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는 지속되고 수박은 맛없어진다. 여름이니까 그럴 수 있다. 전에도 이런 날이 있었다. 태양 아래, 잘 익은 단감처럼 단단했던 지구가 당도를 잃고 물러지던 날들이. 아주 먼 데서 형성된 기류가 이곳까지 흘러와 내게 영향을 주던 시간이. 비가 내리고, 계속 내리고, 자꾸 내리던 시절이. 말하자면 세계가 점점 싱거워지던 날들이 말이다. (…) 이런 식으로, 이렇게 오래 비가 내린 적은 없었다. 어머니도 살다 살다 이런 비는 처음이라고 했다. 지구가 정신병에 걸린 건지도 모르겠다고.”(김애란, ‘물속 골리앗’ 중)
2023년 7월11일. 중국 베이징발 인천행 비행기 안에서 김애란의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한 것도 ‘비 걱정’이다. 일기예보를 보니 그즈음 한국은 전국이 온통 장마와 폭우로 난리였다. 그래도 ‘여름이니까 그럴 수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폭염으로 불타는 베이징보다는 폭우가 쏟아지는 한국이 여름을 나기에는 차라리 더 ‘시원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비행기를 탈 때만 해도 한국에 그리 무시무시한 비가 쏟아지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6월부터 베이징은 40도 넘는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고 있었다. 뉴스에선 62년 만의 가장 ‘뜨거운’ 6월이라고 했다.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2022년 여름에도 뉴스에서 베이징이 ‘기상관측 이래’ 가장 무더운 여름이라고 했다. ‘폭염’이란 말로도 설명이 부족한 듯 전문가들은 ‘극단적인 날씨’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2023년 6월을 지내고 보니 2022년 여름은 ‘온화하고 따뜻한’ 날들이었다. 이렇게 ‘환장하게’ 더운 여름은 머리털 나고 처음인 것 같다. 아마 2022년에도 똑같은 말을 했을지 모른다.
한국에 도착한 늦은 밤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창밖은 온종일 “비 닿는 소리로 꽉 차가고”(같은 소설) 있었다. 텃밭에 심어놓은 고추와 깻잎, 호박 등 농작물 걱정을 하던 엄마는 비가 “징글징글하게도 내린다”고 했다. 뉴스에서는 곳곳에서 폭우로 집이 잠기고 사람들이 떠내려간 소식이 연일 ‘속보’로 올라왔다. 시시각각 불어나고 수위가 높아지는 재해 지역 인근의 하천과 강둑이 위험하게 넘실대는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 속으로 쉴 새 없이 비쳤다.
7월15일. 아침부터 긴급 뉴스 속보가 떴다. 폭우 피해가 유난히 컸던 충북 청주에 있는 한 지하차도가 잠기면서 출근길 버스와 차량들이 침수됐다는 소식이다. 인근 미호강에서 불어난 물이 갑자기 들이닥치면서 사람들이 미처 대피할 새도 없이 물속 터널에 잠기고 말았다. 이 사고로 모두 14명의 귀중한 생명이 물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2년 전인 2021년 7월, 중국 정저우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일어났다. 중국에서는 ‘정저우 7·20 특대폭우 사건’이라 부른다. 2021년 7월17일부터 23일까지 허난성 정저우 일대에 ‘유례없는’ 폭우가 쏟아졌고, 공식 발표만 3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정저우 일대는 순식간에 재난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거대한 ‘수중도시’로 변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7월20일, 정저우 시내에 있는 징광터널에서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폭우로 터널을 통제해야 했음에도 당국은 아무 조처를 하지 않았고, 그날 그 터널에 들어갔던 차량 수백 대가 순식간에 들이닥친 물에 속절없이 잠기고 말았다. 정저우시 당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이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차량 200대 이상이 수몰됐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각에 정저우시 지하철 5호선에서도 침수로 인명 참사가 발생했다. 며칠 내린 폭우로 지하철 내부가 서서히 침수되고 있었음에도 관계 당국은 사전 조처를 전혀 하지 않았고, 이 사고로 마지막까지 빠져나오지 못한 14명이 물속에서 잠들었다.
이들 참사가 발생한 뒤, 현지 당국과 중국 정부는 가장 먼저 언론 통제를 했는데 기자들의 취재를 막기에 급급했다. 사망자 명단도 발표하지 않았다. ‘당연히’ 가장 먼저 도착해서 애도를 표하고 사건현장을 책임지고 지휘해야 할 최고 지도자들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2020년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하고 도시 봉쇄가 한 달 이상 지속되는 ‘참사’가 벌어질 때 현장에 그림자도 비추지 않았던 시진핑 국가주석은 ‘정저우 7·20 특대폭우 참사’ 현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2012년 집권 이후, 중대재해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장쩌민과 후진타오 주석 시절에는 지진이나 홍수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민심을 달래고 언론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주석과 총리가 가장 먼저 재해 현장을 방문해 진두지휘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했다. 시진핑 주석은 그런 ‘요식행위’조차 하지 않았다.
7월23일. 스마트폰 화면에 중국에서 날아온 뉴스 ‘속보’가 알림으로 떴다.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시에 있는 한 중학교 체육관 천장이 무너지면서 훈련 중이던 학교 배구부 여학생과 코치 등 총 11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체육관 지붕에 불법으로 쌓아놓은 진주암 자재가 비를 맞아 중량이 늘어나면서 지붕이 그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고 한다.
중국 친구들이 연결된 소셜미디어를 열자 ‘난리가 났다’. 경악과 분노로 가득 찬 민심이 폭우처럼 분출했다. 그중 중국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많이 회자하는 동영상이 눈에 띄었다. 자식의 생사를 알 길 없던 가족들이 학생들이 옮겨진 병원에 모여 있고, 그들 주변을 정복과 사복을 입은 경찰과 보안요원, 각급 기관에서 파견된 ‘온갖’ 공무원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동영상 속 아버지가 비교적 차분하고 이성적인 언변으로 ‘항의’하고 있었다. “사고가 난 지 5~6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아이들 생사는커녕 그 어떤 소식도 들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이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아는데도, 담당 의사나 관련 공무원들 누구도 우리에게 아이들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 여기 이렇게 많은 경찰과 공무원이 달려왔지만 우리에게 직접 상황 설명을 해주는 이 한 명이 없었습니다. 다들 윗선에 우리 동향을 보고하러 오셨나보죠? (…)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오직 아이들의 생사입니다. 만일 잘못됐다면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게 제발 좀 알려만 주십시오. (…) 높으신 양반님들!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계시나요?”
이 영상은 나중에 삭제됐다. 그리고 사건은 아주 신속하게 ‘처리돼’ 묻혔다. 언론 통제는 말할 것도 없고 11명의 사망자 명단도 발표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 어떤 ‘높으신 양반’도 책임지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희생자와 유족은 고립되고 잊혀갔 다.
7월29일. 베이징에서도 ‘비보’가 날아들었다. ‘역대급 폭우’가 쏟아진다는 소식이었다. 태풍 ‘독수리’ 영향으로 베이징과 하얼빈 등 중국 동북부 지방과 인근의 톈진, 허베이 지역에 그야말로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다고 했다. 태풍 ‘독수리’가 7월28일 중국 남부지방에 상륙한 뒤 불과 83시간 만에 베이징에서는 1년 동안 내릴 비의 60%가 쏟아졌다.
그중 피해가 가장 심각한 지역은 베이징에서 멀지 않은 허베이성 줘저우다. 거의 모든 마을이 수몰되다시피 했고 지역 주민 모두가 이재민이 됐다. 줘저우의 피해가 컸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톈진과 베이징 등 수도권의 범람을 막기 위해 줘저우를 중심으로 하는 7개 저지대로 홍수가 유입되는 수문과 제방 등을 개방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 미처 대피할 틈도 주지 않고 갑자기 방류하는 바람에 피해가 특히 컸다.
이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이 베이징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희생양’이 됐다는 사실에도 분노했지만, 인민의 생명을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 정부와 당국의 태도에 더 절망했다. 난리 와중에도 시 당국은 8월1일 ‘줘저우시 수재 인명 피해는 사망 0명, 실종 0명’이라고 발표해 공분을 자아냈다. 이재민 수만 20만 명 가까이 되고 모든 마을이 수몰되다시피 했는데도 사망자·실종자 수가 ‘0’이라고 발표하자 해당 지역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여기저기서 “실종된 우리 가족은 사람도 아니냐!” “내가 직접 물에서 건져 올린 시체도 있는데 그들은 대체 누구냐!” 등 댓글이 빗발쳤다.
줘저우시를 비롯해 허베이 일대의 2023년 홍수 사태는 2년 전 ‘정저우 7·20 특대폭우 사건’ 이후 최대 규모였다. 이번에도 현장에 ‘높은 양반’은 나타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처럼 그들도 ‘달려가봐야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없다’고 판단했을까. 아니면 인재가 아니라 자연재해이기 때문에 ‘우리가 책임질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을까.
8월17일.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김애란의 소설을 마저 읽었다. 주인공은 폭우로 주변 집들과 마을이 잠기고 자신과 죽은 어머니만 고립된 채 남게 되자 자신들도 언제 떠내려갈지 불안해져서 탈출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도 혹시나 구조대를 태운 배 같은 게 자신들을 구하러 오지 않을까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우리를 잊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자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빗방울은 끊임없이 떨어진다. 그는 고개를 들고 힘껏 소리쳤다. “그만하세요. 네. 제발. 그만해. 그만하라고. 씨발!” 하지만 빗물에 이리저리 밀리고 떠내려간 뒤에도 끈질기게 ‘물속 골리앗’을 붙들고 살아남고 싶은 주인공은 파랗게 질린 입술을 덜덜 떨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누군가 올 거야.”
2023년 여름의 끝. 지금도 여전히 고립된 채 떠내려가는 수많은 사람도 ‘누군가 올 거야’라고 믿고 있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박현숙의 북경만보: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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