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팬데믹과 접경
② 코로나 시대, 국가와 민족의 ‘귀환’
③ 행성적 사이버네틱스
④ 국경여행, 경계에 선 삶들의 만남
⑤ 접촉지대에 산다는 것
⑥ 의료와 문학 접촉지대와 치유공간
⑦ 과학과 미신의 경계에서
⑧ 중국-홍콩 체제의 변화
“나와 같은 종족이 아니면, 그 마음이 반드시 다르다.”(유교 경전 <좌전>)
홍콩은 중국과 영국으로 대표되는 동서양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접경 포인트로서 다양하게 연구됐다. 1997년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며 ‘일국양제’라는 유일무이한 접경이 생성됐고, 중국 정부와 ‘본토 홍콩’은 ‘일국’과 ‘양제’의 우선순위를 두고 경쟁해왔다. 과거 홍콩이 중국과 세계의 소통을 위한 유일한 접경이었다면, 이제 중국은 상하이 등 새로운 접경을 마련하는 결실을 거두고 있다. 중국 국가주의가 힘을 얻는 배경의 하나다. 그럼에도 ‘중국-홍콩 체제’가 국가와 지역, 문화와 문화, 제도와 제도가 만나는 접경이라는 가치는 여전하다. 나는 양쪽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중국-홍콩 체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2020년 2월 코로나19 발생 초기 홍콩 의료계는 중국과의 접경을 봉쇄하지 않으면 총파업에 들어가겠다는 데 99%가 동의했다. 코로나19가 퍼지면 의료진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진다는 이유였다. 2020년 1월부터 중국 우한은 76일 동안 외부와 단절됐고, 2021년 2월에는 허베이성 주민 2200만 명이 봉쇄됐다. 2020년 3월 홍콩에선 4명 이상 집회를 금지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2021년 3월에는 주룽 일부 지역 봉쇄가 시행됐다. 200개 건물을 봉쇄하고 코로나19를 검사하는 초강력 방역이었다. 그 지역은 닭장집, 관짝집(coffin house)이라 부르는 쪽방이 밀집한 곳으로 홍콩의 최저소득층이 거주한다. 2021년 4월에는 인도·파키스탄·필리핀에서의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그쪽에서 출발해 홍콩에 도착하는 모든 여객기가 14일간 금지됐다.
결과적으로 2021년 5월 현재 코로나19 확진자가 홍콩에선 한 자릿수, 중국에선 0명으로 집계된다. 국가와 지역, 지역과 지역의 봉쇄가 코로나19 확산을 막아준 경험은 접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통합보다는 분리가 코로나19 통제에 효과적이었다는 말이다. 이번 사태로 국가와 지역, 그리고 접경에 대한 정의가 다시 내려져야 한다. 물론 국가 내에서 지역을 구분하는 접경의 의미도 새삼 주목받았다. 앞으로 우리는 어디에서 통합되고 어떻게 분리돼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시시각각 대답해야 한다.
중국 정부는 국가 차원의 방역 성공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초기에 코로나19 사태를 숨겨서 키운 것도 국가권력이고, 도시와 지역 간 접경을 통제해 코로나19 확산을 막은 것도 국가권력이다. 중국의 포털 사이트에는 ‘중국의 방역 성공 경험, 왜 전세계가 배워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이 많다. 글의 요지는 일관되게 첫째, 공산당의 집중 지도, 둘째, 국가 제도의 우수성, 셋째, 전 국민 참여, 넷째, 과학 방역 등이다. 국가가 블랙홀처럼 모든 논의를 삼켜버린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다.
토머스 홉스는 국가를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끝내기 위해 구성원들이 합의한 괴물 같은 절대 권력’이라 했고, 프란츠 오펜하이머는 ‘국가란 폭력을 동반한 강자의 지배 체계’라고 했다. 국가주의자들의 논리 속에는 통합의 장점만이 상정되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반대로 분리의 의미를 돋보이게 했다. 제국 건설은 우선 지역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중국 내 지역 사이나 중국-홍콩 체제에서나 접경의 긍정적 측면이 도드라졌다.
우한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상황을 경고한 의사가 있었다. 그는 경찰 조사를 받았고 이후 환자를 돌보다가 감염돼 숨졌다. 우한의 코로나19 상황을 국가 통제를 넘어 외부에 알린 건 시민 기자들의 활약이었다. 의사의 희생, 지식인의 용기, 일반 시민의 협조 등이 중국 시민사회의 존재와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들은 곧 사라졌다. 코로나19 초기 중국 정부는 은폐하고 왜곡하고 억압하는 국가주의로 대응했다. 시민은 그렇게 은폐되고 왜곡되고 억압당해 국민으로 포장됐다.
앞서 의료계 투표는 홍콩에도 ‘시민’이 존재한다는 외침이었다. 홍콩 시민사회와 본토 홍콩의 존재감을 보여준 이벤트였다. 하지만 2020년 6월 홍콩에서 국가보안법이 발효된 뒤 거리시위가 중단되고 사실상 홍콩의 모든 정치 활동이 어려워졌다. 1997년 주권 반환 이후 척박한 토양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홍콩 시민사회의 앞날은 불투명해졌다. 자신감을 얻은 중국 정부는 홍콩 입법의원 선거를 1년 뒤로 연기하는 초법적인 조처를 단행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내세웠다.
2020년 7월부터 홍콩기본법과 홍콩 정부에 충성 서약을 해야 공무원으로 채용되고, 2021년 1월부터는 전체 공무원에게 충성 서약이 강요되고 있다. 이를 거부한 129명에 대한 해고 절차도 진행되고 있다. 2020년 8월 중국 국가주의에 비판적인 <핑궈일보> 사주 지미 라이(73)가 체포되던 날, 평소 발행부수가 7만 부이던 신문은 55만 부나 팔렸다. 이제 홍콩 시민은 자신의 존재를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홍콩 힘내라’라는 문구는 물론 아무 내용도 없는 빈 메모지조차 저항의 상징으로 간주돼 금지되고 있다.
2021년 3월 열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홍콩의 행정장관, 입법의원, 구의원 등을 뽑는 홍콩의 선거법이 개정됐다. 이른바 ‘홍콩 특색의 민주화 선거 제도’는 선거 후보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 뼈대다. 애국심이 첫 번째 기준이다. ‘애국자가 통치하는 홍콩’은 덩샤오핑이 처음 언급한 이래 지금까지 중국 국가주의의 상징적인 구호다. 국가를 사랑하는 사람, 즉 중화인민공화국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홍콩특별행정구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콩의 민주화운동 관련 내용이나 천안문(톈안먼) 사건 같은 국가주의에 저항하는 내용이 홍콩 교과서에서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역 정체성이 신속하게 국가로 통합되고 있다. 홍콩 ‘시민’은 코로나19 사태를 기다렸다는 듯한 중국 정부에 의해 중국 ‘국민’으로 포섭됐다. 나는 국가보안법 발효가 실질적으로 홍콩 시민이 국민으로 편입된 분기점으로 본다. 주권 반환 이후 상징적으로나마 가능하던 일국양제는 종식됐고, 중국-홍콩 체제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또다시 새로운 관계를 도모해야 하는 시점이다.
코로나19는 사회를 약화한 대신 국가가 강화된 가장 전형적인 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세계 어디에서나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하는 ‘공공공간’(Public Sphere)을 크게 축소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에서도 홍콩에서도 국가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은 보이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최대한 보장되는 유럽에서처럼 자유가 억압당하는 상황을 참지 못해 행동하는 시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중국의 대표적 인문학자 류짜이푸는 중국에서 1949년 이후 국가사회주의 체제가 건립됐는데 국가만 있고 시민사회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관점은 개혁·개방 4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할 것이다. 시민사회 형성은 중국-홍콩 체제에서 양쪽 공히 걸음마 단계다.
또 다른 사상가 리쩌허우는 중국 현대를 ‘구망’이 ‘계몽’을 압도한 시간이라고 했다. ‘망해가는 나라를 구하겠다는 신념이 국민 계몽을 방해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도 계몽은 유보됐는데 ‘일대일로’ 등 중국의 국가 우선주의에 밀리고 있다. 현대 중국에선 시종일관 국민을 소환하고 동원했을 뿐 시민의 성장은 유보돼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특히 시진핑 등장 이후 국가주의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이제는 ‘구망’보다 ‘국가’가 ‘계몽’을 압도하는 형국이다.
신자유주의와 주권 반환이라는 이중의 충격에 더해, 코로나19 사태는 홍콩의 정체성, 나아가 중국-홍콩 체제를 재편하고 있다. 중국의 국가주의는 국가보안법과 함께 선거 후보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데까지 숨 가쁘게 내달렸다. 국가보안법 발효와 선거 연기 등의 조처는 코로나19 시국이 아니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본토 홍콩에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가 존재할 뿐이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중국이라는 국가권력이 홍콩이라는 지역성 앞에서 이 정도로 자신감을 보일 수 있었을까. 중국 정부가 총력을 기울인 홍콩의 ‘대륙화’와 홍콩인의 ‘다시 국민 만들기’는 초보적으로 완성됐다.
중국 역대 왕조에서 가장 이상적인 체제로 평가받는 것은 당과 청 제국이지만, 뜻밖에도 전국시대와 위진남북조 시대도 손꼽힌다. 제국 성립은 국가와 지역 간의 적당한 거리 두기, 즉 접경 두기가 관건이었다. 분리된 통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국가의 힘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구실이 됐다면, 뜻밖에도 접경의 중요성을 증명한 예로 기록될 것이다. 중국이라는 국가 내에서 지역과 지역, 그리고 중국-홍콩 봉쇄는 역설적으로 접경의 의미를 부각했다. 코로나19는 국가와 지역의 ‘적당한’ 거리 두기를 요구했고 그것의 효과를 보여줬다. 코로나19는 통합에 의문을 제기했고 그 속도에 제동을 걸었다는 데서 의미가 크다.
가라타니 고진은 국가주의를 통제하려면 국가에 대항할 수 있는 사회가 강해져야 한다는 화두를 던졌다. 가라타니는 네덜란드도 영국도 미국도 국외 경쟁에서 헤게모니를 잡은 뒤에야 비로소 국내 사회문제에 유연한 태도로 접근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중국도 확고한 주요 2개국(G2)으로 올라설 때까지는 국내 문제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즉, 시민사회의 성장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홍콩 사회의 성장이 중국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된 이유다. 이 담론을 중국-홍콩 체제에 적용해보면 의미구조는 분명해진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사회가 형성될 수 있다면 홍콩특별행정구 사회의 성장도 기대할 만하다.
가라타니는 자본, 네이션(국민), 스테이트(국가)라는 삼위일체가 사회구성체라고 말한다. 그는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빈부격차나 만성불황 등의 부정적 결과 때문에 오히려 국가가 존속될 힘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각박한 현실 속에 국민이 국가를 통한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세계 각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이나 홍콩에서도 빈부격차를 확대했다는 보고가 끊이지 않는다. 가라타니의 지적대로, 신자유주의가 계급격차와 사회불평등을 확대했고 어쩔 수 없이 그것의 해법을 국가에 위탁할 수밖에 없다면, 코로나19 사태 해법도 마찬가지다. 불행하게도 국가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지금처럼 높은 때도 드물었다.
자본-국민-국가 삼위일체 전성시대최근 중국 청년층에게 한 설문조사에서, 중국이 서방국가와 대등한 존재라고 느끼게 한 사례로 ‘중앙정부의 성공적인 코로나19 대응’을 꼽은 비율이 가장 높게 나왔다. 향후 중국의 국가주의가 더욱 강화되리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지점이다. 국민을 위해 뭔가 한다는 이미지를 창출해야 하는 국가와 경제적으로 당장 눈앞의 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국민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국가가 쉽게 약화하거나 소멸할 수 없는 이유다. 코로나19가 빈부격차를 더욱 확대했고 서민 일상을 더욱 곤궁하게 했다는 점에서 국가에 대한 국민 기대는 더욱 커졌다.
다시 중국-홍콩 체제로 좁힌다면 코로나19 상황 또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자본-국민-국가의 연대가 강화됐다. 그 과정은 자본-국민-국가 체제의 견고함을 확인해주면서 이들 3자에 더욱 강한 자신감을 부여하는 계기가 됐다. 그 자신감은 중국과 홍콩이라는 각각의 시민사회가 크게 축소되고 무력화됐음을, 그리고 상호관계 측면이 강조되는 중국-홍콩 체제에서 그나마 유지돼온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코로나19 상황은 중국-홍콩 체제에서 이미 블랙홀이 된 자본-국민-국가라는 연대를 더욱 강화하는 동력이 됐고, 중국에서 시민사회 형성은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류영하 백석대 중국어학과 교수
참고 문헌
1. <방법으로서의 중국-홍콩 체제>, 류영하, 소명출판, 2020
2.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개정판)>, 류영하, 산지니, 2020
3. <세계사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 도서출판b,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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