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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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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빈익빈 부익부

고령화 지역을 덮쳐 피해가 커진 일본 지진·해일…
농촌이 위험을 안고 대도시가 혜택을 누리는 원전의 모순
등록 2011-04-08 16:12 수정 2020-05-03 04:26

자연재해는 계급이나 인종을 가리지 않는다. 자연재해 앞에서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재해의 피해가 사회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일본 안팎에서는 이번 일본 사태의 피해자를 ‘일본인’이라는 범주로 묶고 있다. 피해 지역이 일본 영토이고 또 일본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으니 일본 사태를 일본인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피해 지역에는 다수의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이들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일본 언론이 외국인 피해를 적극적으로 다룬 흔적은 찾기 힘들다. 재해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에는 약 7만5천 명의 외국인(중국, 재일조선인, 필리핀 등의 순)이 등록돼 있다. 이 중 행방불명자는 278명이고 사망이 확인된 사람은 15명이다. 아직 시신 2501구의 신원 확인이 끝나지 않았으니 앞으로 외국인 피해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또 조선학교가 지정피난소로 지정돼 이곳에 피난해 있던 재일조선인에게 구호물자가 전달된 것은 다른 지정피난소에 구호물자가 전달되고 나서 열흘이나 지난 뒤였다. 따라서 이번 재해를 일본인만의 이야기로 ‘포장’하는 것은 역시 피해야 할 일이다.

»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대피한 주민들이 임시 거처에 누워있다. 대부분의 대피 주민이 고령자다. REUTERS/ KIM KYUNG-HOON

»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대피한 주민들이 임시 거처에 누워있다. 대부분의 대피 주민이 고령자다. REUTERS/ KIM KYUNG-HOON

고령사회 도호쿠의 비극

하지만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인 피해자라 해도 그 속에는 다종다양한 인생사가 얽혀 있고, 그런 다종다양한 인생사가 생사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지역에서 지진해일에 맞닥뜨렸다고 해도 계급적·지역적·성별 층위에 따라 피해는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가난한 사람의 집은 지진에 더 취약하니 피해를 입기 쉬울 것이다. 반면에 잘사는 집은 상대적으로 튼튼하게 지었으니 지진 피해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면 도쿄에서는 1975년부터 지진재해 대책 조례에 입각해 지역별 건물붕괴위험도 순위를 발표하고 있는데, 이 중 상위를 차지하는 지역은 대부분 서민밀집지구다.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재해라도 그 피해에 지역별·계급별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자연재해를 특정 민족이나 국민의 고난 이야기로 ‘포장’하는 것은 특정 국가 내부에서 살아 숨 쉬는 계급·지역·민족별 격차를 은폐하는 구실을 한다.

이번 사태에서 일단 눈에 띄는 것은 고령자에 피해가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3월15일 보도를 보면, 신원이 확인된 지진해일 사망자 2853명 중 60살 이상이 65.1%를 차지하고 있다. 1995년 한신 대지진 때도 고령자의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도시형 재해인 한신 대지진 때는 20대 희생자의 비율도 결코 낮지 않았다.

원전 ‘긴자’에 일어난 ‘만일’

고령자 피해가 많은 것은 도호쿠(동북) 지역이 인구구성에서 고령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도호쿠 지역은 일본 전체에서도 고령화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이다. 2010년 현재 도호쿠 지역의 고령화율(65살 인구 비율)은 25.2%로 일본 전체 22.7%, 도쿄 20.9%보다 높다. 2000~2005년 인구 증감률을 자치단체별로 보면, 인구 감소율 상위 10위 중에 도호쿠의 6개 현 중 5개 현이 포함돼 있다. 대도시 센다이시를 끼고 있는 미야기현을 제외하고 아키타·아오모리·야마가타·이와테·후쿠시마현이 모두 들어 있는 것이다. 이런 고령 과소화(고령화로 인한 인구 과소화) 현상은 이번 지진해일로 피해를 입은 태평양 연안 마을들에서 현저하다. 고령 과소화가 진행되지 않았다면 방재대책이 그만큼 충실했을 수도 있었고, 재난 때 고령자가 젊은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일부는 살아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지진이나 해일은 자연재해지만 피해는 계급적이고 지역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로 인해 실시된 도쿄전력의 계획정전에서도 계급적·지역적 성격이 드러난다. 절전을 위해 도쿄 등의 수도권에서는 계획정전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도쿄 중심에 있는 23개 구 중에서 도쿄의 대표적 서민 거주 지역인 아라카와구만 정전 대상 지역이다. 요코하마의 관광지이자 고급 주택가인 야마테 지역도 정전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곧 지진해일 피해에서도, 대책에서도 계급적·지역적 편향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원전 문제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곧 인구 과소 지역(농촌=도호쿠 지방)과 인구 과밀 지역(대도시=도쿄 등의 수도권)의 관련이다.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이 있는 곳은 행정구역상 후쿠시마현 후타바마치와 오구마마치다. 각각 인구가 6천 명, 1만 명 남짓인 조그마한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생산되는 전기가 약 100km 이상 떨어져 있는 도쿄 등의 수도권으로 공급된다. 후쿠시마 원전이 이번 사태로 가동을 멈추자 도쿄 등에 전력난이 생긴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의 원전은 대부분 대도시에서 100~200km, 지방도시에서 40~50km에 떨어진 곳에 있다. 원전 방사능 유출과 같은 리스크는 과소 지역이 부담하고 대도시 소비자들의 도시 문명은 이런 리스크 위에서 수혜를 누린다. 공간 배치의 위계적 구조이다. 원전 추진론자들은 원전이 깨끗하고 반영구적이며 저렴하며 안전하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그런데 원전은 거의 과소 지역에 건설한다. 그렇게 안전하다면 인구 과밀지인 대도시를 피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만일’을 대비해서 인구 과소지에 원전을 만든다. 그리고 ‘만일’이 지금 일어난 것이다.

» 방사능 유출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외진 농촌지역을 찾아가는 원전입지의 전형적인 사례다. 연합 AP

» 방사능 유출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외진 농촌지역을 찾아가는 원전입지의 전형적인 사례다. 연합 AP

물론 리스크를 부담하는 과소 지역에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법인세·고정자산세 등의 세수입 증가와 각종 국고보조금이 그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원전이 있는 마을을 원전 ‘긴자’라 부른다. ‘긴자’는 도쿄의 대표적인 고급 번화가다. 우리말로 바꾸면 원전 ‘명동’쯤 될 것이다. 원전 유치를 대가로 주어지는 각종 금전적 혜택 덕택에 긴자처럼 번화하고 흥청망청해졌다는 뜻이다. 원전 유치를 통해 농어촌 지역의 과소화와 과밀 지역의 전력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발상을 밝힌 사람은 1970년대 초·중반 총리를 지낸 다나카 가쿠에이다. 그는 재임 기간에 자신의 고향인 니가타현에 원전 건설을 추진하며, “도쿄에 만들 수 없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 (원전을) 만들어서 도쿄에서 돈을 보내게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원전이 원전을 부르는 악순환

그렇다면 원전이 과소화를 해결해주었는가?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가장 피해가 컸던 원전 ‘긴자’인 후타바마치를 사례로 들어보자. 고도성장기에 접어들면서 변변한 산업 하나 없던 후타바마치의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래서 일본의 ‘티베트’라 불릴 정도였다. 티베트라는 형용은 그 자체로 이미 차별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티베트에서 긴자’로 탈바꿈하려는 방법으로 1961년에 후타바마치는 원전 유치를 결정했다. 원전이 건설되고 가동을 시작하자 세수가 늘었다. 1974년에 만들어진 국고지원금 덕택에 마을은 윤택해졌다. 각종 도로가 생겼고 마을 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대규모 도서관 등의 공공시설, 술집, 가게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부터 재정 위기가 찾아온다. 원전 국고지원금이 기간 종료에 따라 1986년부터 더 이상 지급되지 않게 되었고, 게다가 고정자산의 상각이 진행됨에 따라 고정자산세 수입이 해마다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원전 건설이 종료되자 일자리도 줄어들었다. 물론 일자리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가동 중인 원전은 1년에 한 차례 정도 가동을 중지하고 원자로 주변의 정기검사를 한다. 이 정기검사는 1시간 정도만 일해도 1980년대 기준으로 1만~2만엔(현재 환율로 13만~27만원)이나 받을 수 있는 일자리다. 피폭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일이니 선뜻 나서기 힘들다. 게다가 원전 회사 쪽이 이익률을 높이려고 정기검사 기간을 점차 단축하는 바람에 일자리도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국고지원금으로 건설한 공공시설의 운영비는 줄어들지 않았으니 결국 후타바마치는 적자 재정에 빠지게 된다. 남은 길은 원전을 추가로 지어서 국고지원금을 받고 고정자산세 수입을 늘리는 길밖에 없었다. 후타바마치 의회가 1993년에 원전 추가 유치 결의를 한 데에는 이런 사정이 작용했다. 결국 대도시의 전력난은 해소되었지만 농촌 지역의 과소화는 해결되지 않았다. 원전 ‘긴자’는 원전의 ‘볼모’가 되었다.

도쿄에 원전을! 서울에 원전을!

물론 이런 모순에 눈뜬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소수의 주민들이 1970년대부터 ‘후타바마치지방 원전반대 동맹’이라는 단체를 조직해 원전 반대운동을 펼쳐왔다. 1995년에 원전이 자리한 후쿠시마현 남부에 있는 인구 1만5천 명의 작은 마을인 다나구라마치 주민 2500명이 서명을 모아 “도쿄에도 원전을 만들어라”고 도쿄도 지사에게 제안했다. 또 히로세 다카시라는 작가가 1980년대에 출판해 일약 인기를 끈 이라는 책에서도 원전의 혜택만 누리는 도쿄 사람들의 원전에 대한 무감각함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원전의 수혜자인 대도시 소비자들의 태도는 여전하다. 물론 도쿄 주민들도 절전·성금 등을 통해 피해자들의 고통을 나눠가지려 하고는 있다. 하지만 언론보도를 보는 한, 이는 어디까지나 ‘같은 일본 국민’이라는 범주를 통해서다. 농촌에서 인구를 빨아들이고 과소화를 불러일으킴으로써 과소 지역이 리스크를 떠안을 수밖에 없게 만든 수혜자로서의 자각은 찾기 힘들다. 대도시 주민들도 원전의 볼모가 된 셈이다.

이번 사태를 ‘일본 국민’의 이야기로 ‘포장’해나가려는 움직임은 일본 안팎에서 이미 감지되고 있다. 그 안에 숨겨진 계급별·지역별 층위를 가려내지 않고서는 원전의 ‘볼모’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곧 국민이라는 ‘볼모’가 원전의 ‘볼모’인 것이다. 이는 한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만일 내가 ‘서울에 원전을!’이라고 말한다면 서울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권혁태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권혁태 교수가 일본의 위기와 응전을 분석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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