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태 전 청와대 정무수석 인터뷰… “당선 이후 측근들이 수십억 받았으면 노 대통령 사임할 것”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유인태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이 야당의 주장대로 수십억원대의 검은돈을 받은 것으로 검찰이나 특검 수사에서 드러날 경우 대통령은 직을 깨끗이 내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선 이전에 돈을 받은 것은 나름의 불가피성도 있다고 노 대통령도 자인하는 바이지만, 대선 이후의 행위는 심각한 충격”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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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상당한 의석을 얻게 되면 참여정부 첫해와 달리 의원들의 입각도 많아지고, 당의 국정 참여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에서 서울 도봉을구에 출마하기 위해 최근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그만둔 그를 3월6일에 만났다.
“다른 일이 더 생긴다면 대통령은…”
유 전 수석은 측근비리와 관련해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입당 문제를 검찰이나 특검의 수사가 끝난 다음에 결과를 봐서 결정하겠다고 한 게 빈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수사 결과에 무게와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는 노 대통령이 집권 뒤 참모들과의 사석에서 이런 다짐을 몇 차례씩 했다고 전했다. “여러분이 활동하려면 자금이 필요할 텐데 여러분이 조달해서 쓰라고 하면 불법을 하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만들어서 주면 어떤 형태든 내가 불법을 하는 꼴이 된다. 그러니 다들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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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대선 당시 편법 모금도 아닌, 대선 뒤 불법자금 수수 행위에 대한 노 대통령의 충격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고 그는 전했다. 유 전 수석은 “그렇게 돈을 받지 말라고 했는데 일이 불거졌으니 노 대통령의 불안감이 오죽하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약에 이번 사건(여택수 전 청와대 행정관의 롯데자금 수수 행위) 말고 정권의 도덕성에 심대한 타격을 가져올 다른 일이 더 생긴다면 노 대통령의 성격상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밝혀진 최도술·안희정·여택수씨 비리는 과거 정권의 측근비리에 비해 경천동지할 액수는 아니다”라며 “검찰 독립 덕택에 대통령 측근비리가 초기부터 밝혀지는 등 권력 실세라고 해서 ‘부패 면허증’을 받을 순 없게 된 변화도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이래 제왕적 총재 시대의 마감과 여당과 청와대의 분리를 선언했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민주당이 신당 창당을 놓고 내홍을 겪은 끝에 분당으로 치닫던 복잡한 상황 때문에, 당무 불간여 입장을 대외적으로 견지해왔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유 전 수석은 나름의 물밑 역할을 해온 사실을 인터뷰에서 공개했다. 그는 민주당 분당과 관련해 “김원기, 정대철 의원 등 당시 신주류 중진들이 신당 창당을 망설임에 따라 신당이 주저앉을 무렵, 이상수 의원 등을 만나 ‘의원 30명만 탈당하면 신당이 성공할 수 있으니 모아보시라’고 말해 의기투합을 이룬 적도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에서 탈당을 불사하고라도 신당을 하겠다는 의원이 9~10명밖에 안 되던 상황에서, 자신이 나름대로 불을 붙이는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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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실세’는 과도한 주장
그는 “노 대통령은 ‘공천도 당선도 보장해줄 수 없는 내가 나서서 어떻게 할 일이 아니다. 당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며 “노 대통령에게 보고하거나 상의하지 않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와중에 김원기 의원한테서 “대통령 생각도 아니면서 왜 분당을 부추기고 다니느냐”는 힐난도 들었다고 한다.
유 전 수석은 이 밖에 열린우리당의 당권 구도를 놓고 김원기 의원을 비롯한 중진그룹과 정동영 의원 등 소장파 사이에 힘겨루기가 벌어지던 무렵에도 나름의 조정 역할을 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이 무렵 상경한 부산 측근들과의 사석에서 “총선을 치르려면 대중성 있는 인물이 당의 간판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말이 사실상 ‘노심=정동영 간판론’으로 해석되면서 김 의원쪽이 노 대통령한테 크게 서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열린우리당 소장파와 중진 그룹 사이에 서로 대화도 잘 하지 않으려던 상태에서 양쪽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오해를 풀도록 하기도 했다”며 “국회의원이 다시 되면 당내 그룹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매개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정무수석으로 재직하던 기간에 386 측근들과는 코드를 달리한 편으로 알려진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이 천정배 열린우리당 의원한테서 ‘과도한 실세 노릇을 한다’는 비판을 받고 낙마한 일도 일어났다.
이와 관련해 그는 “이광재, 안희정씨가 대통령과 스스럼없이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는 특수한 관계임에 분명하다”며 “그러나 첫 내각 조각 단계가 지난 뒤 청와대 수석비서관 체제가 갖춰진 뒤로 적어도 인사 문제에 이들이 이렇다 하게 관여한 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에 “공기업체 감사 등의 자리에 대선 공신을 임명해야 할 때 누가 좀더 적합한 공신인지 따위를 판단하기 위해선 이광재씨의 역할이 필요했다”며 “정부 출범 초기에는 이광재씨에게 간접적으로 의견을 묻다가 몇달 뒤에는 해당 보직을 논의하는 몇 차례의 인사위원회 자리에 이광재씨를 직접 참석시켜 의견을 개진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 전 실장이 제한적 범위에서나마 인사 과정에 역할을 했음을 밝힌 셈이다.
그러나 그는 “천정배 의원 등의 비판은 대통령이 여당을 소홀히 대우한 데 따른 불만의 표출로 생각된다”며 과장이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유 전 수석은 노 대통령이 대 국회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려는 데 따라 역할의 혼선을 겪은 과도기적 존재로 해석될 것 같다.
그는 “과거 제왕적 총재 시절에는 청와대에서 버튼만 누르면 통법부가 알아서 법안을 처리해줬지만 지금 상황은 전혀 그게 아니었다”며 “게다가 여야 정당 관계자를 만나도 돈이 되건, 민원 처리이건 아무것도 들고 나갈 수단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나중에는 아예 법안 처리 협조를 위한 국회 상대 업무를 각 부처가 하도록 했다”며 “정무수석실의 업무는 (대통령의 정무 관련 일정 등의) 기획과 시민사회를 상대로 한 설득에 한정됐다”고 말했다.
총선 이후 당의 국정참여 확대될 것
그는 자신의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고 비어 있는 사정과 관련해 “대통령은 정무수석의 개념을 바꾸려고 후임자도 학계 등에서 찾으려다 일단 보류한 상태”라며 “문희상 비서실장과 내가 그래도 정치권 사정에 밝은 정치인 출신이 해야 총선 뒤 여당 관계를 원만히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해 일단 총선 뒤로 인선을 미룬 상태”라고 밝혔다.
유 전 수석은 총선 뒤 다수당에 총리 제청권을 부여하겠다고 한 노 대통령의 과거 발언과 관련해 “지역구도를 타파하는 제도개혁(중대선거구제 등)이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구애받을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참여정부 1년간은 대통령이 여당과 거의 아무런 협의 없이 국정을 운영했지만 계속 그렇게 하면 당이 소외감을 참지 않을 것”이라며 “총선 이후에는 당의 국정 참여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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