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몇 명이에요?”
2019년 12월, 교장 선생님은 어김없이 주민센터로 전화를 걸어 물었다. “24명이요.” 2020년 새 학기 초등학교에 입학하라고 부모들에게 취학통지가 된 아이들이 24명이라고 담당자는 말했다. 전년도 29명보다 5명이 더 줄었다. 24명이라도 모두 입학하면 다행이다. 그중 몇 명은 외국에 나가거나 다른 학교에 간다며 입학하지 않는다. 전년도에도 29명 중 9명이 입학을 포기해 20명만 1학년으로 들어왔다.
3월, 올해 입학생이 최종 결정됐다. 신입생은 20명. 전교생 125명. “올해는 아이가 늘어날까” 은근히 기대했던 교장 선생님의 마음은 잠시 허탈해진다. 그러다 곧 허허 웃는다. “올해도 아이들과 재미있게 지내보자.”
학교 간 거리 고려하지 않는 배치
1개 학년에 1학급. 신우영 교장이 전교생 이름을 다 외울 만큼 작은 학교는 산이나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 않다. 1기 신도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 한복판의 대단지 아파트, 쭉 뻗은 왕복 6차선 도로, 고급 빌라들 사이에 오리초등학교가 있다.
1995년 문을 연 오리초는 2010년까지만 해도 전체 24~30학급으로 운영됐다. 5개층 학교 건물은 아이들이 쉼 없이 재잘거리고, 우당탕 뛰어다니고, 까르르 웃는 소리로 가득했다. 그러나 조금씩 학생 수가 줄더니 신 교장이 취임한 2015년에는 8학급(156명)으로 줄었다. 이젠 1, 2층에만 아이들 발길이 닿는다.
2월13일 학교에서 만난 신 교장이 그동안 오리초에 생긴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뒤엔 긴 글도 보내왔다. “우리 학교의 이름이 알려지길 원치 않는다” “우리 학교가 작아진 이유가 알려지면 곤란하다”며 인터뷰를 거부한 다른 과소학교(소규모 학교·초등학교 전교생 240명 이하)의 교장·교감들과 달리, 신 교장은 학교가 겪는 어려움을 그대로 꺼내놓았다. “많은 학교가 겪고 있지만 드러내지 않았던 문제를 이제는 다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그가 입을 열었다.
오리초에는 중첩된 문제가 있다. 먼저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다. 전국 대부분 학교가 겪는 위기다. 그다음 도시계획의 실패로 “학교와 학교 간 거리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배치”다. 오리초와 이웃한 미금초와의 거리는 300m 남짓. 아이들 걸음으로도 5분이면 닿을 거리다. 몇몇 학교가 마주한 구조적인 문제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계층이 확연하게 드러나도록 구성된 통학구역”이다. 오리초 통학구역에는 50년공공임대아파트(이하 50년임대)인 ‘하얀마을 6단지’(1996년 1489가구 입주)가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를 비롯한 사회취약계층이 생활하는 영구임대아파트(이하 영구임대)와 달리, 50년임대는 철거민, 국가유공자, 청약저축 가입자 등이 입주한다. 그러나 영구임대처럼 임대기간이 무척 길고, 월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반영구임대’로 불리며 영구임대와 동일시되곤 한다. 통학구역에 50년임대를 가진 학교에는 특별한 문제가 생긴다. “우리의 주된 통학구역은 반영구임대예요. 그런데 그분들은 임차 조건이 유리해 이동이 없는 편인데, 벌써 (입주한 지) 24년이 됐으니 자녀들이 떠났죠. (다른 쪽 통학구역인) 고가 빌라는 젊은 학부모들이 입주하기 어렵고요.”
부동산중개소는 헛소문 퍼뜨리고
오리초에는 적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마저 모두 품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계층화된 통학구역이) 학부모 사회가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공동체로 어울리기보다는, 주거 구조에 따라 갈등하게 만들었다”고 신 교장은 생각한다. 한 반의 절반이 임대아파트에 사는 오리초와 대부분이 분양아파트에 사는 미금초. 일부 부모는 그런 이유로 오리초를 기피하고 미금초를 선택했다. 분당의 빈부 격차가 커지고 교육열이 높아지면서 구분 짓기에도 속도가 붙었다. 결국, 분리된 거주지에 따라 학교도 분리됐다. 오리초 학생 수는 125명이지만 미금초는 814명이다.
지난 5년간, 교장 선생님은 매일 아침 그 결과를 목격해왔다. “학교 앞에서 아이들 등교 맞이할 때 보면, (통학구역 중) 이쪽에서 몇 명이 미금초로 가요. 또 저쪽에서 몇 명이 불곡초로 가요. 분명히 우리 학교로 와야 할 아이들인데, 다른 학교로 가는 거죠.” 부모들이 거주지 통학구역에 있는 학교에 가지 않기 위해 거짓으로 주소를 옮겼는지, 다른 방법을 쓴 것인지 “조사 권한이 없는” 신 교장은 알지 못한다. 다만 “더 먼 거리의 이웃 학교로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면 미안”할 뿐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곤 한다.
안타깝게도, 작은 학교는 갈수록 더 작아진다. “일부 어른과 부동산중개소가 7년 전부터 ‘학교가 폐교된다’는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려 학교 기피 현상이 더 나타나게 하고 인근 주민들의 자존감, 교직원들의 사기와 열의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이로 인해 학부모 사이에 거리가 생기기도 한다. 5년 전, 오리초에 와서 처음 열린 ‘학부모 총회’ 모습을 신 교장은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까지 관행상 학부모회를 한 번은 이쪽(50년임대), 한 번은 저쪽(분양아파트)에서 맡아왔는데, 하필 그날 제 앞에서 그간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폭발한 거예요.” 학부모 사회를 안정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아이들의 으뜸 담임은 엄마들인데, 생활교육이 실패하면 엄마 책임”이라며 부모들을 다독였고, 이후 부모 연수를 통해 학교의 가치와 기능, 학부모의 자격과 의무를 함께 공부했다. 그 덕분인지 지금까지 학부모 갈등이 다시 표면화한 적은 없다.
어른들의 냉소적이고 차별적인 시선을 아이들도 느낀다. “요즘 애들이 얼마나 똑똑한데요. 우리 학교가 큰지 작은지, 왜 작은지 다 인식해요. 특히 중학교 진학 문제로 5학년 때부터 친구들이 전학을 많이 가거든요. 그러니까 알죠.”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친구들이 사는 곳이나 부모의 직업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서로 잘 논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남매’ 경험
50년임대에 사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공부를 덜 한다거나 문제를 일으킨다는 시각은 “어른들 편견이고 프레임”이라고 신 교장은 확신한다. “학생 수가 적으니 아이들 특유의 생기발랄한 학교 분위기가 좀 약한 정도지, 아이들에게서 특별히 생활교육이 필요한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5년간 경험했다.
그래도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 걱정이 앞선다. “전교생 이름을 다 알고 있어 내 자식 키우듯이 의사소통을 편하게 하니 아이들도 거리낌 없이 대하고, 생활교육도 잘하고 있지만” 아이들에겐 사회적응력, 문제해결력, 자주성, 도전정신, 리더십 등을 기를 더 많은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 또래 친구들과의 다양한 관계망은 필수 요소다.
배제와 편견을 딛고 아이들을 불러모으려고 학교도 분투했다. “어떻게 하면 좋은 학교, 재밌는 학교,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아이들과 부모들의 마음을 얻을까” “작은 학교로 이뤄낼 수 있는 비전과 가치는 무엇일까” 하고 신 교장은 고민해왔다. 혁신학교(전인교육을 표방하며 만든 자율학교)인 오리초 아이들은 한 달에 두 번씩 ‘교실 밖 교실’로 나가 온종일 자연에서 뛰놀고 체험하며,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 명씩 맺은 ‘6남매’를 통해 재미있는 형제자매 경험을 한다.
또 교장 선생님에게서 직접 공동체 생활규범과 서예·수채화·도예 수업을 받고, 다른 학교보다 더 길게 오후 6시까지 돌봄을 받고 있다. 다만 이런 노력이 가끔은 교장과 교직원들의 ‘열정페이’나 희생에 의존할 때가 있다. 학급 수를 기준으로 교과 전담 교사나 시설 담당 공무원이 배치되다보니, 6학급밖에 안 되는 학교는 인력 부족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
소규모 학교 모델 개발해야
유난히 오동나무가 많았던 마을에 세워진 학교. 이제 유난히 작아진 학교는 무얼 더 할 수 있을까. “학교는 그 존재만으로도 마을을 지키는 느티나무나 소나무처럼 정서적 믿음과 영원성의 가치가 있고, 문화센터로서 소통과 나눔과 배움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믿는 신 교장은 폐교, 다른 학교와의 통합만이 길은 아니라고 말한다. “학교를 상실했을 때 아이와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생채기가 생길지, 마을 공동체 생활과 연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숙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 교장은 지금이라도 도심 속 소규모 학교에 맞는 특성화 학교 모델을 개발해, 마을에 뿌리내린 학교의 생명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낮에는 학생들이 공부하며 뛰놀고, 밤에는 주민들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마을학교를 예로 들었다. “지금까지 아이들을 늘려 학교를 되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런데 구조적 문제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하나의 학교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더 늦기 전에 다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함께 만든 문제이므로.
글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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