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12월1일은 평화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평화수감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연대하는 ‘평화수감자의 날’이다. 올해도 편지를 보낼 평화수감자 명단을 정리하는데, 마음이 멈칫하는 순간이 있었다.
아프리카 북동부에 있는 에리트레아의 평화수감자 헤노크 게브루 때문이다. 39살인 그는 2005년 구속돼 지금껏 감옥에 있다. 나는 2006년 감옥에 갔고, 지금은 41살이다. 내 또래의 병역거부자가, 나와 비슷한 시기에 감옥에 갔는데 아직 감옥에 있다니. 나는 그동안 출소해서 회사도 다니고 전쟁없는세상 활동도 하고 연애도 했고 책도 썼는데 그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수감돼 아직 감옥에 있다는 게 참기 힘든 먹먹함으로 다가왔다.
에리트레아는 병역거부 수감자가 많지는 않지만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의 처우가 매우 열악하다고 알려져 있다. 긴 수감 기간도 문제이지만, 수감자들이 사막에 지은 가건물에서 생활하는데 외부와 철저하게 격리돼 있다. 국제사회에서 활발하게 외교를 맺는 나라가 아니어서 에리트레아를 탈출한 난민을 통해 아주 파편적인 정보만 알려졌을 뿐인데, 앞서 말한 몇 가지 정보만으로도 인권침해가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에리트레아 사례를 처음 들었을 때 고민에 빠졌다. 당시 한국 병역거부 운동 활동가들이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장하며 주로 구사했던 논리가 “병역거부 수감자의 90% 이상이 한국에 있을 만큼 한국의 병역거부자 처우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한국이 전세계 병역거부 수감자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만으로도 심각한 인권침해다. 그렇지만 에리트레아의 상황을 보고도 “우리가 가장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수감자 수뿐만 아니라 수감 기간이나 감옥에서의 처우 등을 다양하게 살펴야 하는데 ‘가장 나쁜’이라는 우리의 언설은 수감자 수를 제외한 것들을 삭제해버렸다.
상황을 단순화하고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언어는 당장 주목을 끌기에는 좋지만 맥락을 삭제하기 때문에 과격한 언어다. 전쟁의 언어가 이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복잡한 세상을 둘로 단순하게 나누고, 나머지 하나에 대한 증오를 부추긴다. 증오는 폭력을 정당한 것으로 만든다.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설명하니 자칫 쉽고 효과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단순화 과정 자체가 실은 폭력이다. 단순하게 구성된 이분법의 세계에서 여러 소수자는 삭제된다. 결국 민주주의 확장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나쁜 영향을 끼친다. 민주주의는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인식하고 복잡하게 해결해나가는 과정 자체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언어가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사람들을 좀더 쉽게 자극하는 언어를 쓰고 싶은 마음에 휩싸이곤 한다. 피해당사자가 겪는 고통을 과장해서 드러내고 싶고, 혐오세력을 악마화하거나 나쁜 프레임에 가두고 싶어진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나는 늘 미국의 사회운동가 나오미 울프의 말을 떠올린다. “싸우는 과정 자체가 그 싸움을 통해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 울프의 말을 가장 깊게 새겨야 할 이들은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다. 정치의 목표가 민주주의의 확장이어야 한다.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혐오를 부추기는 폭력의 언어, 상대방을 절멸하려는 전쟁의 언어를 구사한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민주주의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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