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위 집행위원장 남은주 대구여성회 사무국장… 피해 사실 털어놓은 아이들 폭행당하자 공개 결심
▣ 대구=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이런 일은 이 학교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 학교에서만 드러난 것입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대책을 세워야 해요.”
대구 ㅈ초등학교 사건 해결을 위해 꾸려진 ‘시민사회공동대책위원회’ 공동 집행위원장인 대구여성회 남은주 사무국장이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난 4월30일 대구시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과 만난 그는 “대책위에 참석해 처음 이야기를 듣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며 “매일같이 5~6시간씩 회의를 하며 가장 좋은 해결 방안이 무엇인지 논의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선정적인 보도로 또 다른 피해가 일어날 수 있어 언론을 통한 공론화를 피하려고 했지만, 선생님에게 ‘사실’을 말한 아이들이 그 뒤 폭행을 당하는 일까지 일어나 공개적으로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책위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전국교직원노조 임성무 선생님(대구지부 연대사업국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2004년에도 이와 비슷한 어린이 성폭력 문제를 다룬 적이 있는데, 이런 점 때문에 함께하게 된 것 같다. 4월24일 대책위가 꾸려지고 거의 매일같이 5~6시간씩 회의를 했다. 처음 이야기를 듣고 다른 위원들과 함께 울기도 많이 울었다. 사건을 처음 파악해낸 선생님도 아이들 얘기를 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고….
무엇보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이런 대규모의 성폭력이 오랫동안 이뤄졌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확인된 것은 지난해 11월이지만, 더 오래전부터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의 특징은 학교폭력과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안 하면 때리니까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가해 학생들은 괴롭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잘해주기도 했다. 같이 놀아주고 잘해주는 애들이 그런 일을 시키는데, 안 하면 그 집단에서 떨어져나가고, 그러면 또 놀아줄 친구들도 없게 될 테니, 아이들이 더욱 입을 닫은 것 같다. 또 (보고를 받고도 사건을 은폐해온 책임자들인) 어른들도 너무 충격적이어서 두렵고 무섭지 않았겠나.
아이들이 말을 안 한다고 어떻게 아무도 모를 수 있었을까.
=학생을 대상으로 성교육 강의를 할 때면 ‘혹시 성폭력을 당하면 꼭 부모님과 선생님께 말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럴 때 아이들 표정이 안 좋아진다. 얘기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피해 사실을 말하면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실제 학부모 대부분은 혼부터 낸다. ‘왜 거기 갔어’ ‘그런 애들이랑 놀지 말라고 했잖아’…. 아이들과 가장 가까운 사람인 부모들부터 아이들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다. 아이들로서는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을 못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례가 얼마나 특별한 케이스인가?
=우선 (다른 학교들에 대해서도) 정확한 실태조사를 해봐야 한다. 대책위에서도 그런 말들이 오갔다. 사실 거의 모든 학교마다 이런 일(또래 아이끼리의 성범죄)은 있다. 다만 ㅈ초등학교 경우는 집단화되고 학교폭력과 연계되면서 규모가 커진 것이다. 성교육 강의를 하다 보면, 초등학생들이 인터넷을 통해 음란물을 접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돼버렸다. 그러면 성적 호기심이 일고, 경우에 따라 성적인 학대나 성폭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어른들이 나서서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니 어른들 책임이다. 지난해 11월 이번 사건을 제일 먼저 파악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혹시 나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려고 하면 ‘불이야’라며 큰 목소리로 외쳐라”라고 교육을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어떤 아이가 “‘불이야’라고 외쳤는데도 어른들은 그냥 지나가던데요”라고 하더란다.
‘사실’을 말한 아이들이 팔이 부러지는 등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던데.
=대책위가 꾸려진 뒤인 지난 금요일(4월25일), 선생님에게 성적인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털어놓았던 아이가 가해 학생들에게 맞아서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한 상태다. 또 다른 아이도 귀가 찢어지고 얼굴에 큰 상처가 났다. 이러다 애들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건 공론화를 결심했다. 가해 학생은 6학년생들로 추정된다.
기자회견에서 조기에 발견돼 적절한 조처가 이뤄진 적도 있다고 했는데?
=2004년 다른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10여 명이 집단적으로 음란물을 보고 성행동을 보인 일이 있었다. 당시는 곧바로 보고가 됐고, 우리가 들어가서 아이들에게는 상담과 문학 치료를 하고, 교사들에게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교육했다. 사실 이번 ㅈ초등학교 사건도 출발은 이런 수준이었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2006년 겨울에도 초등학교 저학년이 성추행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아동 전문 상담기관을 연결해줬고 조기에 치료가 됐다. 그때 선생님이 참 따뜻하게 대해줬다. 같이 놀러도 가고 맛있는 것 사주고 관심 가져주니까, 아이가 오히려 전보다 더 밝아지더라. 그때 변화하는 과정을 보며 참 좋았고, 보람이 있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언론이나 지역 기관 등에서 대책을 중심으로 고민해줬으면 한다. ‘가해자가 누구냐?’ ‘피해자 명단이 있냐?’고 물어올 때마다 너무 두렵다. 사실 아이들 모두가 피해자다. 그 어린 나이에 음란물을 보고 행동을 당한 것 자체가 지울 수 없는 큰 트라우마를 남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또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또 다른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다. 은 그렇게 선정적으로 접근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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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9일 오후에 찾은 대구 ㅈ초등학교의 풍경은 여느 학교와 다를 바가 없었다. 운동회를 앞두고 6학년생들은 집단 부채춤 연습이 한창이었으며, 학교 건물과 운동장 주변은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했다. 평온한 교정에서 이 학교 선생님 한 명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교육당국에 대한 분노와 한숨,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함께 베어났다.
사건이 이렇게까지 커진 가장 큰 이유는 뭘까?
=이런 일이 발생하면 외부에는 숨기더라도 교육당국에는 곧바로 보고되고 조처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다음날 기자회견에서는 대구시교육청과 교장 선생님이 지난해 11월부터 해당 교사의 보고를 여러 차례 묵살해온 사실이 드러났다-편집자). 이렇게 집단적인 경우는 드물지만, 학교마다 성 관련 사고가 한두 건씩은 있다. 하지만 다들 조용히 넘어간다. 공무원들은 승진을 해야하는데, 시끄러워지면 안 좋은 것이다. 그러니 반대로, 사건이 공론화된 뒤 잘 해결하고 마무리한 교장·교감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그동안 선생님들은 뭘 했나?
=학교의 상담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아이들에게는 선생님보다도 형들의 주먹이 가깝다. 맞고도 넘어져 다쳤다고 둘러댄다. 하지만 선생님들로서도 어려움이 많다. 아이들을 상담해 (진실을) 끌어내야 하는데, 우선 가해 학생들은 딱 잡아뗀다. 그러면 가해 학생 학부모는 ‘왜 우리 애를…’이라며 항의한다. 피해 학생도 쉽사리 입을 열지 않고, 학부모 또한 “아무 말 하지 말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적인 조사 교육을 받지 않은 교사들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셈이다. 또 교사들 상당수는 이런 일에 어떻게 대처할지 모른다. 학생에게 뭐라고 할지, 학부모에게는 어떻게 해야할지 손을 못 댄다. 정교사 연수나 신규 임용 때 성상담 교육을 몇 시간씩이라도 받도록 해야 한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학교 학생 전체가 성교육을 받아야 한다. 지금 전체가 다 조사된 게 아니다. 정확히 누가 가해 학생이고, 누가 피해 학생인지 모른다. 성교육 예산부터라도 빨리 내려줬으면 좋겠다. 근본적으로는 부모는 돈 벌러 나간 사이 아이들은 음란물에 노출되는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 안그러면 3~4년 뒤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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