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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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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학구역·학교형태 허물고 다시 짜자

학령인구 고르게 분포하도록 통학구역 짜고, 통합운영학교 등 소규모 학교에 상상력 발휘해야
등록 2020-03-21 23:56 수정 2022-12-10 11:08
서울 양천구에 있는 공공임대아파트 옆 한 초등학교. 류우종 기자

서울 양천구에 있는 공공임대아파트 옆 한 초등학교. 류우종 기자

2015년 1월26일. 새해 첫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한참 ‘돈’ 이야기를 하다 불쑥 ‘학교’ 이야기를 꺼냈다. “교육재정 교부금의 경우도 학생 수가 계속 감소하는 등 교육환경이 크게 달라졌는데도 학교 통폐합과 같은 세출 효율화(예산 절감)에 대한 인센티브가 전혀 없다.” 교육청에 인센티브 금액을 많이 줘서라도 학교를 적극 통폐합하라는 뜻이었다. 그해 말 교육부는 통폐합 대상 소규모(과소) 초·중·고교를 확대하고, 이듬해에는 학교 통폐합시 교육청에 지급되는 인센티브 금액을 높이는 방안을 발표했다. 2018년 여름, 서울 강서구 ‘마곡2중학교’(가칭)를 신설하는 대신 인근 공진중학교 등을 폐교하기로 한 서울시교육청의 결정도 이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 나왔다(42쪽 참조).

“교육부 차원 도시 소규모 학교 지원 정책 없어”

박근혜 정부의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적정규모 학교 육성’ 정책을 계승·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1982년부터 농·산·어촌 지역을 중심으로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하는 정책이 지속됐는데, 2009년 시작된 적정규모 학교 육성 정책은 결이 조금 다르다.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이 교육복지 정책의 하나로 포장됐다. 소규모 학교를 적정규모 학교로 만들면, 교육과정이 정상화되고,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으며, 학교의 교육력이 강화돼 결국 교육 격차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정부는 힘주어 말했다.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교육정책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폐교의 직간접 비용과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소규모 학교를 없애는 재정 효과가 크지 않고, 소규모 학교가 사회성·인성 교육에 긍정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으며, 폐교로 인해 지역사회가 위축·몰락하는 사례도 있다는 반론이 제기됐다(‘학교 통폐합 정책의 주요 쟁점과 과제’, 박삼철, 2014). 그러면서 이 정책을 두고 “학교 규모를 기준으로 소수의 학교를 ‘선택’해 ‘집중’ 육성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경영 담론으로 형성된 정책”(‘적정규모 학교라는 담론의 질서’, 서덕희, 2019)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소규모 학교를 적극적으로 통폐합하지도, 적극적으로 살리지도 않는 ‘어정쩡한’ 입장이다. 현재 적정규모 학교 추진 정책은 명목상으로만 존재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한겨레21>에 “적정규모 학교 육성 정책을 직접적으로 폐지한 적은 없고, 시·도 교육청별로 자체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도 “최근에는 학교 폐지가 지역공동체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있고 주민 반발도 있어 적극적으로 정책을 추진하지는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교육부 차원에서 농·산·어촌 지역이 아닌 도시 지역의 소규모 학교에 지원하는 정책은 없는”(또 다른 교육부 관계자)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작은 학교를 무작정 없애는 정책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고, 작은 학교를 살리는 정책을 집중적으로 펴야 한다고 했다. 학령인구가 줄고 도심이 비어가면서 농·산·어촌뿐 아니라 전국에서 소규모 학교는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교육부는 도시 지역에서 초등학교 전교생 240명 이하, 중·고등학교 300명 이하인 학교를 소규모 학교로 본다. 2019년 기준 서울시에선 초·중·고교 72곳, 경기도에선 250곳이 소규모 학교로 집계된다.

특히 ‘공동화 현상’이 눈에 띄는 학교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구임대아파트를 비롯한 공공임대아파트를 품고 있는 학교들이 대표적이다.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저출산 추세, 임대아파트 입주민 고령화, 분양아파트 주민들의 기피와 배제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그로 인해 유난히 작은 학교는 학부모의 외면으로 더 작아지는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

4년마다 국회의원 선거구 조정하듯이

작은 학교와 이웃 학교 간의 격차를 좁히는 방식으로 ‘초등학교 통학구역’(거주지별로 초등학교 배정을 달리하기 위해 설정된 구획) 전면 조정이 있다. 현재 통학구역은 시·도 교육청 산하 교육지원청의 교육장이 매년 입학 전에 학급 편제와 통학 편의를 고려해 결정하고 있다. 평상시에는 몇 년씩 같은 통학구역을 유지하다가 학교 신설·이전·폐교, 신축 아파트 입주, 재개발 또는 재건축 착공으로 인한 이주 같은 큰 변화가 있을 때 조금씩 바꾸는 식이다. 임대아파트가 있는 ‘비선호’ 통학구역과 분양아파트로만 둘러싸인 ‘선호’ 통학구역 사이 학생 양극화가 쉽게 해소될 수 없는 구조다.

이런 통학구역을 모든 초등학교 학령인구가 최대한 고르게 배분되도록 한 번에 조정하면 ‘도심 속 섬’이 된 학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현장 목소리가 많다. 4년마다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지역별 인구를 기준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는 방식을 떠올리면 된다. 현재 서울시교육청도 장기적인 학생 수 감소에 따른 학생 배치 기준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에서, 통학구역의 현황을 파악하고 개선할 점은 없는지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서울에 있는 영구임대아파트 옆 소규모 학교에서 근무했던 한 교장은 “지금은 통학구역도 학교나 부모에게 하나의 ‘기득권’처럼 돼 있어 특정 학구만 조정하자고 하면 큰일이 날 것처럼 반발할 것”이라며 “서울의 특정 교육지원청이 아닌 서울시교육청 차원에서 2~3년의 유예기간을 둔 뒤 통학구역 조정을 한 번에 하면 간단하다”고 말했다.

이웃한 두 학교를 섞는 방법도 있다. 최근 서울 노원구에서 영구임대아파트를 곁에 둔 중현초등학교(전교생 200명)와 분양아파트 사이에 있는 중평초등학교(1563명)를 두고 시도됐던 방식이다. 유치원과 저학년은 중현초에서, 고학년은 중평초에서 각각 최적화된 돌봄과 교육을 받는 방안이다. 이경철 서울시 노원구의회 의장이 제시한 통합 방안은, 학부모들의 의견 차이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충북교육청이 2018년부터 시범운영하는 ‘거점+캠퍼스형 학교’(1~4학년은 분교에 남고 5~6학년은 본교로 통학하는 방식),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시범운영할 예정인 ‘이음학교’(초·중교 또는 중·고교가 교육과정을 연계해 운영하는 통합운영학교)도 실험 중인 통합 모델이다. 경기도교육청에선 학교를 통합하는 대신 인근 소규모 학교들이 함께 체험활동도 가고 학교 행사도 하는 ‘공동 교육과정’을 일부 운영하고 있다.

박삼철 단국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외국에는 저학년 학생들만 모아 교육하다 크면 다른 학교로 옮겨가는 ‘유아학교’,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 들어가는 학교 등 (통합) 형태가 다양하다”며 “우리나라는 초중등교육법상 학교 종류가 엄밀히 정해져 있어 다양한 학교를 만들고 운영하기에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학생 수에 비례하는 운영경비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 인성교육 같은 교육 목표를 극대화하는 소규모 학교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를테면 서울시에는 2017년부터 운영되는 ‘서울형 작은 학교’(학교당 평균 2억5천만원·컨설팅 지원)가 있다. ‘아토피 제로(Zero)’를 추구하고 맨발 걷기를 하는 ‘숲속의 작은 학교’ 금천초, 가족독서캠프와 마을공동체의 문화예술 체험활동이 있는 ‘문화·예술·체육 학교’ 사근초, 이중언어(영·중·러) 교육을 하는 ‘세계시민학교’ 용암초 등이 있다. 아직은 서울에서도 극히 일부 학교에 불과하다. 조금주 상명대 계당교양교육원 교수는 “교육청이 학교에 운영경비를 지원할 때는 학생 수가 중요하기 때문에, 인원이 적은 학교는 적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며 “소규모 학교를 살리려면 인적·물적 자원을 전폭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당장 할 수 있는 일


적은 학생 수로도 학급 구성하도록


작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학부모와 학교는 아이들이 ‘똑같이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일부터 정부가 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교원은 시·도 교육청이 제각각 정한 기준에 따라 배정된다. 대부분 학급 수가 핵심이다. 경기도 초등학교에선 영어, 음악, 체육 등 특정 과목을 전문 지도하는 ‘교과 전담 교사’는 7학급 이상이어야 2명이 배치된다(35학급 미만 학교 기준). 또 12학급 이상인 학교에만 ‘비교과 전담 교사’인 보건교사가 있다. 예를 들어 ‘1개 학년-1개 학급’(총 6학급)인 작은 학교에는 교과 전담 교사가 1명만 있고, 상주하는 보건교사는 없다.
다만 경기도교육청이 2019년부터 시행 중인 ‘1교 1보건교사’ 정책에 따라, 교원이 배치되지 않는 학교가 개별적으로 기간제 보건교사를 채용하면 인건비를 지원한다. 시·도에 따라 형편이 조금씩 다르나, 작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한 구조인 것은 분명하다.
소규모 학교의 경우 다소 적은 학생으로도 학급을 구성할 수 있도록 기준을 낮춰주는 방안도 있다. 교원 배치가 좀더 수월해질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다양한 관계를 맺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올해 경기도교육청은 초등학교는 한 반에 30~32명(1학년은 28~30명), 서울시교육청은 한 반에 26명을 ‘학생 배치 지표’로 제시했다. 학생 수가 지표 아래면 1학급만 구성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기준에 따라 경기도 초등학교에선 2학년이 29명이면 2학급을 구성할 수 없다.
경기도 소규모 학교에 다니는 부모는 “작은 학교에서 한 학년에 1학급이 있냐, 2학급이 있냐 하는 것은 아이들의 교육과 돌봄, 안전 등에 중요한 문제”라며 “아이들이 똑같은 교육 환경에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혁신학교나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에선 다소 적은 학생 수로 1학급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한겨레21>에 “행정안전부나 기획재정부에서 주는 인력과 예산이 한정된 상황이라, 현재 학급 수가 많은 일부 큰 학교에서는 교원 부족으로 (배치돼야 할 교원의)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하는 일도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학생 수가 점점 줄어 큰 학교들이 없어지면 작은 학교에 추가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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