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유족들은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큰 충격과 슬픔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3대에 걸친 일가족이 희생되거나, 부모와 자녀가 한 번에 희생되는 등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의 고통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유가족은 아직도 왜 우리의 가족이 그토록 비참한 죽음에 내몰렸는지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조사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 주시길 바랍니다.”
박한신 제주항공 참사 유족협의회 대표가 2025년 1월1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안 질의’에 참석해 호소했다. 여야 의원들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저녁까지 국토교통부, 한국공항공사, 제주항공 등을 상대로 질의를 이어갔다. 회의에선 179명이 목숨을 잃은 대형 항공참사가 발생하기 전, 수많은 전조 증상과 경고가 있었음에도 무시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나라 공항은 대부분 도심이 아닌 한적한 바닷가나 강변에 있다. 이 때문에 항공안전장애 발생 유형을 살펴보면, 최다 발생 유형이 ‘조류충돌’(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항공안전기술원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제2차 항공안전정책 기본계획’)이다. 2021년엔 전체 항공안전장애 가운데 48%(1만 운항당 426건 발생)를, 2020년엔 전체의 34%(1만 운항당 295건 발생)를 차지했다. 유엔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 아이카오(ICAO)는 공항 반경 13㎞ 내에는 조류보호구역을 설정하지 않도록 하고, 국토교통부도 8㎞ 이내에는 조류보호구역 금지를 명문화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특히 전남 무안국제공항 주변에는 환경 관련 보호구역이 9곳가량 있어, 이전에도 조류충돌과 관련한 우려가 다수 나왔지만 개선은 없었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환경청이 2020년 조류충돌 저감 대책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는데, 2024년 3월 제출된 무안공항 활주로사업 사후 환경영향조사 결과통보서를 보면 ‘이행 시기가 미도래했다’고 답했다. 여기에 대해 특별히 한 게 없다고 보고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신공항을 8개나 추진 중인데 새만금, 가덕도, 백령공항, 제주2공항, 흑산공항 모두 철새도래지다. 이거 어떻게 할 거냐”고 덧붙였다.
정부 관계자뿐 아니라 제주항공도 조류충돌 문제에 무관심했다. 참사 불과 열흘 전 무안국제공항 조류충돌예방위원회가 열렸고 이때 ‘조류충돌’과 ‘복행’의 위험성에 대한 지적이 나왔는데도 바뀐 건 없었다. 김희정 국민의힘 의원은 제주항공 김이배 대표에게 “제주항공도 (조류충돌예방위 참석 대상인데) 두 번 다 왜 참석 안 했느냐”고 묻자 김 대표는 “일정이 맞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조류충돌예방위를 운영하도록 국토부 고시에 버젓이 나와 있는데 회의 결과를 반영 않은 국토부도 잘못이고, 당사자(제주항공)가 1년 동안 한 번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있다. 국가 회의체조차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 게 사고를 키웠다”고 비판했다.
참사 당시 무안국제공항에 근무하는 조류퇴치 인력은 단 1명(한국공항공사 자회사 남부공항서비스 소속)이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현재까지 사실 (조류퇴치) 인력 투입이 ‘조류활동 기준보다 비행편 수를 기준으로 한 측면이 없잖아 있다”고 인정했다. 박 장관은 “지역 공항은 비행기가 적게 떠서 투자가 적어 안전시설이 미비”하다는 말도 했다. 특히 박용갑 민주당 의원은 무안국제공항 조류퇴치 방식에 대해 “총포, 폭음경보기 등 재래식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미국·일본은 이미 2012년부터 조류 탐지 레이더” 등 첨단 장비를 도입했지만, 우리나라는 “15개 공항 모두 조류 탐지 레이더를 전혀 갖추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비판했다.
통상 6개월에서 3년은 걸린다고 이야기하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 조사가 이제 막 시작된 상황이기에 아직 사고 원인은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전문가들은 참사가 난 제주항공 여객기(보잉737-800)에 ‘조류충돌’과 ‘양쪽 엔진 고장’이 있었고, 이에 랜딩기어도 내리지 못한 채 동체착륙한 여객기가 감속 없이 콘크리트 방위각시설(로컬라이저) 둔덕과 부딪히면서 희생자 규모가 커졌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도 참사의 일차적 원인으로 추정되는 ‘ 조류충돌’ 대책 미비에 대한 비판이 집중적으로 나왔지만 , 충돌 이후 상황을 고려하면 ‘제주항공 여객기 결함’도 의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용기 민주당 의원은 “(블랙박스) 녹화도 (마지막 4분) 진행이 안 됐다”며 “조류충돌은 굉장히 많은데 이렇게까지 기계가 아무 대처를 못할 만큼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 정비 불량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고 여객기가 사고 직전 48시간 동안 13차례 운행했다. 국내만 왔다 갔다 한 것도 아니고, 중국·타이·말레이시아·일본·대만·무안·제주 전부 다 갔는데 대체 언제 정비하느냐”고 비판했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제주항공이 월평균 운송시간 및 법규 위반이 가장 많았다”고 지적했다.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가 국토부 규정에 맞게 제주항공 정비사 수를 운용하고 있다는 취지로 답하자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블라인드 제보를 보면 정비사들이 13시간 동안 쉬지도 못하고 일했다 하고, 사고 전 이틀간 13차례 35시간 운행해 저가항공사(LCC) 가운데 가장 혹독한 수준인데,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라 가슴으로 말씀하셔야 할 때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국토부는 사고 여객기 블랙박스의 비행기록장치와 음성기록장치 분석 결과 ‘충돌 전 마지막 4분’ 기록이 저장되지 않았지만, 레이더 항적 기록, 활주로 랜딩마크, 기계 위치 등을 분석하면 원인 규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박 장관은 또 콘크리트 둔덕 등이 설치된 것으로 확인된 전국 7개 공항에 대해 “즉시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유가족 사고 조사 참여와 관련해선 조사 직접 참여는 아이카오의 국제 기준과 관련 절차에 따라 어렵지만 “유가족들이 전문가들의 직간접 조력을 받아 의견을 조정하는 장치”를 만들 것이며, 사고 조사 내용을 “단계마다 유가족에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도 말했다.
또 이날 회의에서는 “2002년 중국 민항기가 김해공항 인근에 추락한 사고 때 법적 보상이 끝나는 데 10여년이 걸렸다. 원인 규명이 잘 안 되면 기체결함이냐 공항 과실이냐 등 책임소재를 놓고 법적 분쟁이 오래가 배상 문제가 있다”며 끝까지 신경 써 달라는 당부(민홍철 민주당 의원)도 있었다.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악플러·유튜버 대처 문제와 관련해선 손명수 민주당 의원이 “국토위 차원에서 악성 댓글에 대해 엄중 경고하고 엄벌에 처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자”고 말했고,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도 “결의안에 적극 찬성한다”고 말했다.
참사 직후 누구보다 먼저 사과받고 참사 원인에 대한 설명을 들었어야 할 유가족들이, 초반엔 이로부터 소외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와 임직원들은 참사 직후인 2024년 12월29일 오후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카메라를 향해 고개 숙였는데, 정준호 민주당 의원은 무안국제공항에 있던 유가족들이 “저 사람들(제주항공 쪽)은 누굴 향해 사과하는 것”이냐고 했으며,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이 열리는 걸 보면서 “뉴스를 보고 알 거면 우린 왜 여기 있어야 하냐”는 말이 나왔다고 비판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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