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미국의 새너제이주립대학에 이 대학 출신 육상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의 동상이 세워졌다. 이 동상은 1968년 제19회 멕시코올림픽 남자 200m의 메달 시상대를 재현한 것이다. 1위 자리에는 19초8이라는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던 토미 스미스가, 3위 자리에는 존 카를로스가 서 있다. 고개를 숙인 채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높이 들어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런던올림픽 남자축구에서 독도 세리머니를 한 박종우 선수가 동메달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한 사건이 일어나자, 각종 언론매체에서 새삼 이 사건을 재조명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스미스와 카를로스의 이 세리머니는 당시 새너제이주립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던 해리 에드워즈가 주도한 OPHR(Olimpyc Project for Human Rights·인권을 위한 올림픽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당시 OCHR(Olympic Committee for Human Rights·인권을 위한 올림픽위원회)에서는 멕시코올림픽에서 집단 보이콧을 시도하려 했지만 스포츠를 정치 행위로 이용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 선수들, 미국 언론과 여론의 심각한 반대에 부딪혀 공식적으로 보이콧을 취소하기에 이른다. 대신 선수 개인의 의지로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졌는데, 스미스와 카를로스의 세리머니는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인상적인 사례로 기억된다.
그런데 이 동상의 2위 자리가 비어 있는 건 언뜻 생각하기에 이상한 일이다. 당시 은메달리스트였던 오스트레일리아의 피터 노먼은 백인임에도 여기 동참해 왼쪽 가슴에 배지를 달고 시상대에 섰으며, 그 때문에 엄청나게 고생했으니까. 당시 시상대에서 관중석으로 달려가 배지를 받아 달았다는 설이 있지만, 시상식 전날 밤 장갑을 준비하지 못한 카를로스를 위해 한쪽씩 나눠 끼라는 제안을 했다고 하는 걸 보면 그는 애초에 계획적으로 이들의 운동에 동참했던 것 같다. 그는 4년 뒤 뮌헨올림픽에도 출전하지 못했고, 당시 인종차별 정책을 펴던 오스트레일리아에 외면당하고 비난받았으며, 우울증에 시달리고 경제적으로도 궁핍한 날들을 보냈다고 한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도 VIP들이 하는 명예의 행진에 초대받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 육상 대표팀에서 그를 초대하며 그를 ‘영웅’이라 칭했고, 2006년 노먼이 사망하자 카를로스와 스미스가 그의 관을 운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의 동상 역시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스미스와 카를로스와 달리 새너제이주립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자리가 비어 있는 이유일까?
그러나 그의 빈자리는 사실 동상 건립 당시 노먼 선수 본인의 뜻에 따른 것이란다. 인권운동에 뜻을 같이한다면 누구나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지지를 표명했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이 빈자리는 옳은 것을 위한 결단력, 타인을 위한 헌신과 희생, 소외된 자들과의 연대를 상징하는 동시에 이를 과거의 기억으로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이어가게 해주는 다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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