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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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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제 실형 선고 이제 그만!

양심적 병역거부에 무죄 판결한 첫 항소심
등록 2016-12-29 15:02 수정 2020-05-03 04:28
2016년 12월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참여연대 활동가 홍정훈(가운데)씨가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2016년 12월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참여연대 활동가 홍정훈(가운데)씨가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2004년 서울남부지법이 물꼬를 튼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판결. 이후 1심에서 무죄판결 12건이 이어졌다. 그러나 항소심에선 번번이 뒤집혔다. 12년 만에 한 걸음 더 나아간 판결이 나왔다.

광주지법 형사항소3부(재판장 김영식)는 2016년 10월18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은 조아무개·이아무개씨에게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아무개씨한테도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무죄로 판단한 첫 사례다.

핵심 쟁점은 재판부가 판단한 바 “법률의 ‘정당한 사유’에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의 자유가 포함되는지” 여부다. 헌법이 규정한 양심·종교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 사이에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것. 현행 병역법(제88조 1항)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이 조항에 따라 해마다 600명 가까이 처벌을 받아왔다. 최근 10년간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해 처벌된 사람은 5천 명을 훌쩍 넘는다.

재판부는 판결문 3분의 1 가까이를 할애해 국제 인권규범과 인식 변화를 소개했다. 1990년 한국도 가입한 ‘유엔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 제18조는 인간의 사상·양심·종교의 자유를 천명하고 어느 누구도 이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는 것.

특히 재판부는 인권규약 제정 당시의 문헌에 구속돼서는 안 되고 시대정신에 맞게 인권조약을 해석해야 한다는 점(‘살아 있는 문서 이론’)을 강조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 2006년 이후 지속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석방과 대체복무제 등 입법 조처를 한국에 요구해온 점도 들었다.

불평등한 병역 처분 현실도 비판했다. 신체 등위를 비롯해 학력·연령·직업·적성·부양가족·귀화·북한이탈주민·국위선양 등 다양한 요소를 바탕으로 구체적 병역 처분이 이뤄진다. 그런데 유독 종교나 양심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나아가 재판부는 현대 민주주의의 특징을 다원주의·관용·포용력으로 압축하고, 이 의무를 다수가 외면하는 정치체제는 형식적 민주주의에 불과하다고도 지적했다. “국가가 나서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에도 이러한 갈등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우리 헌법 제10조에 따른 국가의 국민에 대한 기본권 보장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고 다수가 실질적 민주주의를 외면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과 2011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헌법소원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세 번째 결론’을 내려야 하는 헌재는 5년째 심리 중이다.




심사위원 20자평


전진한  감옥도 가두지 못한 양심, 대체복무제 입법화하라!
류민희  그동안의 논의를 압축한 정성스러운 판결문, 헌법재판소도 이제 때가 왔다
홍성수  느릿느릿 한 걸음씩, 멈추지만 말아다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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