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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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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탈출 일본 탈출

등록 2012-10-24 18:35 수정 2020-05-03 04:27

대지진, 해일, 원전 사고로 이어진 2011년 3월11일 이후 일본 사회는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그 변화의 전체상을 그려내기는 아직 이를지 모른다. 하지만 1년6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그 변화의 방향을 점검해볼 수는 있다. ‘데모하는 사회’로 변하기를 바라는 가라타니 고진의 희망대로 일본은 3·11 이후 데모하는 사회로 변해갈 조짐이 보인다. 3·11 이후 전국 어딘가에서는 원전에 반대하는 데모나 모임이 반드시 있었다. 과거에 비해 젊은 층의 참가가 두드러지게 늘어났고,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눈길을 끄는 경우도 많아졌다.

재앙이 오히려 우경화 자양분
국제적 연대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하지만 이런 밑으로부터의 움직임이 정치 지형을 바꾸거나 바꿀 가능성을 아직 담보하지는 못했다. 얼마 전 한국을 찾은 일본의 반핵운동가 다나카 미쓰히코 후쿠시마사고 조사위원회 위원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에서는 원전 찬성론자에 대해 ‘바보’라고 부를 정도로 심각성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지만, 원전 대국을 지키려는 정부와 기업 쪽의 원전 옹호론은 여전히 강고하다. 탈원전 계획은 어느 사이에 유명무실해졌고, 정치 지형의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3·11 이후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탈원전 후보가 승리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향후 예상되는 총선거도 마찬가지다. 총선거에서 승리가 점쳐지는 자민당은 아베 신조가 총재가 되었다. 제3의 세력으로 각광받는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나 현 민주당의 노다 총리를 봐도 정치이념적으로는 모두 오른쪽이다. 아주 심한 우파, 덜 심한 우파, 그리고 우파 사이의 경쟁이니 선거 결과는 누가 총리가 돼도 ‘도토리 키 재기’일 것이다. 이들 모두 원전에 찬성한다. 변화가 있다면 3·11의 ‘재앙’이 오히려 우경화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2011년 3월 당시 대지진 여파로 도쿄를 빠져나가기에 앞서 공항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 있는 시민들 모습. 대지진 1년이 지난 뒤에도 도쿄 탈출, 해외 러시는 계속되고 있다. 사진 한겨레 홍석재

2011년 3월 당시 대지진 여파로 도쿄를 빠져나가기에 앞서 공항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 있는 시민들 모습. 대지진 1년이 지난 뒤에도 도쿄 탈출, 해외 러시는 계속되고 있다. 사진 한겨레 홍석재

그렇다고 사람들의 일상에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구조적인 변화나 그 가능성은 밑에서부터 분명히 꿈틀거리고 있다. 가시적 변화는 사람의 이동이다. 3·11 이후 겨우 1년6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사람의 이동을 통계적으로 확정하고 이를 통해 변화의 방향을 점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일관된 흐름은 보인다. 하나는 서남쪽으로 사람들이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본을 벗어나려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일본 총무청 발표에 따르면, 지진해일 원전 사고 피해 지역인 동북 3개 현(이와테·미야기·후쿠시마)은 3·11 이후 2012년 2월 시점에서 1년 동안에 4만1216명의 전출 초과를 기록했다. 이들 3개 현의 전출 초과 인구가 4만 명을 넘어선 것은 1970년 이래 무려 41년 만의 일이다. 특히 원전 사고 지역인 후쿠시마현이 심각하다. 후쿠시마현의 전출 초과 인구는 무려 3만2568명이다. 3만 명을 넘어선 것은 1963년 이래 약 48년 만의 일이다. 특히 여성과 어린이의 전출 초과 비중이 높다.

1극에서 4극으로, 지방분권 가속화?

도쿄 등 수도권(도쿄권)의 전입 초과 인구는 5만9930명이다. 여전히 나가는 사람보다 들어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전년에 비해 3만 명 이상이나 줄었다. 후쿠시마에서 도쿄까지의 거리는 약 200km. 역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이다. 이에 반해 후쿠시마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의 인구 이동은 늘었다. 나고야권과 오사카권은 3·11 이전까지는 항상 전출 초과였다. 그런데 1년 사이에 모두 전입 초과를 기록했다. 특히 도쿄권에서 나고야권 및 오사카권으로 이동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반대의 경우는 줄어들었다. 후쿠시마에서 약 1천km 떨어진 후쿠오카현은 1만 명 이상의 전입 초과를 기록했다. 전년의 3천 명에 비해 무려 3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후쿠시마에서 약 1700km 떨어진 오키나와의 전입 초과 인구도 3천 명 이상으로 전년의 100명에서 대폭 늘었다.

통계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주자가 주민등록을 한 경우에만 한정되니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이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보면, 메이지유신 이래 100년 동안, 혹은 고도성장기 이후 도쿄 등 수도권으로 모여들었던 인구 이동의 일반적 특징이 2011년 3·11로 변화하게 된 셈이다. 일각에선 도쿄 등 수도권으로 모여들었던 인구의 일극 구조가 오사카·나고야·후쿠오카 등의 4극 구조로 바뀔 가능성을 점치며 지방분권과 다극화의 흐름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정부 쪽도 이주 흐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2011년 5월31일 교토 지방판에 따르면, 왕실·문화청·국회도서관 등의 교토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런 국내 이동에 더해 3·11 이후의 새로운 풍속도가 바로 해외 이주 현상이다.

“이대로 가면 일본은 끝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인의 ‘종’을 지키기 위해 최악의 경우에는 해외 이주도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일본 이외에 살 곳도 마땅치 않으니 가능하다면 일본을 바꾸고 싶다.” 지난 9월10일 배우 야마모토 다로가 기자회견에서 쏟아낸 말이다. 장동건이 오다기리 조와 공연한 에서 악독한 일본군 장교를 연기한 사람이다. 원전에 반대하고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도 반대하는 사회적 소신이 뚜렷한 배우다. 물론 방점은 일본을 바꾸고 싶다는 데 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즉 원전 사고가 이어질 경우에는 해외 이주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발언에서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불안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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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다른 두개의 해외 이주 현상

실제로 3·11 이후 자신의 거처를 해외로 옮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예를 들면 광학렌즈로 유명한 호야의 최고경영자(CEO) 스즈키 히로시는 올해 초 싱가포르로 이주할 뜻을 밝혔다. 이사회가 열릴 때만 일본에 귀국한다고 한다. 출판 및 통신교육 사업으로 유명한 베네세홀딩스의 회장은 뉴질랜드로, 세제 및 목욕 관련 제품으로 유명한 선스타의 회장은 스위스로, 그리고 한국에서도 유명한 유니클로의 회장은 싱가포르로 거처를 옮겼다. 유명 뮤지션 호테이 도모야스와 가수 겸 배우 이마이 미키 부부는 올 8월에 영국 런던으로 거처를 옮겼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이다. 물론 해외 이전에는 어학능력과 경제력이 필수적이니 최근 나타나는 해외 이주는 일부 계층에 한정된 현상이다. 하지만 을 쓴 작가 야스다 오사마의 말처럼 “‘해외 탈출’을 하나의 선택지로 생각”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일본인의 해외 이주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외 이주가 삶의 선택지 중 하나가 된 것은 1990년대부터다. 거품 경기로 일본 전체가 들썩이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 무렵까지 일본 사람들은 엔고와 호경기를 배경으로 해외에서 호화스러운 생활을 꿈꾸며 오스트레일리아의 골드코스트나 스페인의 코스타 델 솔로 몰려들었다. 그래서 일본 통산성은 퇴직자들을 위한 마을을 만들겠다며 ‘실버 컬럼비아 계획 92’를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력을 배경으로 또 하나의 일본을 해외에 마련하려 한다는 안팎의 비난에 직면해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한동안 잠잠하던 해외 이주가 다시 삶의 선택지 중 하나로 나타난 것은 2000년대 이후다. 이때는 1990년대와 상황이 다르다. 일본은 계속되는 불황에 허덕이고 있었고 199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개혁 등과 맞물려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실업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연금 수급이 가능한 연령까지 저비용으로 삶을 ‘연명’할 수 있는 물가가 싼 나라들이 각광을 받았다. 계속되는 불황에 세계 최대의 재정 적자, 심해지는 양극화. 이런 흐름에 박차를 가한 것이 2011년의 3·11이었다. 방사능 유출에 대한 공포가 기존의 절망감에 더해졌다. 게다가 2011년에는 31년 만에 무역적자에 빠졌다. 무역대국, 무역입국이라는 전통적인 일본의 이미지가 무색하게 되었다.

2011년 10월1일 현재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은 118만2557명이다. 2010년에 비해 3.43% 증가했다. 2009년과 2010년의 전년 대비 증가율이 각각 1.33%와 1.02%였던 점을 고려하면 대폭 늘어난 셈이다. 영주권을 가지고 있거나 3개월 이상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거주국 국적을 취득하거나 단기 여행을 하는 사람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물론 일본 전체 인구의 1%에도 못 미친다. 또 일본 거주 외국인 약 200만 명의 50% 정도다.

열쇠는 일본을 바꿀 수 있느냐

나가는 사람보다 들어오는 사람이 여전히 많으니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해외 이주 현상을 두고 ‘국가의 위기’라고 떠들어댈 필요는 없다. 더구나 지진으로 일본 땅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는 이나 베트남에서 나타난 보트피플처럼 국가 자체가 붕괴 상태에 있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엔화와 일본 여권의 힘을 빌려 해외로 거처를 옮기는 정도이니 이를 두고 ‘일본 탈출’이라거나 ‘일본을 버렸다’는 식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해외 이주가 과거에 비해 하나의 선택지가 돼가고 있고, 이런 현상이 경제 불황과 원전 사고 때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한마디로 일본은 일본인들이 보기에 더 이상 매력적인 거주처가 아니게 되었다. 실제로 최근 일본의 서점에 넘쳐나는 같은 책들은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사회의 불안을 여실히 보여준다. 야마모토 다로의 말처럼 열쇠는 일본을 바꿀 수 있느냐에 있다. 하지만 지금 보기에 정치권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작가 가야마 리카가 과거에 말한 대로 “어디를 봐도 우경화” 일색이니 누가 정권을 잡아도 ‘그 나물에 그 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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