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이력을 가진 필자들의 성장과 고통을 담은 <젊은 날의 깨달음>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젊은 날의 깨달음>(조정래·박노자·박홍규·홍세화 외 지음, 인물과 사상사)은 제목이 좀 수상스럽다. 이런 유의 제목을 떡하니 달고 있으면 십중팔구는 젊은 날의 낭만을 신화화하거나 “내가 젊었을 땐 이랬는데…” 하는 훈계조의 글들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홍세화, 박홍규, 정혜신, 고종석, 손석춘, 박노자 등 전혀 ‘꼰대스럽지’ 않은 필자들 때문이다.
하나의 주제로 여러 필자들의 글을 묶는 것은 필연적으로 산만함의 위험을 안고 있다. <젊은 날의 깨달음>도 이것을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책의 필자들은 자신의 젊은 날을 신화화하지 않고 조근조근 당시의 상처와 고통까지 털어놓는다. 그들이 열어놓은 기억의 서고는 낭만성의 허공에 떠 있지 않고, 과거와 현재의 부조리한 현실 속에 박혀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글은 아직 ‘젊은 날’을 벗어나지 못한 박노자 교수의 글이다. 그의 젊은 날은 한국과의 만남을 통해 시작됐다. 그는 권력이 주입해놓은 환상 속에선 전혀 다른 국가였던 한국과 러시아가, 실은 전혀 다르지 않은 나라라는 것을 깨닫는다. 즉, 그는 경계를 넘어서 ‘타자’와 내가 같음을 경험했던 것이다.
소련이 무너진 뒤 옐친의 신자유주의 정권 아래에서 한국은 미국의 적자이자 자본주의 개발 정책이 성공한 몇 안 되는 나라로 선전되었다. 재벌들은 “노동자가 일체가 되어 충성하는 대가족과 같은 사업체”로 보도되기 일쑤였다. 박노자 교수는 텍스트 속에 존재했던 ‘미지의 유교적 왕국 코리아’와 수업 때 듣고 익혔던 ‘사회·경제적으로 기적을 이룬 나라 코리아’를 안고 한국에 도착한다. 그는 고려대에서 “다시 태어났다”. 학생들은 논어 대신 체 게바라나 마르크스를 읽었고, 사회에 팽배해 있는 권위주의와 자본주의적 욕망은 러시아에서 너무 익숙히 봐온 풍경이었다. 억압에 대한 저항도 러시아와 한국이 다르지 않았다. 결국 박노자 교수는 민족·문화·문명의 특수성을 설파하는 것이 지배층들이 벌이는 세계적인 커다란 사기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씨의 젊은 날에는 다른 전문의에게 정신분석을 받는 고통이 담겨져 있다. 처음 내면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온통 눈물바다였다. 정신분석을 받을수록 어린 시절부터 그의 가슴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슬픔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의사에게 온갖 분노와 질투와 적개심과 사랑을 쏟아냈다. 자신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본 뒤, 그는 “나와 환자 사이에 어떤 격차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박홍규 교수의 젊은 날을 들여다보면 그가 왜 대학사회를 경멸하는지 알 수 있다. 대학 1학년 시절, 그는 법정에서 친구가 공산주의자라고 증언한 교수를 학부장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농성을 벌였다. 10년 뒤 교무처장이 된 그 교수는 박홍규 교수의 임용을 결사반대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에야 그는 교수로 받아들여졌다. 박 교수는 교수사회가 사교클럽으로 전락해버렸다고 거침없이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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