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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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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여성에 더해진 차별의 무게

‘경계’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됐던 ‘젠더 불평등’의 민낯 더 뚜렷해져
등록 2021-06-29 06:15 수정 2021-06-30 02:03
2020년 6월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 있는 코로나19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서울1센터에서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실내 밀집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바이러스 감염에 더 취약하다. 연합뉴스

2020년 6월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 있는 코로나19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서울1센터에서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실내 밀집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바이러스 감염에 더 취약하다. 연합뉴스

접경인문학 연재 순서
① 팬데믹과 접경
② 코로나 시대, 국가와 민족의 ‘귀환’
③ 행성적 사이버네틱스
④ 국경여행, 경계에 선 삶들의 만남
⑤ 접촉지대에 산다는 것
⑥ 의료와 문학 접촉지대와 치유공간
⑦ 과학과 미신의 경계에서
⑧ 중국-홍콩 체제의 변화
⑨ 옛 동·서독 접경과 DMZ 생태계
⑩ 보건 위기와 젠더 불평등

젠더는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이 구성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런데 남성성은 여성성과의 관계를 통해, 여성성은 남성성과의 관계를 통해 의미를 획득하기 때문에 결국 젠더는 남성성과 여성성 사이의 경계 확정을 둘러싼 경합이기도 하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실은 태어나기 전 초음파 사진으로 이미) 스스로를 여성 혹은 남성으로 정체화하는 온갖 문화적 의미망에 놓인다. 가정·학교·미디어·온라인에서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에 대한 이미지와 언어에 노출되고 습득하고 실천하고, 때로 저항하면서 성장한다.

그렇기에 젠더의 경계는 불변이 아니다. 우리 삶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경험은 복잡하고 종종 모순적이다. 게다가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사회를 포함해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기존 젠더 경계에 대한 변화의 열망이 심상치 않다. 2017년 10월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문을 폭로하고 비판하면서 대중화한 ‘미투(#MeToo) 운동’의 흐름은 몇몇 나라에 한정되지 않는다.

2020년 3월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 앞에 설치된 ‘드라이브 스루’(차량 이동)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과 행정요원들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2020년 3월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 앞에 설치된 ‘드라이브 스루’(차량 이동)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과 행정요원들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바이러스, 여성과 빈곤층에 공평하지 않았다

2015년 메갈리아 사이트 등장부터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 혜화역 시위, 미투운동, 탈코르셋운동, 엔(n)번방 사태에 이르기까지 20~30대 여성이 주도하는 일상적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는 한국 사회를 뒤흔들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의 경우 2016년 브란덴부르크주 의회에서 녹색당이 남녀동수제를 처음 발의한 이후, 2019년 1월31일에는 정당 제출 비례대표 명부 후보를 남녀 동수로 구성하는 규정을 담은 주 선거법 개정안을 결의했다. 같은 해 2월엔 연방의회에서 의회를 남녀 동수로 구성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비록 2020년 7월과 10월 튀링겐주와 브란덴부르크주의 남녀동수제에 위헌 판결이 내려졌지만, 이 법의 지지자들은 다음 단계로 개헌을 모색하고 있다. 프랑스의 남녀동수제가 1982년 위헌으로 결론 내려졌다가 1999년 개헌에 성공한 뒤 2000년 제정된 것과 비슷한 경로를 따른다.

할당제는 여성이 여성의 특정한 이해를 대변한다고 보지만, 남녀동수제는 여성을 특정 집단의 이해 대변자가 아니라 남성과 마찬가지로 국가를 대표하는 인간의 두 유형(여성과 남성) 중 한 집단으로 본다. 경계가 단순한 구분이 아니라 불평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현재 흐름은 젠더의 경계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됐던 젠더 불평등을 변화시키려는 열망에 기반한 행동이다.

그렇지만 이 흐름이 젠더 경계의 전면적 변화로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젠더 경계가 여전히 굳건함을 보여줬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이 바이러스는 처음에는 어떤 사람도 피할 수 없다는 점 등 어떤 의미에서는 공평해 보였다. 그렇지만 사회적 분할이 감염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곧 분명해졌다. 예컨대 중산층 이상 사람은 재택근무와 사회적 거리 두기 덕분에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측면이 있지만, 빈곤한 사람은 주거와 일터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기 쉽지 않고 이 상황은 곧 감염으로 이어지기 쉬웠다.

2018년 2월 서울 동대문구 한 아파트에서 재가요양보호사가 집안일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재택근무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이어지면서 다수 여성에게 가사와 돌봄노동의 부담이 더 커졌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2018년 2월 서울 동대문구 한 아파트에서 재가요양보호사가 집안일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재택근무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이어지면서 다수 여성에게 가사와 돌봄노동의 부담이 더 커졌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여성의 돌봄·가사 노동, 가정폭력 피해 늘어

그렇다면 젠더와 코로나19의 관계는 어떨까? 언뜻 젠더와 코로나19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비일상적 재난이 우리 일상을 지탱하는 젠더 질서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포착할 수 있다. 이제까지 보고된 바에 따르면 여성과 남성은 비슷한 비율로 감염되지만 남성 사망률이 조금 더 높다. 고혈압과 심혈관 질환, 폐 질환 등 기저질환을 가진 남성이 감염 뒤 사망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질환은 흡연과 알코올 섭취와 관련이 깊다. 전문가들은 남성을 둘러싼 환경과 남성적 행동 규범을 그 이유로 든다.

반면 여성은 다른 위험에 노출된다. 저명한 의학 저널 <랜싯> 2020년 4월호는 많은 나라에서 시행한 봉쇄 조처 기간에 주로 여성이 기존에 하던 아동·노인 돌봄, 가사노동이 늘고 가정폭력 위험도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공공의료 서비스에 과부하가 걸리고 공공자원이 부족해지면서 출산을 전후로 한 의료서비스뿐 아니라 일반적인 여성의 성과 재생산 건강 서비스에 지장이 생긴다고 보고했다. 실제 팬데믹 초반 봉쇄 조처를 한 많은 나라에서 경찰서나 가정폭력상담소에 피해를 호소하거나 상담을 요청하는 전화 비율이 늘었다고 한다. 또한 세계적으로 여성은 의료와 사회복지 분야 필수 직업군의 70%를 차지하는데 이는 여성 노동자의 감염률을 높일 것으로 예측된다. 이처럼 코로나19 사태는 남성적 행동 규범, 여성 성역할 같은 젠더 질서가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을 예증한다.

코로나19 사태는 보건 위기로 그치지 않고 이미 경제 위기화했다.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 전미경제연구소(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가 2020년 4월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이전 경제 위기 때는 남성 실직률이 여성 실직률보다 높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남성보다 여성의 일자리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남성은 주로 일반적인 경제 주기에 영향받는 일자리에 종사하고 여성은 그보다 덜 주기적인 일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여성 노동자가 집중된 관광, 숙박, 대면 접촉 서비스 분야 일자리의 대거 삭감을 불러왔다.

봉쇄 조처로 학교와 돌봄 기관이 문을 닫은 것은 남녀 노동자에게 더욱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집에서 아동을 돌봐야 한다는 요구가 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부모의 아동 돌봄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아동에겐 별 증상을 보이지 않고 노인에게 치명적인 이 바이러스를 차단하려면 이들의 접촉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성인 남녀 노동자가 어떤 도움 없이 집에서 아동을 돌봐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할 때, 현재 가족 내 돌봄노동에서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한부모 가족에 미치는 영향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지만 정말로 별말이 없다는 게 문제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한부모 여성은 경제 위기와 돌봄 위기가 결합한 충격을 온몸으로 감내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K-방역’ 성공 신화에 가려진 것들

독일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자마자 대학 노조가 재택근무 중 가족 돌봄 시간을 별도의 유급휴가로 사용하도록 해달라고 대학 당국에 요구했다. 진단서 없이도 3일 이내의 유급병가를 낼 수 있는 나라라서 그럴까.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복지는 딴 나라 이야기인 듯한 신자유주의 첨병 국가 미국에서조차, 휴교가 사회적으로 미칠 영향을 다룬 연구들은 휴교가 보건의료 종사자의 돌봄휴가로 인한 의료 대응 능력을 저하하는 요인임을 당연시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보건의료 인력을 ‘갈아넣어’ 유지한 ‘케이(K)-방역’에 대해서는 올림픽에서 획득한 금메달 수 자랑하듯 성공 신화만 넘쳐날 뿐이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가 문을 닫은 뒤 아이들을 누가 돌보는지, 갑작스러운 돌봄 요구와 노동 증가가 젠더뿐 아니라 의료 대응, 나아가 전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질문과 토론, 분석은 페미니스트와 몇몇 활동가·학자가 제기한 것 외에 눈에 띄지 않는다. 하기야 우석균의 지적대로 유급병가도 주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유급돌봄휴가가 웬 꿈같은 소리겠는가.

코로나19 사태로 기존 젠더 경계가 더 나은 방식으로 변하리라는 낙관적 전망도 등장했다. 비대면 재택근무를 통해 좀더 나은 방식으로 일과 돌봄의 균형을 추구할 수 있게 됨으로써 여성의 부담이 줄어들고, 남성도 아동 돌봄과 가정학습 책임을 분담함으로써 기존 생계부양자로서 헤게모니(주도권)적 남성성에 균열이 가해지고 새로운 남성 역할모델이 부상하리라는 점에 기대를 건다.

과연 그럴까. 역사적으로 과학기술 발전이 기존 불평등한 경계를 자동으로 변화시킨 적은 없다. 자동화된 가사 기구는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해방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결론은 더 섬세하고 복잡한 가사노동의 진화였다. 게다가 낙관적 전망은 철저히 중산층 이상 이성애 핵가족상에 기반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한부모 가족에는 해당 사항 없는 전망이다. 안 그래도 중산층 이상 이성애 핵가족은 이제껏 조부모나 자국민 혹은 이주 돌봄노동자에게 돌봄을 외주화함으로써 가족 내 젠더 불평등을 완화해왔다. 대면 접촉 돌봄을 이용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재택근무가 여성의 일 부담을 줄이고 남성의 돌봄 참여를 촉진할지는 좀더 상세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저임금·고밀집 노동자에게 더 가혹한 재난

젠더 경계는 다른 불평등 경계를 만나 새로운 불평등 경계를 만들어낸다. 미국 흑인 페미니스트 법학자 킴벌리 크렌쇼가 제안한 ‘교차성’(Intersectionality) 개념은 각기 다른 불평등의 경계선이 결합해 만들어진 새로운 불평등의 지점을 일컫는다. K-방역 와중에 벌어진 많은 일이 젠더와 계급의 교차성을 드러냈다.

유럽 대부분 나라에서 일터가 문을 닫고 슈퍼마켓이나 병원에 가는 등 삶을 유지하기 위한 외출 외에 집 밖에 나가는 것이 여의치 않았던 2020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는 학교와 어린이집, 유치원이 한동안 문을 닫고 식당과 카페, 기타 영업시설의 영업시간과 인원이 제한된 것 외에 별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냈다. 세계적으로 비교할 때 가장 낮은 수준의 감염률과 사망률을 유지하고 있으니 상황을 꽤 성공적으로 통제해온 것에 우리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는 있으리라. 그러나 우석균의 지적대로 ‘비생산 분야에서의 엄격한 거리두기’와 생산, 유통, 사회적 서비스 등 ‘핵심 생산 분야에서의 느슨한 거리두기 내지 포기’를 모델로 삼은 이 성공은 현재 자본주의의 생산 방식을 포기하지 않고 유지했기에 가능했고 그 점 때문에 해외에서도 관심 갖는다는 사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핵심 생산 분야에서 거리두기를 포기한 결과를 우리는 알고 있다(혹은 안다고 생각한다). 2020년 3월 서울 구로 콜센터의 집단감염은 코로나19 대규모 집단감염의 첫 번째 사례였다. 총 확진자 152명(콜센터 직원 94명과 이들의 가족 등 접촉자 56명), 그중 한 가족의 사망은 서울시의 첫 번째 사망 사례였다. 의료인류학자 김관욱은 콜센터는 단순히 하나의 위험한 사업장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제조업 중심 산업자본주의가 쇠락하면서 등장한 서비스 중심 경제체제의 대표 사례이며 그중에서도 저학력의 값싼 여성 노동력을 흡수하는 게토와 같은 곳이라고 지적한다. 1970∼80년대 이른바 ‘공순이’들의 일터였던 구로공단이 지금의 구로 콜센터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2020년 4월10일 구로 콜센터 확진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산업재해 제1호로 판정받았다. 그러나 자가격리나 입원을 해야 했던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업무량을 달성하지 못한 데 대한 임금 삭감 통보였다. ‘고도로 밀집된 노동환경’ 때문에 감염된 이들에게 병가휴가는커녕 임금을 삭감하는 이런 조처는 이들이 왜 아파도 쉴 수 없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상담사들은 콜센터가 제시하는 규칙을 따를수록 다양한 심신 질환에 노출되는 상황에 놓였다. 저학력 저임금 여성 노동자가 처한 밀집된 노동환경, 아파도 고객에 대한 친절한 응대가 요구되는 젠더화된 일의 성격이 야기한 사태다.

재난 자본주의냐 돌봄 민주주의냐

그렇다면 저학력 저임금 남성 노동자가 주로 일하는 유통 부문 사정은 어떨까. 코로나19 사태 초기 한동안 유럽의 슈퍼마켓 사재기가 한국 미디어를 장식했다. 선진국인 줄 알았던 유럽 국가들에서 휴지와 밀가루 등 생활필수품 사재기가 벌어지는 것을 보고 그렇지 않은 한국을 비교하며 내심 뿌듯함을 느낄 수는 있으리라. 그러나 이 뿌듯함이 유통에서의 살인적인 속도 요구 아래 가능하며 또 이를 보이지 않게 하는 데 일조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2020년 초반부터 지속해서 들려오는 택배노동자 사망 소식은 저학력 저임금의 남성 노동자에게 살인적일 정도의 속도를 요구하는 택배노동의 성격이 야기한 결과다. 이처럼 남녀 노동자는 젠더가 계급과 교차해 만들어내는 차별 상황에서 자신의 성별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이 차별 상황을 경험한다.

재난 이후 사회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코로나19 사태가 야기한 여러 위기의 젠더-계급적 상황은 우리가 ‘재난 자본주의’와 ‘돌봄 민주주의’의 길 중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을지 묻는다. 이는 우리의 선택이다. 젠더 경계-불평등에 대한 철저하고도 복합적인 사유가 나침반이 돼줄 것이다.

김신현경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참고 문헌
1. 김관욱, ‘과일바구니, 식혜, 붉은 진드기 그리고 벽: 코로나19 사태 속 콜센터 상담사의 정동과 건강-어셈블리지’, <한국문화인류학> 53권3호, 2020
2. 우석균, ‘불평등한 세계에서 팬데믹을 응시하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 김수련 외, 글항아리, 2020
3. ‘Editorial: The Gendered Dimension of Covid-19’, The Lancet 395, 2020
4. Titan Alon Matthias, Doepke Jane, Olmstead-Rumsey, and Michèle Tertile, ‘NBER Working Paper Series 26947 – The Impact of Covid-19 on Gender Equality’,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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