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야구의 도시 부산. 그러나 그 야구의 도시에서 야구로 상처받은 선수가 있습니다. SK 와이번스 투수 임경완(37). 롯데 선수로 12년을 뛴 그의 별명은 ‘임작가’입니다. 그가 등장하면 드라마틱한 상황이 발생됐고, 몇 번의 역전패를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팬들의 조롱 속에 마음 약한 이 선수는 몇 번의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며 더욱 야유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임경완은 그렇게 폄하할 선수가 아닙니다. 국내 정상급 싱커로 3점대의 방어율을 꾸준히 유지하는 건실한 계투요원입니다. 홀드왕 타이틀을 차지한 선수이며, 허용한 역전보다 지켜낸 승리가 10배는 많습니다. 이건 정말로 별명이 선수를 삼켜버린 경우입니다.
2009년 개봉된 롯데 자이언츠의 한 시즌을 따라간 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임경완이 말합니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아빠도 SK처럼 잘하는 팀 가라고 하더라고요. 허허.” 롯데 선수들은 부산에서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성적이 부진하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선수가 허다하며, 가족에 대한 욕설을 듣는 것도 감수해야 합니다. ‘임작가’로 불리던 시절, 임경완의 아들은 친구에게 놀림을 받아야 했고, 임경완의 미니홈페이지 방명록에는 팬들의 원색적인 욕설이 가득했습니다. 그때 임경완의 미니홈페이지 타이틀은 ‘나의 가족을 위해’였습니다. 야구가 뭐라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겨야 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지난겨울, 자유계약(FA) 선수가 된 임경완은 SK행을 택했습니다. 은퇴를 앞둔 노장 투수라 당연히 고향팀에 남을 줄 알았고 롯데가 제시한 조건이 SK와 큰 차이가 없었기에 모두에게 놀라운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임경완은 침묵으로 인내해오던 시절을 끝내기로 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별명으로 자주 그를 야유했지만, 그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롯데팬들은 당황했습니다. 이 선수를 붙잡을 명분이 롯데팬들에게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4월17일 롯데 대 SK의 첫 번째 사직구장 대결. 8회말 1사 만루의 위기 상황에 SK 투수 임경완이 등장했습니다.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끝내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해주고 보낸 그 선수를 이렇게 만났습니다. 임경완은 롯데 시절 내내 자신의 공을 받아온 강민호를 병살타로 처리하며 고향 마운드에서 신고식을 끝냈습니다.
다음날 1사 1·3루에서 다시 등판한 임경완. 1루로 견제를 했지만, 롯데 응원단은 사직구장의 상징인 ‘마!’를 외치지 않기로 사전에 약속을 했습니다. 이것은 야구의 전관예우이자 임경완의 면책특권이며 우리가 떠나보낸 선수에게 보내는 팬들의 우정이었습니다. 떠나고 나서야 깨달았던 사랑. 롯데팬들은 이렇게 그에게 사과했습니다.
고향에서의 상처를 잊기 위해 오기로 던져본 견제구. 그 견제구에 ‘마!’를 외치지 않은 사직구장의 관중. 그 견제구와 ‘마!’를 외칠까 말까를 고민하던 1초의 시간 사이 어디쯤에, 야구라는 스포츠의 낭만이 있습니다.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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