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식(火食)이 오늘날의 인류를 만들어냈다는 건 정설이다. 화식으로 재료의 선택이 다양해졌다. 먹을 수 없던 힘줄과 가죽, 뼈도 먹을 수 있게 됐다. 영양을 몸에 더 채운 인류는 그걸 에너지로 바꾸었다. 그 힘으로 더 많은 개간과 수렵, 채집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음식에 ‘맛’의 개념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맛은 재료의 차별을 좀더 진화시켰다. 맛에 의해, 재료는 불평등한 선택을 받게 되고, 인류의 계급 분화를 촉진했다, 고 나는 생각한다. 그릴도 마찬가지다. 화로나 화덕이라면 대중적인 음식을 떠올리나, 그릴은 최고급의 서양 요리를 연상시킨다. 그릴 요리는 적어도 대한민국의 비정규직은 접근하기 어렵다. 그릴 요리는 비싸다. 같은 열원을 쓴다고 해도, 그릴이라는 차별적인 외래어는 가격을 올려받을 수 있는 동력이다. 선명한 격자무늬의 고기는 계급적 태도를 선언한다. 그것은 다른 의미에서 선택적 낙인(烙印)이다.
오래전 유럽의 식당 부엌에서는 숯을 썼다. 요리사들의 평균수명은 서른을 넘기지 못했다.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모터를 이용한 환풍기도 없는 지하 주방에서 요리사들은 가스를 마시며 귀족들이 먹을 요리를 했다. 보수와 생명을 바꾸었다. 조지 오웰이 프랑스 파리에서 싸구려 호텔을 전전하며 요리사 대신 접시닦이를 한 건, 어떻게 보면 그에겐 다행이었다. 석유와 숯의 그을음과 연기는 요리사들의 폐를 매미의 허물처럼 바스라뜨렸다. 내가 요리를 하는 지금은 가스를 쓴다. 가스 역시 요리사의 뇌와 폐를 공격한다. 가스에 올려놓은 그릴은 격자무늬를 만들어 손님들의 주머니를 털지만, 요리사에겐 수명 단축의 기호다. 그건 다른 의미에서 선택할 수 없는 낙인이다.
그래도 요리사들은 그릴을 사랑한다. 플랫톱- 넓은 철판으로 된 다용도 열원- 이 요리하기에는 편리하지만, 그릴 하나가 있으면 든든하다. 그릴은 직접 가열을 하며 재료의 맛을 돋운다. 재료에 포함된 지방을 태워 2차적으로 훈연 효과를 낸다. 그건 때론 발암물질을 만든다. 물론 노회찬이 갈아달라고 외친 삼겹살 불판 역시 직화로 구우면 발암물질이 생긴다. 그릴은 지방을 태워서 맛을 탐욕적으로 변화시키는 미덕 말고도, 마치 묵묵한 산초 판사처럼 유력한 조력자다. 내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도 그릴 위의 재료는 한번에 홀랑 재료를 익혀버리지 않는다. 천천히, 굽는 일을 수행한다. 깜빡 재료의 존재를 잊어버려도, 프라이팬처럼 시종 뒷면의 익힘을 노려보고 재지 않아도 마치 스스로 일하는 것처럼 적당히 재료를 굽는다. 좀 늦게 그릴을 쳐다본다고 해도, 수습할 수 있다는 건 전쟁터 같은 저녁 8시의 부엌에서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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