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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길라잡이] 논술은 ‘견문싸움’이다

등록 2004-03-05 00:00 수정 2020-05-03 04:23

질문: 논술 글쓰기를 평소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첫째는 논술글 결론은 너무 당연한 소리라고 할 만큼 지극히 일상적으로 잡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논술글은 원고지 10장을 통해 깜짝 놀랄 만한 결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더불어 살아야 한다,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배려해야 한다, 편견을 버려야 한다’와 같은 주장이 결론이어야 합니다. 이런 일상적인 것을 피해 독특하게 결론을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글쓰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논술 시험은 당연한 결론을 수험생이 어떤 과정을 통해 확신하는지를 출제자가 본론을 통해 확인하겠다는 시험입니다.

둘째는 어떤 것이 효율적으로 자신을 잘 드러내는 구조이며 문장인지를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을 말로 설득할 때 일부러 억양을 높이거나 낮추기도 하고, 특별한 단어로 상대방을 일부러 자극하기도 하는 것처럼 글로 어떻게 상대방을 효율적으로 설득할 것인지를 궁리해야 합니다. 즉, 한 단락 처음에는 조용히 시작하였다가 단락 끝에서 단호히 끊을 것인지, 어떤 내용으로 구체적인 예로 삼아야 할지, 어떤 단어가 상대방을 자극적으로 설득하는지를 틈틈이 확인해야 합니다. 가령 자기 생각을 어려운 단어로 표현하여 독자를 제한한다면 잘 쓴 글이 아닙니다. 김소월 시인처럼 쉬운 단어로도 얼마든지 수많은 독자에게 자기 정서를 정교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결국 글솜씨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셋째, 평소에 견문을 넓혀야 합니다. 오늘날 논술글은 말 그대로 견문 싸움입니다. 뻔한 논리를 어떻게 맛깔스럽게 전달하느냐가 오늘날 논술 시험의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리 사회가 대체로 획일적이고 단순하였다면 오늘날 사회는 다양하며 변화가 극심합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어떤 상황을 남과 다르게 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개발 논리에 익숙한 사회에서는 환경을 보존하자는 주장이 사치스러운 소리였지요. 그러므로 10년 전 논술 시험 출제자는 수험생이 이런 개발론자들의 획일적인 논리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였지요. 즉, 어떤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고 질문하여 ‘환경을 보존해야 한다, 체벌을 없애자, 지역 감정은 나쁘다, 편견을 버려야 한다’가 결론이 되도록 유도하였지요.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런 주장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므로, 이런 결론을 두고 왜 그런지를 설명하는 것이 각자 달라야 합니다. 따라서 중3 학생보다는 고2 학생이, 고2 학생보다는 고3 학생이 나이 한살이라도 더 많으므로 더욱 성숙하고 어른스럽게 답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중3 학생과 고3 학생이 안락사를 찬성한다 하더라도, 중3 학생이 교실에서 배운 대로 대답할 때, 고3 학생은 실제로 고통받는 환자 옆에서 수발을 들거나 수발 드는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자기 것으로 확신한 것을 서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견문 싸움이라는 것은 단순히 책상에 앉아 편하게 지식을 습득하라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지식을 느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오늘날 논술글은 자기가 확신하지 않고는 상대방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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