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인권 OTL] 몰라서 더 위험한 아동의 성폭력

등록 2008-05-09 00:00 수정 2020-05-03 04:25

아이도 부모도 학교도 모르기 때문에 더 커지는 범죄…형사처벌보다는 제대로된 교육과 상담이 절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마침내 ‘아동’ 성폭력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대구 사건은 아직 어린이로 여겨지는 ‘초등학생’이, 더구나 100여 명에 이르는 ‘집단’으로 성폭력 혹은 성관계(유사 성행위)에 연루된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하여 비로소 우리는 교훈을 얻는다. 소년은, 소녀는 비성적(非性的)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대구 사건을 통해 성적인 존재로 커밍아웃했다. 황망한 사건 앞에서 우리가 몰랐던, 아니 모르고 싶었던 아동의 성(폭력)을 ‘모른다’와 ‘위험하다’ 두 개의 열쇳말로 풀어봤다.

성관계-성폭력-놀이의 애매한 경계

첫째로 아이는 모른다. 문제가 된 대구의 초등학생 일부는 자신들이 한 성행위에 대해 “나쁜 짓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성행위, 심지어 성폭력에 대한 아이의 감각은 어른과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2007년 3월 밝혀진 경기 가평 중학생 집단 성폭행 사건. 남학생 여섯이 여학생 한 명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다. 사건의 주동자인 ㄱ군은 전학 온 여학생이 친구의 부모님을 험담했다며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에게 그 여학생을 혼내주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여학생이니 남학생과 다른 방법으로 벌을 주자고 생각해 여중생을 성폭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ㄱ군을 비롯한 가해자들이 죄책감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경찰이 “징역 3년을 받는 범죄”라고,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나쁜 짓”이라고 꾸짖자 비로소 자신이 한 행동의 심각성을 알았다고 한다. 성폭력이 얼마나 흉포한 범죄인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김은경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청소년범죄실장은 “아동은 성폭력 행위에 대한 뚜렷한 죄의식이 부족하다”며 “범죄로 다룰 때에야 비로소 자신도 놀란다”고 지적했다. 아동·청소년 성폭력 가해자의 증언을 그대로 믿지는 않더라도, 어쩌면 일부의 아이들은 정말로 잘 모른다.

때때로 성관계와 성폭력, 놀이와 폭력의 경계가 애매하다. 실제 대구 사건의 저학년생들은 성적인 벌칙이 뒤섞인 놀이를 ‘죄의식’ 없이 행했다. 이렇게 놀이로 시작한 게 성폭력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들은 저항하지 못하고 판단하기 어렵다. 김은경 실장은 “놀이와 폭력의 경계에 대해 적절히 구분해서 알려주는 교육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말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할까? 박현이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 프로그램 기획부장은 “그런 행위를 할 때는 문을 걸어 잠근다든지 하는 것을 통해 무언가 잘못된 행동이란 생각이 드러나긴 하지만, 그것을 성폭력으로 인식하지는 못한다”며 “더구나 성적인 자극도 느끼게 되면 더욱 놀이에 빠져든다”고 말했다.

다시 문제는 음란물(포르노)이다. 포르노는 강간의 텍스트인가, 유구한 논란이 있다. 적어도 음란물이 성인보다 아동에게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아이들은 모방한다. 포르노는 인터넷 등을 통해 무차별 폭격하는데 아이들은 무방비다. 라도삼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원은 “세상에 음란물이 유통되지 않는 사회는 없다”며 “모방은 성인도 하지만 어른들은 도덕적 강박을 느끼는 반면에 윤리적 방어막 형성이 부족한 아이들은 현실과 가상을 쉽게 헛갈린다”고 지적했다. 성교육을 통한 도덕적 무장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음란물이 ‘나쁜 줄’ ‘현실과 다른 줄’ 모르고 모방하는 아이들이 적잖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포르노는 가깝고 성교육은 멀다.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의 2005년 조사(청소년 1250명 대상)를 보면, 음란 매체에 접촉한 경험이 있는 남자 초등학생은 34.5%에 달했다. 대구 ㅈ초등학교 사건에 연루된 아이들도 인터넷, 유선방송 등을 통해 포르노물을 접해왔다고 알려졌다. 김은경 실장은 “아이들은 음란물에 나오는 행위와 반응이 정상적이거나 중립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며 “음란물에 접근할 기회는 많지만 음란물의 위험성을 가르치는 교육은 적다”고 지적했다. 박현이 부장도 “포르노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줘야 하지만 학교의 성교육에서 포르노는 무조건 금지된 것으로만 여긴다”고 덧붙였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모방

그래서 성교육이 절실하다. 그러나 학교 성교육은 여전히 아이들을 따라잡지 못한다. 2004년 옛 교육인적자원부 자료를 보면, 비디오 시청이 성교육 방법 중 1위(27.7%)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집단적 강의나 비디오 교육은 도덕적 훈계나 위험 경고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생물학적 성교육에서 성관계의 교육으로, 성교육에서 인권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민우회의 중·고교 내 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는 “성폭력 예방교육도 지금까지는 어떻게 하면 피해자가 되지 않을 것인가 하는 피해자 초점의 교육이었다면 앞으로는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예방교육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대구 사건에서 보듯이 성폭력의 피해자는 여자아이만이 아니다. 남자 아동에 의한 남자 아동에 대한 성폭력도 빈번하다. 서울 여성의전화 부설 서울성폭력상담센터 문채수연 센터장은 “대구 사건도 남자 아이들 사이의 성폭력이 많아서 아이들이 어른에게 알리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학생도 성폭력 피해자가 된다는 내용으로 성폭력의 개념을 넓히고 민감성을 높이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도 위험하다. 가해와 피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엇갈리는 탓이다. 박현이 부장은 한 학부모 상담 내용을 전했다. “초등학생 조카가 포르노를 보면서 아들의 성기를 만졌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뒤에 자신의 아들이 더 어린 조카의 성기를 만지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이렇게 아동 성폭력은 성인 성폭력에 견줘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아이들은 성폭력을 당하고도 이어서 모방한다. 몇 해 전에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 지나친 성적 놀이가 만연한 사건이 있었다. 놀이에 연루된 아이들은 같은 유치원 출신이었다. 추적해보니 유치원 원장이 예절교육을 한다며 아이들을 불러서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더구나 원장은 가위를 앞에 놓고 어른에게 이르면 혀를 자른다고 아이들을 협박했다. 이렇게 어른이 촉발한 가해의 고리가 있는 경우도 많다. 대구 사건에서도 고학년이 저학년을 성폭행한 뒤에 성폭행당한 아이에게 다른 아이를 성폭행하도록 강요한 사실이 드러났다. 피해와 가해의 고리가 폭력을 통해 이어진 경우다.

이렇게 또래 집단의 압력은 위험하다. 놀이를 가장한 성폭력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누군가 그것을 문제 삼으면 그 아이가 오히려 왕따를 당한다. 명백한 폭력이 있어도 비밀을 폭로하면 폭행을 당한다는 협박도 더해진다. 심지어 성폭력은 애정으로 은폐되고 의리로 포장된다. 아동을 성폭행하려는 성인은 자주 ‘과자’로 아이들을 유혹한다. 어른들은 달콤하게 다가오고 또래들은 친근하게 압박한다. 실제 성폭행을 저지른 대구의 고학년 아동들은 성폭행을 당한 저학년 아동을 다른 아이들로부터 보호해준다는 ‘당근’을 내세웠다. 이렇게 폭행은 끈끈한 유대를 위한 통과의례가 되고 아동은 강요와 선택을 혼동한다. 박현이 부장은 “더구나 저소득층의 아이들은 방임의 결과로 애정 결핍인 경우가 많아서 애정과 우정을 가장해 접근하는 방식에 약하다”고 말했다.

“애들이 호기심으로 그런 거지…”

그러나 부모는 모른다. 아이의 성적 일탈은 상상도 하지 않는다. 문채수연 센터장은 “대구의 경우에도 부모든 교사든 믿을 만한 어른 한 명만 있었더라도 피해가 이렇게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아직도 아이가 성폭행을 저질러도 ‘애들이 호기심으로 그런 거지’ ‘남자애들끼리 장난친 걸 가지고’ 하면서 덮으려는 부모들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김은경 실장은 “이런 부모의 태도는 아이를 성폭행을 반복하는 범죄자로 만든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부모를 아동 성폭력 사후 처리 과정에 적극 개입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이를 성폭행 범죄자로 낙인찍지 않으면서 세심하게 모니터링하는 교육이 부모에게 필요하다.

학교도 모른다. 학교는 성폭력 안전지대가 아니라 사각지대다. (사)보건교육포럼의 2008년 4월 조사(초등학생 1265명 포함 학생 3710명 대상)를 보면, 5.5%가 성폭력 피해(강제적인 신체 접촉과 성적 농담 등)를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더구나 이 중에 41.9%는 학교에서, 44.2%는 친구 또는 선후배에게 당했다고 응답했다. 대구에서도 성폭행 장소가 학교의 정원과 테니스장 등이었다. 성폭력 범죄자 나이도 낮아지는 추세다. 19살 이하 청소년 성범죄자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14살이 차지하는 비율이 2000년 4.6%에서 2005년 7.3%, 15살이 5.8%에서 18.2%, 16살이 11.9%에서 21.3%로 늘어났다. 집단화 경향도 띠는데, 청소년 성폭행에서 집단 성폭행이 차지하는 비율은 50.7%로 성인의 10.6%보다 훨씬 높았다(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 문채수연 센터장은 “집단 성폭행을 하면 죄의식도 n분의 1로 나누어 가지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행 14살로 규정된 형사책임 나이를 낮추는 것이 대안은 아니다.

오히려 교육이 필요하다. 지금도 학교장이 부모의 동의를 얻으면 성폭력 가해 아동을 관련 기관에 위탁해 교육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그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저 가해자와 피해자를 전학 보내기에 급급하다. 성폭력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 가해자의 치료도 필요하다. 박현이 소장은 전한다. “얼마 전 스무 살 성폭력 가해자와 상담했다. 이미 세 번의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었는데 치료와 상담은 첫 번째라고 했다. 중학교 2학년에 첫 범죄를 저질렀을 때 제대로 상담과 치료를 받았다면 10대가 그렇게 망가지진 않았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이렇게 성폭력 가해자, 특히 아동과 청소년의 경우엔 조기 개입이 범죄 억제의 관건이다. 김은경 실장은 “반사회적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해당 소년이 나이에 관계없이 이미 위험 상황에 빠져 있다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아동 성폭력은 아이들이 보내는 구조 신호인지 모른다. 모르면 위험하다. 아동의 성도,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기 마련이다.



동성간 성폭력 문제

장난으로 취급하지 말라

▣ 권김현영 국민대학교 강사·여성학

대구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 사이에 대규모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주로 고학년 남학생이 저학년 남학생을 상대로 구강·항문 성교부터 유사 성행위까지 강요했고, 여학생 피해자도 일부 있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선배의 말을 듣지 않는 후배들은 구타를 당하거나 왕따를 당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사건을 그저 선배들의 짓궂은 장난 정도로 생각했지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한 이런 사실을 미리 인지한 일부 어른들 역시 이것이 그저 남자 아이들끼리 있을 수 있는 성적 호기심이 장난스럽게 발동된 사건으로 인식했다고 답했다. 이 사건이 비로소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피해 여학생들 중 3명의 학부모가 경찰에 신고한 다음부터였다.
빈곤 문제 등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중요한 원인은 사건 초기에 이것이 ‘장난’이라고 인식됐던 데에 있다. 사건과 관련된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은 이걸 그냥 장난이라고 생각했고, 이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던 교장을 포함한 어른들 역시 이 사건을 그냥 남자 아이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단다. 바로 이 점이 문제를 이렇게 크게 만든 중요한 원인은 아니었을까.
우리 사회는 남자 아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성과 관련된 폭력을 남자들 사이의 우정과 연대의 문화로서 인식하며 사회적 문제로 간주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군대 내 동성 간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15%의 군인들이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지만, 종종 일어나는 일이기에 문제 삼지 않겠다는 반응이 64%에 달했다. 그러나 그냥 남자들끼리 장난치고 논 것으로 보기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선·후임병 관계에 따라 명백하게 갈렸고 피해 후유증 역시 심각했다. 그럼에도 이를 문제 삼을 경우에는 남자답지 못하다고 비난받거나 왕따를 당하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단순한 장난으로 생각하라는 강요를 받는 셈이다. 그래서 장난이라는 말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위 군대 내 조사에서 드러난 더 큰 문제는 피해자의 87%가 나중에 가해 경험을 했다고 대답했다는 데 있다.
이렇게 피해 자체를 문제화하지 않고 장난으로 취급하면 성을 둘러싼 강요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둔화되고 폭력을 내면화하게 된다. 명백하게 강요가 뒤따른 폭력을 장난으로 취급해 그들의 또래문화 안에서 서서히 해결되겠지라고 생각한 것부터 바꿔야 한다. 이 사건은 무엇보다도 폭력에는 폭력으로 응징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폭력 자체를 액션으로 즐기는 고질적인 남성문화의 병폐가 응축돼 있는 사건으로 인식해야 한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남자 아이들의 또래문화란 결국 폭력적 위계질서를 강제적으로 따르게 만드는 조폭문화가 아니겠는가. 이것이 동성 간 성폭력을 ‘장난’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한겨레21 관련기사]

▶ 아이들의 끔찍한 SOS
▶ “아쉽다, 조기에 대처했다면…”
▶ 몰라서 더 위험한 아동의 성폭력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