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인권 OTL - 조국의 선언] 사형 폐지, 역행하지 말라

등록 2008-05-27 00:00 수정 2020-05-03 04:25

▣ 조국 한겨레21인권위원·서울대 법대 교수



인간이 갖는 권리 중 가장 근원적인 것은 생명권이다. 그런데 타인의 소중한 생명을 빼앗은 살인범의 생명도 존중되어야 하는가라는 난제에 대해 팽팽한 의견대립이 있다. 그렇다면 국제인권규범은 어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을까.

1948년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은 사형 폐지를 선언하고 있지는 않다. 사형 폐지를 향한 결정적 전환은 사형 폐지를 위한 ‘선택의정서’가 1989년 채택되면서 이루어진다. 이 문서는 “전시 상황”에서 범해진 “가장 심각한 범죄” 이외에는 사형 폐지를 요청한다. 아직 한국 정부는 이 선택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았다. 1998년 유엔인권이사회는 사형 집행 유예를 요청하는 결의문을 채택했고, 2007년 유엔총회는 사형 집행 유예 결의안을 통과시키기에 이른다. 한편 유럽의회의 경우 전시 또는 전쟁의 긴급한 위협 상황에서 범해진 범죄 이외에는 사형 폐지를 요청하는 선택의정서를 채택했고, 사형 집행을 유예하고 이 선택의정서를 비준하는 것을 유럽의회의 가입조건으로 만들었다. 나아가 2002년 유럽의회는 일체의 상황에서 사형을 전면 폐지하는 선택의정서를 채택한다.

이러한 국제인권규범을 비준한 나라들에서는 흉악한 살인범죄가 없었을까. 이 나라의 형사사법 체제는 물러터져서 또는 범죄인의 인권만을 생각해서 사형을 폐지했을까. 그렇지 않다. 이들 나라는 아무리 극악한 범죄인의 생명이라도 국가가 이를 박탈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도덕적·철학적 원칙을 지키고자 한 것이다.

1998년 2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10년 이상 사형 집행이 유예되어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바뀌고 있다. 법무부는 소수 극악한 살인범의 사례를 들면서 사형 집행 재개를 위한 군불을 때고 있다. 차근차근 사형 폐지를 위한 선택의정서 가입으로 나아가던 흐름이 역류해 사형 집행이 재개되는 상황이 벌어질까 두렵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