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변화를 선택했다. 5월6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가 니콜라 사르코지 현 대통령을 눌렀다. 17년 만의 정권 교체다. 올랑드는 당선 직후 “긴축은 더 이상 우리의 운명일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대자본 위주의 경제위기 타개책에 반대한다는 선언이다. 지난해 5월, 프랑스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시되던 사회당 후보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미국 뉴욕에서 호텔 직원 성폭행 미수 사건에 휘말려 낙마할 때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시민은 포기하지 않고, 정치는 역동적이다. 이를 두고 많은 한국인들이 12월 대선을 떠올릴 터. 누군 불길한 전조로, 누군 희망의 빛이라 여길지 모르겠다.
한국의 여러 언론매체는 올랑드의 당선 사실과 함께, 그의 IT정책보좌관인 플뢰르 펠르랭이 새 정부의 장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펠르랭에겐 ‘김종숙’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생후 3~4일쯤 됐을 때 거리에서 발견돼 고아원에 보내졌고, 6개월 뒤 프랑스로 입양됐다. 펠르랭이 프랑스에서 자력갱생하는 데 한국이 한 일은 없다. 거리에 버려진 어린 김종숙을 프랑스에 ‘수출’한 사실만 빼고.
여기 또 한 사람이 있다. 팀.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TRACK) 대표인 제인 정 트렌카에 따르면, 팀은 지난해 봄 서울 이태원 거리에서 노숙인 생활을 하다 한 국외 입양인한테 발견됐다. 3살이던 1977년 미국으로 입양된 지 34년 만이다. 팀은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18살 때 미국인 부모는 그와 절연했다. 팀은 그 뒤 정신병원 등을 전전하다 지난해 봄 하와이에서 한국으로 추방됐다. 팀은 한국말을 모른다. 한국 이름이 ‘모정보’라는데, 누가 지어줬는지 모른다. 시장을 헤매다 고아원에 맡겨진 사실만 기억한다. 펠르랭처럼 팀에게도 한국이 한 일은 없다. 어린 모정보를 미국에 ‘수출’한 사실만 빼고.
정부 공식 통계를 보면, 정부 수립 이후 2011년 말까지 국외 입양인 수는 16만4612명이다. 같은 기간 공식 통계에 잡힌 국내 입양인 수의 두 배가 넘는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이를 가장 많이 ‘수출’한 나라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를 자랑한 지난해에도 916명의 아이를 ‘수출’했다. 전쟁도 대기근도 없는데, 왜?
5월11일은 ‘입양의 날’이고, 그날부터 일주일은 입양주간이다. ‘입양 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입양특례법)은 “건전한 입양 문화의 정착과 국내 입양의 활성화를 위해” 이렇게 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입양인 문제에 천착해온 단체들은 5월11일을 ‘싱글맘의 날’이라 달리 부른다. 요즘 입양인의 90% 남짓이 미혼모의 아이라는 사실을 환기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모든 아동은 그가 태어난 가정에서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는 입양특례법의 선언이 현실이 되려면, 입양을 장려하기에 앞서 싱글맘의 고단한 처지를 개선하려는 국가와 사회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펠르랭과 팀의 경우에서 보듯, 입양인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그 운명이 어떻든 그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포기하지 못한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1995~2005년 7만6648명의 국외 입양인이 한국에서 생부모를 찾아나섰지만, 성공한 경우는 2113명(2.7%)뿐이다. 너무도 많은 이들이 자신의 뿌리를 필사적으로 찾으려 한다는 사실, 그 애씀의 결실이 2.7%뿐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나.
그나저나 한국 거주 외국인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다수는 결혼이민자·이주노동자다. 이주노동자 인권 개선에 애써온 미셸 카투이라 전 이주노조 위원장의 재입국을 거부하는 나라에서 베트남계 한국인, 몽골계 한국인, 필리핀계 한국인 등이 장관이 될 날은 언제쯤 올까. 펠르랭과 팀의 엇갈린 운명에 잠 못 이루는 밤, 커피맛이 참 쓰다.
이제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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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