의 촌스러운 표지를 보자마자 이런 편견에 휩싸였기 때문이다(아, 제발 이 책이 2쇄를 찍을 정도로 팔린다면 표지와 제목을 바꿔주시길!).
인문학의 대중화는 우리 시대에도 진보다. 인문학은 정부가 쥐어주는 용돈으로 살아남아선 안 된다. 인문학은 정부에 엄살을 떨기 전에, 알몸으로 대중 앞에 서야 한다. 는 철학을 무장해제시킨다. 경어체로 쓰인 재기발랄한 문장들을 보면 새봄의 강의실과 호기심에 가득 찬 신입생들과 그 앞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철학자가 연상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알기 쉽게 쓴 철학 입문서인 것은 아니다. 지은이는 모든 철학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오른 철학의 봉우리들로 독자들을 안내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전망들만을 자신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책은 철학적 사유에 대한 생각, 사랑·가족·국가·자본주의 등을 ‘낯설게 보는’ 사유, 행복한 삶을 위한 철학적 성찰 등으로 짜여 있다. 이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이 아닐까 싶다.
‘철학의 은밀한 두 가지 흐름’이라는 장의 내용만 살펴보자. 지은이는 니체-들뢰즈, 마르크스-알튀세가 교차하는 어떤 지평 위에 서 있다. 그는 우발성과 필연성에 대한 이야기로 입을 연다.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바쳤다. 어떤 사건엔 반드시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고 믿는 치들은 풍랑을 잠재우기 위해선 심청이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반대로 우발성을 인식하는 사람은 심청과 풍랑이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필연성에 대한 맹신은 폭력이다. 이야기는 알튀세의 유고집으로 이어진다. 알튀세는 인간이 생각해내고 인간을 지배해온 모든 의미들은 비와 어떤 곳의 만남 같은 무의미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우발적인 만남에서부터 의미가 출발한다는 것이다. 알튀세는 이런 철학적 전통을 에피쿠로스에서부터 찾는다.
마르크스는 헤겔과 같은 필연성의 철학을 거꾸로 세우려 한, 우발성의 철학자였다. 모든 만물에 ‘도’라는 절대적인 필연성이 있다고 생각한 노자와 달리 장자는 우발성을 적극적으로 인식한 철학자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뢰즈는 무한한 만남으로 이루어진 리좀을 이야기하며 우발성의 전통을 잇는다. 지은이는 앞으로 삶을 철학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할 때 우발성과 필연성을 반드시 염두해두라고 조언한다. 이것이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일 것이다. 여기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가 훌륭한 안내자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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