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팬데믹과 접경
② 코로나 시대, 국가와 민족의 ‘귀환’
③ 행성적 사이버네틱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두고 국경의 귀환을 예고하는 전망이 많이 있었다. 지구화 또는 세계화로 요약할 수 있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위기가 도래하고 다시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국가의 역할이 강화될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맞이한 세계는 이런 예측에 얼마나 들어맞고 있는가.
물론 이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글로벌 자본주의 역시 겉으로 멀쩡해 보이긴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짧은 시간 내로 회복하기 어려운 내상을 입었다. 그러나 그 내상의 의미를 곱씹어본다면, 자본주의 위기가 초래하는 고통은 결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근대 민족국가가 표방하는 핵심 가치는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글로벌 체제는 이런 민족국가의 원칙을 내부에서 해체한 결과물이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팬데믹으로 인해 존재하지 않던 것이 갑자기 드러났다기보다, 위기 상황으로 인해 기존 불평등 구조가 더욱 심화하고 골이 깊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글로벌주의의 핵심은 바로 상품과 인간의 이동이었다. 여기에서 인간은 노동자이자 소비자를 의미했다. 겉으로 보기에 글로벌화한 세계에서 인간은 세계시민으로서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것처럼 비쳤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시민주의의 자유란 것이 한낱 판타지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인간은 대부분 여행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이거나 아니면 스스로 노동력이라는 상품으로서 국경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을 뿐이다. 인격화한 자본인 부르주아라면 아예 이런 제한에 구애받지 않을 것이다.
국경 통제가 강화됐지만, 한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글로벌 자본주의는 멈추지 않았다. ‘뉴노멀’이라는 용어가 즐겨 사용되지만, 사실상 다른 정상성의 규범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마르크스는 19세기에 이미 글로벌 자본주의 도래를 목도하면서 유럽의 부르주아가 자신과 동일한 거울 이미지로 세계를 균질하게 만드는 것이 제국주의 본질이라고 간파했다. 국제협력과 개별 민족국가의 관계는 서로 대립한다기보다 변증법적인 관계를 이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전자가 퇴조하면서 후자가 등장한다고 보는 것은 단편적인 시각이다.
글로벌주의가 초래하는 세계의 균질화는 모든 민족국가를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가별 차이를 인정하면서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하나의 시장 규칙을 모든 국가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른바 ‘글로벌 물류’는 글로벌 자본주의 실체를 보여주는 물적 토대이다. 물류의 세계화가 가능하려면 개별 민족국가 사이에 상품 이동의 안전을 보장하는 약속이 이행돼야 한다. 이 약속은 개별 민족국가의 입법을 통해 가능하다. 이 입법을 국제표준이라는 하나의 척도로 강제하는 것이 이른바 ‘글로벌 체제’의 핵심이다.
더불어 글로벌 체제 구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물적 토대는 바로 기술이다. 전례 없는 교통과 통신기술 발달은 팬데믹 상황에서도 글로벌 체제가 유지될 수 있게 한다. 백신 개발 역시 이런 기술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 글로벌 통신 기술에 힘입어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과학 분야의 협력관계와 달리 국제정치 상황은 대립과 갈등을 연출했다. 특히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보건기구(WHO)를 중국보건기구(CHO)라고 지칭하면서 혐중 정서를 이용해 미-중 무역 갈등의 이해관계에서 자국 기업 이익을 옹호하고자 했다. 이런 상황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특별하게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 WHO를 비롯한 국제기구의 역할은 미국 생명공학 산업의 이해관계와 항상 충돌해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사회학자 멀린다 쿠퍼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이미 10년 전부터 ‘잉여가치’를 위한 무한한 원자재로서 생명을 대상화하는 미국 생명공학 산업의 이기주의를 지적해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런 연구자들의 경고가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재삼 증명해줄 뿐이다. 팬데믹 해결에 국제공조가 필수적이지만, 이런 글로벌 자본주의 이해관계는 다양한 정보를 정치적 목적에 따라 왜곡하는 경향을 초래했다.
왜곡된 정보의 유통은 1인 미디어를 중심으로 재편된 미디어 기술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채널 다변화는 결과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정보의 유통을 낳는다. 이런 유통 구조에서 정보의 진위는 중요하지 않다. 더 많은 정보가 돌아다닐수록 미디어의 확장성은 증대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건재할 수 있는 이유도 이런 미디어 기술 환경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비롯해 과거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수사학에 머물렀던 기술의 상용화는 위기를 기회 삼아, 규제의 한계를 가볍게 넘어서서 우리 일상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런 기술화의 문제는 프랑스 기술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가 지적했던 ‘범주화의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오해와 달리, 이런 기술의 폭력성은 인간 자리를 기계가 빼앗아간다거나, 기계의 전면화로 인간성이 상실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쇼샤나 주보프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감시 자본주의>라는 책에서 밝혔듯이, 기술은 인간을 직접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기계에 맞추도록 한다. 주보프는 구글을 예로 들면서 초창기에 빅데이터의 용도와 다르게 사용되는 개인정보의 문제점을 분석한다. 이 빅데이터는 개인행동에서 만들어진 단순 정보이다. 그러나 이 정보를 이용해 구글은 수익을 올린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구글이 직접 개인정보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빅데이터를 토대로 수립하는 개별 소비자의 행동 방향에 대한 분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개별 민족국가는 이런 수익구조를 정보기술혁명이라는 명분으로 입법해 허가한다. 입법 없는 상품화는 불가능하다. 이런 방식으로 개인정보를 이용한 이윤 창출 구조가 고착화한다.
이런 주보프의 비판을 단순하게 받아들여 구글이 무단으로 개인정보를 이용해서 행동 예측을 판매한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의 핵심은 빅데이터 산업이 우리 행동을 분석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를 교정한다는 사실에 있다. 구글이 제시하는 표준에 맞추지 않는 특이한 행동을 ‘이상한 짓’으로 보이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이런 기술화의 심각성이라는 뜻이다. 이 문제가 바로 스티글레르 같은 이들이 주장하는 기술의 범주화이다.
범주화라는 것은 다양한 대상을 특정 범주에 가두는 작업이다. 인간을 만물의 중심에 두고 나머지 동물들을 분류하는 인간중심주의적인 범주화에 우리는 익숙하다. 마찬가지로 이런 식으로 인간 행동을 범주화하는 빅데이터 기술은 미래의 행동을 미리 결정해서 우리에게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구분하도록 만든다. 구글이 범주화한 패턴에 맞지 않는 행동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전도 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전도 현상의 결과는 기술을 통한 인간 행동 교정으로 나타난다.
최근 중국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회사 내 감시 시스템에 대한 기사가 중국 주간지 〈경제〉에 실렸다. ‘나의 보스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양가적 제목을 이마에 붙인 이 기사는, 출근한 회사원의 일거수일투족을 인공지능으로 감시하는 중국 회사들의 ‘신종 테일러주의’를 소개한다. 사무실과 건물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것은 물론, 의자와 책상에도 감지 장치가 있어 업무 시간에 15분 이상 자리를 비우면 자동으로 월급을 차감하도록 설계돼 있단다.
확실히 조지 오웰의 ‘빅브러더’를 연상시키는 이런 감시 시스템은 인간을 도구화하는 ‘권위주의 국가’로서 중국을 이미지화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이 기사에 등장하는 회사원들의 인터뷰가 말해주는 것은 흥미롭게도 이 ‘빅브러더’가 전혀 인간의 행동 양식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작동하기 때문에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효율성을 올리기 위해 도입한 기술이 오히려 반대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분명 문제다. 그럼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사항은 이런 기계장치의 ‘어리석음’이 앞서 말한 범주화의 규범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기계화한 회사에 출근하는 노동자들은 그 기계의 규범에 자신의 행동을 맞춰야 한다. 그 행동 교정이 말하자면, 이런 인공지능을 도입한 목적이다.
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것과 달리 절대적인 국가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 빅브러더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요청하고 상상하는 이상적 이미지에 가깝다. 팬데믹 경험은 우리에게 이런 사실을 증명한다. 우리는 열심히 방역을 위해 개인정보를 넘기지만, 그 모든 데이터를 일사불란하게 관리하는 빅브러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시 증명됐다. 개인정보를 들여다보는 것과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다. 매일 우리 휴대전화를 울리는 ‘재난 문자’도 정보를 공개할 뿐이지, 그 정보에 따라 우리를 통제하진 못한다.
나는 이런 국가 시스템의 문제를 ‘기계 감시’에 내재한 자동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자동성에 의지함으로써 마치 국가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환상을 가진다. 그러나 이 기계의 자동성은 자체 논리와 법칙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즉, 이 기계 감시의 파놉티콘(중앙 감시탑에서 모든 수감자를 은밀히 감시할 수 있는 원형 감옥)에는 간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수감자들이 서로 개인정보를 넘겨주고 넘겨받으면서 간수가 존재한다고 믿는 구조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기계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정보는 이 완전한 자동성의 구현을 지탱하는 연료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정보가 아니라 정보를 해석하는 이데올로기이지만, 이 자동성의 강박은 이데올로기 자체를 비가시화한다. 말하자면, 이런 믿음의 구조를 해체하고 감시의 양가성을 통해 기득권 계층을 통제하고자 도모하는 것이 기계 감시 시대의 정치 과제라 할 수 있다.
감시 자본주의 기술체계의 가속화감시 자본주의 기술체계를 나는 ‘글로벌 사이버네틱스’라 부를 수 있다고 본다. 원래 사이버네틱스라는 용어는 노버트 위너(제어공학의 틀을 닦은 미국 수학자)가 그리스어로 키잡이 또는 조종자를 뜻했던 ‘퀴베르네테스’(κυβερνήτης)라는 말에서 따와 1948년 처음 사용했다. 기원적으로는 동물과 기계를 통제하고 조종하는 기술을 의미했지만, 오늘날 인공지능 발달과 사이파이(Sci-fi·공상과학) 장르의 영향으로 자기 규율적인 인간형 기계를 의미하게 됐다.
오늘날 우리에게 사이버네틱스는 인간과 사물의 경계를 사실상 지워버린다. 앞서 언급한 중국의 ‘신종 테일러주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글로벌 사이버네틱스는 ‘포스트 휴먼’(과학기술로 신체적 능력이 크게 확장된 인간)의 가치를 노동 관리 구조로 전환하는 중이다. 이제 사이버네틱스의 문제는 문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우리 일상으로 변주됐다. 근대 건축에서 집은 단순하게 거처가 아니라 우리 삶을 조형하는 기계에 가깝다. 우리가 머무는 실내가 곧 사이버네틱스의 허브가 돼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상황을 가속한다.
이런 기술의 적용과 변화 자체를 러다이트처럼 거부하는 것은 퇴행적일 뿐만 아니라 이런 기술이 가져오는 사회 진보의 가치를 소홀하게 취급할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글로벌 사이버네틱스’의 관점을 ‘행성적 사이버네틱스’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행성의 거주자로서 인간은 하나의 개체일 뿐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서 인간 행동을 조종하기 위해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버네틱스의 원래 의미인 의사소통 기능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도구성을 넘어선 기술의 목적은 이런 의사소통 문제에 있을 것이다. 글로벌화가 균질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행성적 사이버네틱스는 지구라는 행성을 한 차원 위에서 바라보는 메타적 상상력을 전제한다. 메타적 관점에서 보면 글로벌 자본주의는 지구라는 공간에 한정된 특수한 체제일 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본질적으로 글로벌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상품과 인구 이동에 따른 결과라면, 시공간 축소를 이루어냈던 기술의 활용을 다른 방법으로 구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을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이 지구라는 행성 전체를 바라보는 ‘키잡이’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패러다임 전환은 어떻게 가능할까. 행성적 사이버네틱스는 인간과 환경, 노동과 자본, 육지와 대양, 지구와 우주의 경계를 재설정하는 사유를 동반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란 바로 이 문제를 테이블에 올려서 논의해야 하는 절박함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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