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어제보다 나았으면 그랬으면<한겨레21>은 2021년 8월 말부터 4개월간 ‘지방소멸’ 위기를 심층취재했다. 전남 고흥군, 부산 동구, 경남 거창군, 전남 영암군, 대전광역시에서 도시마다 길게는 10일간 취재했다. 인구절벽 위기인 농어촌 마을, 이주노동자들의 불안정 노동으로 기능을 유지하는 쇠퇴한 산업도시, 초등학교 폐교 위기를 겪는 산촌마을, 신도시가 그늘을 드리운 대도시의 원도심 사람들을 만났다. 소멸, 쇠퇴, 위기라는 공허한 단어를 지역주민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로 채우려 했다. 그게 얼마나 보편적인 목소리인지 궁금했다. 89곳 인구감소지역 주민의 실태와 인식 조사에 착수한 이유다.
인구감소지역 주민 44% “3년 안에 이주”“더는 여기 못 있겠다. 최대한 빨리 이사할 생각이다.” -김○○(충북 옥천군·30대·여·주부) “여긴 출산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2세 계획할 즈음 청주로 이사할 생각이다.” -김○○(충북 보은군·30대·여·영양사)
소멸도시 구하기, 큰 그림 없이 리모델링으로 될까먼저 지역 간 불균형 발전을 전 사회적으로 공론화해야 한다. 그리고 균형위를 행정위원회로 격상해 강한 지휘권을 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균형발전 마스터플랜을 세워 체계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이제 정부의 강력한 개입이 없으면 지역 간 불균형을 완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출근길이 외국 같아”[보이지 않는 노동자의 도시]인구 한 명은 어떻게 더해지는가. 시민 한 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전남 영암군 삼호읍은 한때 인구 한 명, 시민 한 명을 더할 게 명백해 보이는 마을이었다. 무화과 최대 산지 혹은 영산호 국민관광지 정도로 알려진 동네에, 현대삼호중공업과 대불국가산업단지(대불산단)가 들어섰다. 노동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는 인구일 것이며, 동시에 시민일 것이다. 정말 그랬다. 1990년대 초만 해도 1만 명이 안 됐던 인구는 2004년 2만 명을 넘어섰다. 삼호면에서 삼호읍이 됐다.2021년 9월 말 삼호읍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특별 웹페이지 오픈<한겨레21>이 2022년 1월20일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특별 웹페이지를 오픈합니다. 웹페이지는 기억과 생존, 통념과 연대 등 4개의 장으로 구성했습니다. ‘기억’에선 10대 청소년부터 80대 노인에 이르는 여성들이 언제 어떻게 남성으로부터 살해당하는지를 짧은 애니메이션 클립과 그래픽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이 죽음의 행렬을 부르지 못하네소녀들의 주검은 2021년 5월 충북 청주시의 아파트 단지 화단에서 발견됐다. 10대들은 용기 내어 성폭행 피해를 알리고 진실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함께 죽자” 가장 파괴적인 남성성의 결말“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죽자. 너랑 나랑 깨끗하게 가자.” 2020년 6월 서울 도봉구에서도 ‘관계를 정리하자’는 말을 들은 남성이 교제하던 여성을 협박하다 살해했다.
④ 공장만 남은 도시“우리(현대중공업)가 조선판 공무원 아니겠나.” 2012년 고졸 신입사원이었던 김현중에게 한 선배는 말했다. 김현중의 나이 19살이었다. 정규직 노동자는 그만큼 고용이 보장된 ‘철밥통’이었다. 선배를 따라 높이가 120여m인 골리앗 크레인 위로 올라갔다. 실습생 때부터 가장 올라가고 싶던 크레인이었다.
③ 동구 아줌마의 구직강경남과 김형식은 희망퇴직 전까지 홑벌이 가장이었다. 강경남과 같은 부서 사무보조원이었던 아내는 결혼 후 퇴사했다. 결혼, 임신, 출산을 하면 여성 노동자들은 축의금을 받고 회사를 나가는 분위기였다. 외환위기와 세계경제 위기 같은 충격에도 ‘남초’ 산업도시인 울산 동구는 아빠가 돈을 벌고 엄마가 육아와 가사를 맡는 전통적 가족 형태를 지켜왔다. 울산의 맞벌이 가구 비율은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1년부터 8년 내리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② 개꿈2018년 1월 울산 동구의 일산새마을금고 방어지점에서 강도 사건이 일어났다. 1억1천만원어치의 현금 5만원권 1200장과 1만원권 5천 장을 챙겨 경남 거제로 달아났다. 범인은 범행 6시간30분 만에 거제 옥포동의 한 모텔에서 붙잡혔다. 울산 동부경찰서로 압송되던 그에게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졌다. 포승에 두 손이 단단히 묶인 채 고개를 숙인 그는 경찰관 두 명에게 붙들려 가며 답했다. “힘들어서 그랬지요, 사는 게….” 강도 사건의 범인은 49살의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였다. 그가 달아난 거제는 이전에 하청 노동자로 일했던 곳이었다.
① 도로 신입‘찰칵.’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2015년 12월,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안에 있는 전통 한옥인 영빈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지은 영빈관을 2009년 새로 고친 건물이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현대중공업 작업복을 입은 50대 후반 남자들이 한 줄로 섰다. 그 사이에 정년퇴직자 강경남(62·당시 58살)도 서 있었다. 그의 배우자와 다른 동료들의 배우자들이 앞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싱그러운 꽃다발을 배우자들이 안고 있었다. 이들의 뒤쪽에 ‘현대중공업 정년퇴임식’이라는 펼침막이 내걸렸다.
섞여야 한다한때 혁신으로 여겼으나, 결국 고립으로 이어진 첫 사회주택의 역사가 있다. 영구임대아파트(영구임대) 옆 작아진 학교는 그 적나라한 단면이다. “소외된 이웃들이 손바닥만 한 비좁은 집에서 여러 세대가 비벼대며 살아야 하는 달동네를 그대로 두고 진정한 국민 화합도, 민주주의 발전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노태우 전 대통령, 1989년 서울 번동 영구임대아파트 기공식)
늘어나는 학생 줄어드는 기회2017년 1208명에서 그사이 또 100여 명이 늘었다. 서울시 과대학교 기준(1680명)에는 들지 않는다. 그래도 한 학년 8학급 정도를 생각하고 만들어진 학교가 갑자기 늘어나는 아이들을 감당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