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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서 불안한 어떤 팬들

롯데가 2연승 했지만
등록 2012-10-20 16:29 수정 2020-05-03 04:27

지금 이 글은 10월10일 수요일 밤에 쓰고 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2차전이 끝나고, 3차전을 앞두고 있는 전날 밤입니다. 현재까지 롯데 자이언츠는 2연승을 해냈고 1승만 더하면 플레이오프에 진출합니다. 30년 동안 두 번밖에 우승해보지 못한 팀, 그나마 마지막 우승을 한 지 20년이 지난 팀, 큰 경기에 약하고 ‘대기록’보다는 ‘진기록’이 많은 팀, 야구팀보다 그 팬들이 역사에 더 큰 족적을 남긴 팀. 롯데 자이언츠라는 팀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들입니다.

오랜 암흑기를 거치고 롯데 자이언츠는 2008년 이후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강팀으로 변모하는 듯했지만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서 승리하지 못한 채 속절없이 무너지며 통곡의 가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최근 2년간은 모두 2승3패로 탈락했습니다. 2연승 뒤 3연패를 하며 탈락한 최초의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 4년간 포스트시즌이 열리던 추석마다 부산은 절규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롯데 자이언츠라는 팀의 역사는 부산이라는 도시의 역사와도 호환이 되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큰 도시지만, 서울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언제나 그저 변방의 지방도시로 치부돼온 만년 2등의 도시. 마지막 딱 한 번을 이기지 못하고 매년 눈물로 시즌을 마감했던 롯데의 연고지가 부산이라는 것은, 만년 2위라는 부산 사람들의 자괴감 섞인 무의식과도 꽤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만약 올해 롯데가 우승한다면 여러모로 의미가 있습니다. 일단, 마지막 우승 이후 정확히 20년 만의 우승입니다. 그리고 정말 우승을 한다면 두산·SK·삼성을 차례로 물리치는 것인데, 이 세 팀은 지난 4년간의 포스트시즌에서 롯데가 끔찍하게 유린당했던 팀들입니다. 한마디로 20년 만의 우승을 기념하기 위한 대진으로서는 최상입니다. 하지만 2년 전, 지금과 똑같은 상황에서 선수와 팬이 함께 흥분하며 섣불리 터뜨린 샴페인 탓에 두산에 내리 3연패 하며 피눈물을 흘렸던 악몽과, 지난 4년간의 반복된 실패로 인해 학습된 불안 때문일까요. ‘부정 탈까봐’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못하고 꿈같은 상상을 뒤에서만 조용히 주고받으며 흥분을 자제하는 롯데 팬들의 모습에선 안타까움마저 느껴집니다.

이 기사가 나갔을 때, 과연 롯데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을까요? 새로운 역사가 쓰였을지, 5년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이라는 전무후무한 참사로 끝났을지, 결론은 나 있겠지만 2승무패라는 절대적 우위 속에서도 오래된 불안과 싸우고 있는 어느 가을밤 롯데 팬들의 심정을 이렇게 기록해두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선수와 팬이 같은 악몽을 꾸었기 때문인지, 이기고 있어서 오히려 불안하고, 들뜨지 않으려고 선수와 팬이 서로 감정을 통제하고 있는 어느 가을밤의 풍경. 언제나 저에게 야구장은 가장 순진하고 귀여운 어른들의 놀이터입니다.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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