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깜빡번쩍광고 유감

등록 2011-10-26 16:59 수정 2020-05-03 04:26

나는 지금 독일 베를린에 있다. 몸은 먼 타국에 있어도 내 관심은 아직 한국을 향하고 있다.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먼 독일 땅에서도 나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내가 주로 보는 한국 매체는 나 나 정도다. 세 매체는 한국에서도 진보매체로 평가받는 곳이다. 그런데 한국의 인터넷 매체는 진보 쪽이든, 보수쪽이든 똑같은 점이 있다. 일단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을 하고 매체에 들어가면 뜨는 광고들. 그중에도 ‘요상한’ 광고들. 그것들은 흡사 밤의 유흥가 불빛들 같다. 깜빡깜빡, 번쩍번쩍…. 기사를 보고 있으면서도 양옆에서 깜빡이고 번쩍이는 광고들 때문에 어지럽고 그쪽으로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이 속상하다.

일러스트 김대중

일러스트 김대중

진보매체의 요상한 광고들

‘허리 44 가슴 C컵 환상 몸매 팔자주름 한 번 치료 90살까지 거품 뺀 임플란트 가격은 우리 엄마 누나 맞아….’ 다른 나라도 그런가, 하고 독일 보통의(진보도 보수도 아닌) 매체에 들어가보았다. 깜빡이고 번쩍이는 것이 없다. 독일의 라 불리는 건물 외벽에는 벌거벗은 남자(가톨릭 신부라고 했던가?)의 성기를 길게 이어붙인 부조가 새겨져 있었다. 권위나 엄숙주의에 대한 일종의 희화화인 셈이다. 그걸 보고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거나 낄낄거리며 구경하고 현지 사람들은 그런 관광객을 보며 그저 픽 웃거나 무덤덤히 지나간다. 어쨌든 ‘성기’ 하면 무조건 ‘외설’이 되어 있는 나라에서 살던 사람이니, 건물 외벽에 ‘외설스럽게도!’ 남자의 성기를 다 새겨놓은 신문사라면 인터넷판에도 응당 외설스러운 ‘거시기’들이 있지 않을까 하고 들어가본즉슨 아무것도 없다. 그러면, 독자들로 하여금 진지한 뉴스로부터 눈을 멀게 하고픈 마음에 그런 외설들을 광고로라도 싣는 보수신문이 여기에도 있지 않을까 하여 들어가본 독일의 ‘조·중·동’, 을 들어가봐도 ‘깜빡이’도 없고 ‘번쩍이’도 없이 심심하고 고졸하고 담백하다. 베를린의 밤거리를 지나다 보면 유흥가를 찾기가 어렵다. 어쩌다 밤에 불빛 깜빡이는 곳을 가면 동네 구멍가게 수준의 ‘카지노’뿐. 술집이란 술집들은 죄다 어둡기 그지없고 음악 하나가 없다.

내가 살다온 한국, 경기 일산과 광주의 밤거리를 생각한다. 밤이면 온 도시가 다 번쩍번쩍, 쿵쾅쿵쾅이다. 일산은 신도시라 그렇다 치자. 광주는 신도시도 아니고 오래된 도시인데도 그랬다. 오래된 도시의 밤거리가 그리도 ‘난리’인 것은 광주가 가난한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먹고살 다른 길이 막혀 있는 도시라서. 거기에 또 하나, 번쩍이고 쿵쾅이는 광주 밤거리의 연원을 나는 30년 전의 광주에서 찾는다. 광산도시 강원도 태백이 지금 저렇게 휘황한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한국의 보수신문이 요상한 광고들을 싣는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5공화국 시절의 ‘3S’ 정책과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 밤거리의 휘황함이 속상하고 슬프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산다는 독일 밤거리의 어둠과 고요가 부럽다. 부러워서 속상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보수매체와 하등 다를 것 없이 진보매체에 깜빡이는 요상한 광고들에 화가 난다. 허리 사이즈 44와 가슴 C컵이 환상 몸매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리고 그런 몸매를 가지고 싶은 여성에게는 그 광고가 좋은 정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허리 사이즈와 가슴 사이즈가 환상 몸매라는 광고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우스운지를 알고 있을 매체가 아무런 자의식 없이 그런 광고를 깜빡이게 하는 것이 나는 허무하다. 내가 그런 광고들이 실리는 과정이라든가 사정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일 수도 있겠다.

대부업 광고 찍은 연예인보다

한때 대부업 광고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욕을 먹은 적이 있다. 진보를 표방한(적어도 다수의 사람들이 진보라고, 혹은 상식의 신문이라고 믿거나 믿고 싶어 하는) 에서만이라도 그런 광고가 사라지길 원한다. 그런 광고를 차단하는 방법을 강구하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는 대부업 광고를 한 연예인들보다 더 미울 것이다.

공선옥 소설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