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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100m

200만 촛불 민심의 길을 터준 최고의 판결, “시민들이 앞서나가고 사법부가 뒤따랐다”
등록 2016-12-27 15:21 수정 2020-05-03 04:28
6차 촛불시위가 열린 2016년 12월3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에서 100m가량 떨어진 서울 종로구 효자로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하루 전날인 2일 낮 시간에 청와대 앞 100m까지 행진 가능하다는 결정을 처음 내렸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6차 촛불시위가 열린 2016년 12월3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에서 100m가량 떨어진 서울 종로구 효자로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하루 전날인 2일 낮 시간에 청와대 앞 100m까지 행진 가능하다는 결정을 처음 내렸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전남 목포에 사는 정수근(62)씨는 2016년 11월26일부터 매주 토요일 서울행 KTX를 탔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촛불시위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기차표를 구하기 어려워 부지런을 떨어야 예매할 수 있었다. 오전 11시 기차를 타면 오후 1시30분쯤 서울 용산역에 도착한다. 점심을 먹고 택시나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광장으로 향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청와대 앞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다 </font></font>

정씨는 광화문광장에서도 일부러 더 걸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자고 외치던 시민들에게 한 번도 열린 적 없던 청와대로 향하는 길을. 때론 경복궁 서쪽 길로, 때론 동쪽 길로 ‘시크릿 가든’처럼 좀처럼 닿을 수 없던 그곳으로 향했다. 청와대 100m 앞에서 함성을 외치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화문에서 소리치다 거기서 소리치면 뭔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에 훨씬 더 큰 목소리가 나왔어요. 청와대에서도 분명히 들릴 거라 생각합니다.” 정씨는 그곳에서 생각했다. “이번 촛불시위로 역사를 새로 쓸 것 같아요. 이제 모든 권력자가 국민들에게 더 신경 쓸 거예요.” 정씨는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24일에도 광화문광장을 찾을 계획이다.

촛불시위에 여러 차례 참여한 직장인 유아무개(40)씨는 “가족과 함께 청와대 앞에서 주권자로서의 분노를 쏟아낼 수 있다는 것이 기뻤어요. 반면 당연한 집회의 권리를 나와 내 가족이 누리는 것에 대해 기뻐해야 하는 처지가 슬프기도 했죠. 청와대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면서 ‘웃프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50%" align="right"><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ffffff"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fffff"><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
<font size="4"><i><font color="#991900">경찰은 집시법에서 청와대 100m까지 행진을 허용하고 있음에도 관행적으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까지로 집회 장소를 제한해왔다.</font></i></font>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청와대로 향하는 길을 연 것은 시민들이다. 시민들의 행진에 디딤돌을 놓은 법원의 결정도 있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김정숙)가 11월12일 내린 ‘집회금지 통보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인용 결정’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근본요소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결정문은 3차 촛불시위의 무대를 경복궁 사거리(율곡로~사직로)까지 넓혔다. 청와대에서 1km 남짓 떨어진 곳이다.

4차 촛불시위가 열린 11월19일에는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김국현)가 청와대에서 500m 떨어진 경복궁 자하문로와 삼청로의 낮 시간 행진을 받아들였다. 이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장순욱)는 5차 촛불시위를 하루 앞둔 11월25일 청와대에서 200m 떨어진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오후 5시30분까지 행진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12월2일에는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가 또다시 청와대에서 100m 떨어진 효자치안센터까지 행진이 가능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시간 제한은 오후 5시30분까지였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는 대통령 관저 100m 이내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적혀 있다. 법이 허용하는 한계까지 시민들의 행진이 이뤄진 것이다. 그동안 경찰은 집시법에서 청와대 100m까지 행진을 허용하고 있음에도 ‘주요 도로 교통 방해’ ‘폭력 시위 우려’ 등의 이유를 들어 관행적으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까지로 집회 장소를 제한해왔다. 오래돼 굳어버린 관행이 깨진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청와대 앞까지</font></font>
12월10일 7차 촛불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과거 집회 개최가 금지됐던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을 둘러싸고 촛불을 흔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2월10일 7차 촛불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과거 집회 개최가 금지됐던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을 둘러싸고 촛불을 흔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번 집회금지통보 집행정지 가처분소송을 대리한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의 양홍석·김선휴 변호사는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12월22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이공’ 사무실에서 만난 양 변호사는 “11월12일 율곡로를 열어낸 결정이 가장 의미 있었다. 그곳에서 집회했을 때 어떤 일이 있을지 아무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경찰은 ‘여기가 막히면 동서가 다 막힌다. 종로도 을지로도 다 막힌다. 교통 혼란을 어떻게 할 것이냐’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재판부도 그 부분을 많이 고민한 것 같은데 과감하게 안 가본 길을 간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양 변호사는 또 “법원도 이번 결정 이전에 있던 촛불시위 연인원이 계속 늘어나는데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집회를 막을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라며 전향적 결정의 배경에 시민들의 힘이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변호사는 “결정문에 어디까지 집회를 할 수 있는지가 글자로 명시됐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상황이 마무리되고 또 다른 촛불을 들 때가 왔을 때 이번 결정문이 힘을 가질 것이다. 집시법에는 100m로 돼 있지만 100m는커녕 청와대 500m, 1km 앞에도 못 갔던 관례를 끊어내고 청와대 앞 집회를 현실로 만들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50%" align="right"><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ffffff"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fffff"><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
<font size="4"><i><font color="#991900">“시민들이 제일 앞서나가고 사법부가 따라가고 경찰 등 행정이 가장 마지막으로 조금씩이지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김선휴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변호사</font></i>
</font>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양 변호사는 재판부가 고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재판부가 고민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안전 문제 등이다. 집회를 허용했는데 안전사고가 나고 구급차가 못 가는 상황이 벌어지면 집회를 허용한 재판부에 책임이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집회를 거듭할수록 더 안전하게 진행됐기 때문에 그런 고민은 모두 기우가 됐다.”

아쉬운 점도 있다. 양 변호사는 “경찰이 집회금지통보를 해서 가처분신청을 내는 일을 거듭해오다보니 매번 법원 허가를 받아서 집회를 해야 하냐는 회의도 들었다”고 말했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 및 시위의 자유가 법원 허가를 받아야 보장받는 권리로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뜻이다.

소송 비용도 만만치 않다. 보통 행진 경로를 여러 곳으로 하기 때문에 경찰이 집회금지통보를 한 경로마다 가처분신청을 해야 한다. 한 차례 촛불시위에 드는 평균 소송 비용이 250만원에서 300만원이다. 그래도 희망이 더 크게 보인다.

김 변호사는 “변화는 한 걸음씩 이뤄진다. 11월12일부터 청와대 100m 앞으로 가려 했으면 법원이 지금 같은 결정을 못 내렸을 것이다. 순차적으로 했기 때문에 결국 청와대 앞까지 갈 수 있었다. 최근 경찰도 변하고 있다. 과거 율곡로와 사직로 집회를 무조건 금지통보했는데 요즘에는 그 북쪽만 금지통보하고 있다. 여전히 문제가 많긴 하지만 조금씩 바뀌는 것이다. 시민들이 제일 앞서나가고 사법부가 따라가고 경찰 등 행정이 가장 마지막으로 조금씩이지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무대를 확장하는 결정을 내놓은 김정숙 재판장은 2015년에도 지면에 등장한 적 있다. 2015년 올해의 판결에서 ‘최고의 판결’ 자리를 두고 경합했던 결정을 내놨기 때문이다. 경찰이 2015년 12월5일 제2차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불법집회통지’를 하자 ‘백남기 농민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가 낸 ‘집회금지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결정이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집회금지는 모든 가능성 뒤 고려되는 최종 수단”</font></font>

당시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김정숙)는 결정문에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대표적인 공권력의 행위는 집시법에서 규정하는 집회의 금지, 해산과 조건부 허용이다. 집회의 금지와 해산은 집회의 자유를 보다 적게 제한하는 다른 수단, 즉 조건을 붙여 집회를 허용하는 가능성을 모두 소진한 후에 비로소 고려될 수 있는 최종적인 수단이다”라는 2003년 10월30일 헌법재판소 결정을 끌어왔다.

결국 2015년 12월5일 2차 민중총궐기는 평화적으로 끝났다. 2016년 최고의 판결이 여론에 못 이겨 마지못해 내린 것이 아니라 헌법의 가치를 새겨온 한 판사의 결정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역사’다.

<font color="#A6CA37">경찰·법원  허락받고  하는  시위</font>


촛불  열망  집시법  개정으로  이어질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의 목적은 헌법 정신 구현에 있다. 헌법 제2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돼 있다. 같은 조 2항에는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적혀 있다.
집회는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일이 아니라고 헌법은 밝힌다. 하지만 현실은 헌법과 동떨어져 있다. 경찰은 매번 갖가지 이유를 들어 집회금지통보를 남발한다.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는 폭력시위 우려나 교통 혼잡 등이다. 집시법에서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마저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경찰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집시법 자체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문제 조항이 집시법 제11조와 제12조다. 집시법 제11조는 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를 정해둔 조항이다. “누구든지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청사 또는 저택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100m 이내 집회가 금지된 장소는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국무총리 공관, 국내 주재 외국의 외교기관이나 외교사절 숙소 등이다. 집시법이 청와대, 국회, 헌법재판소 등 국민이 감시하고 통제해야 할 ‘권력’을 향해 직접적 의견 표현을 할 자유를 가로막는 것이다.
집시법 제12조는 교통 소통을 위해 집회 장소에 제한을 둔 조항이다.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하여 교통 소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이를 금지하거나 교통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조항은 집회금지통보에 가장 자주 등장한다. 참여연대가 2011~2016년 서울 지역 집회금지통보를 사유별로 나눠 분석한 결과, 총 1059건 중 집시법 제12조를 사유로 한 것이 447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 때문에 집시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최근 수백만 명이 참여한 가운데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을 보장한 촛불시위가 아무런 문제 없이 치러진 점은 이 주장에 힘을 보탠다.
참여연대는 11월 집시법 개정을 위한 입법청원안을 냈다. 입법청원안에는 집회금지 장소에서 국회, 국무총리 공관, 외교기관 인근 등을 삭제하고 청와대와 법원 앞 집회 금지 구역을 100m에서 30m로 축소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교통 소통을 이유로 경찰이 집회를 금지할 수 있는 근거도 삭제했다. 이 법안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촛불시위의 열망이 법 개정으로 이어진다면, 집회를 열기 위해 매번 경찰과 법원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나쁜 관행이 사라질 수 있다.





<font color="#A6CA37">심사위원 20자평</font>


한상희  대통령이 우리의 함성을 보고 들을 수 있게 하라
김진  1년 전(민중총궐기)에는 도대체 같은 곳에 왜 차벽을 쳤는지. 이제는 집시법 개정으로 나가야
류민희   이제 경찰의 집시법 운용도 달라져야 한다
여연심  200만 촛불에 응답한 사법부, 시민의 기본권을 먼저 생각하는 판결이 이어지기를
전진한  200만 평화집회가 만들어낸 명결정. 속이 시원하다
홍성수  법원 결정으로 갈 수 있는 극한에 도달하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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