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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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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미신은 ‘과학’의 옷을 입는다

5G 코로나바이러스 음모론 등 그럴듯한 ‘인포데믹’ 창궐… 모호한 경계 구분해야
등록 2021-05-17 01:53 수정 2021-05-21 10:04
2021년 5월9일 인도 북서부 대도시 아마다바드의 거리에서 사람들이 코로나19 면역력을 키워준다는 ‘소똥 테라피’ 요법에 따라 온몸에 소의 배설물을 바르고 있다. 소똥 테라피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미신 행위다.

2021년 5월9일 인도 북서부 대도시 아마다바드의 거리에서 사람들이 코로나19 면역력을 키워준다는 ‘소똥 테라피’ 요법에 따라 온몸에 소의 배설물을 바르고 있다. 소똥 테라피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미신 행위다.

접경인문학 연재 순서
① 팬데믹과 접경
② 코로나 시대, 국가와 민족의 ‘귀환’
③ 행성적 사이버네틱스
④ 국경여행, 경계에 선 삶들의 만남
⑤ 접촉지대에 산다는 것
⑥ 의료와 문학 접촉지대와 치유공간
⑦ 과학과 미신의 경계에서

코로나바이러스의 전 지구적 1차 확산이 정점을 향해 가던 2020년 4월, 영국에서는 5G 코로나바이러스 음모론이 기승을 부렸다. 5G(5세대 이동통신)의 전파가 아직 규명되지 않은 경로로 면역력에 영향을 미쳐 사람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취약해졌기 때문에 전 지구적 범유행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그달 초순에만 영국 전역에서 5G 통신탑과 다른 장비를 겨냥한 방화 사건이 30건 발생했고 통신 노동자를 위협한 사건도 약 80건에 달했다.

이른바 ‘5G 코로나바이러스 음모론’은 이 전염병에 대한 미신 중 일부에 불과하다. 잘못된 정보의 확산을 막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는 누리집에 ‘미신 타파’ 항목을 개설했다. 마스크 장시간 착용이 이산화탄소 중독과 산소 결핍을 초래한다거나, 술을 마시거나 고추나 마늘을 먹거나 일광욕하면 감염률을 낮출 수 있다거나, 10초간 숨을 참아도 기침하거나 호흡이 불편하지 않으면 감염되지 않았다는 증거라거나, 드라이어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다는 등의 속설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접촉지대 한반도, 근대적 미신의 탄생

맹목적이고 거짓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미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여러 관점에서 규명됐다. 특히 불확실성에 대한 보완이나 미래에 대한 통제 욕구 등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이 공통으로 기반하는 사실은 인간의 감정적, 지적 불안정성이다. 이 주장을 확장하면 인간이란 존재의 한계가 분명한 이상,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신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런 결론은 의도치 않게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신은 항상 비슷하게 존재해왔다고 막연히 이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러나 역사 연구자의 눈으로 보기에 전근대와 근대의 미신은 존재 양태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근대 시기에 미신은 사회 전체적으로 통용되고 수용되는 행위였다. 예를 들어 1821년 잦은 설사로 인한 극심한 탈수 증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질병인 콜레라가 처음 조선에서 유행했을 때, 민간에서는 쥐가 병의 근원이라는 믿음에서 고양이 부적을 그렸다. 조정 또한 박테리아라는 질병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억울한 망자인 여귀(厲鬼)가 산 자에게 해코지한다고 해서 이를 달래기 위해 별여제(別厲祭)를 지냈다. 표현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 조정도 민간도 미신에 타당한 의미를 부여하며 실제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했다.

근대 들어 미신의 존재 방식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났다. 19세기 말 개항한 조선에 빠르게 유입된 서구 문화에 가장 먼저 노출된 영역 중 하나가 의료였다. 콜레라처럼 외부에서 침입한 전염병의 창궐이 잦아졌고, 외국인들은 이런 질병에 의학적 지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개방된 한반도의 접촉지대에서 과학적 방역과 합리적 치료법은 악귀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전통적 믿음과 만났다.

이 조우와 함께 미신은 근대에 비로소 비과학적이라고 부정적으로 여겨지면서 우리가 아는 미신이 됐다. 조선에서 미신을 발견한 것이 모든 종류의 미신을 극도로 경계했던 서양인 선교사란 사실은 놀랍지 않다. 개신교 선교사로 조선에 머무른 호러스 언더우드는 조선인 마을에서 천연두를 ‘빈객’(귀한 손님, honorable guest)으로 대접하면서 무당을 불러 춤추고 노래 부르며 굿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기록에 남겼다. 특히 무당이 완전히 빙의돼 이 질병의 신이 하는 말을 전할 수 있을 때까지 굿을 계속하고 그 옆에서 이 귀한 손님을 노하게 하는 어떠한 ‘약’의 사용도 거부한 조선인에 대한 기록은 언더우드가 이 미신적 행위를 보면서 느꼈던 우려감을 그대로 전달한다.

조선인 중에서 미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먼저 내면화한 이는 구한말 개화를 주장한 계몽주의자들이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으로 돌아와 함경남도 원산 등 개항장에서 감리로 사무를 보던 윤치호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가 원산항 감리로 있던 1902년, 여름이 끝날 무렵 콜레라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닷길을 따라 원산에 이르렀고, 마침 우기라는 좋은 환경을 맞아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이때 윤치호는 “조선인에게는 무당이 내뱉는 이해할 수 없는 방언이 위생학 관련 서적을 모두 구비한 완벽한 도서관보다도 더 중요하다”라고 한탄했다. 근대적 합리성에 동의하는 지식인이자 방역을 책임진 행정관인 윤치호에게 지역주민의 근대의학에 대한 무지는 좌절 그 자체였다.

2020년 7월 한국의 개신교 선교단체 인터콥의 한 선교사가 유튜브 설교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맞으면 (백신 개발자의) 노예가 된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펴고 있다.

2020년 7월 한국의 개신교 선교단체 인터콥의 한 선교사가 유튜브 설교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맞으면 (백신 개발자의) 노예가 된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펴고 있다.

역병 쫓는 무당과 근대의학의 충돌

윤치호의 좌절에는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다. 원산 조선인 주민은 경찰서에서 나누어 주던 서양인 의사가 지은 약을 불신해서 먹지 않았다. 콜레라로 죽은 사람이 서양 약을 먹었기 때문에 죽었다며 질병이 아닌 서양의학 자체를 의심했다. 또 조선인은 서양인 선교사가 땅에 묻은 오염된 소를 파내어 아무렇지 않게 그 고기를 나누어 가졌다. 대신 ‘역병의 신’이라고 하는 운기영신대감(運氣靈神大監)에게 원산에서 떠나달라고 기도를 올리며 시루떡을 바쳤다. 징, 북, 나팔과 깃발을 비롯해 군복을 입고 조랑말 위에 올라탄 무당들로 이루어진 굿판 행렬이 도시를 정화하기 위해 주요 도로를 통과할 때는 마을의 존위(尊位)라는 사람이 “‘마을 사람들이 행복해했고, 이제 마을이 콜레라에서 벗어났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런 주민들에게 윤치호는 ‘무지’가 ‘축복’이라는 냉소적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과학적일지는 몰라도 관습과 괴리된 윤치호의 접근 방식은 경험과 전통에 근거해서 세계를 이해하던 지역주민들의 반발을 샀을 뿐이다. 방역 조치의 하나로 ‘오물과 먼지가 쌓인 집 안’을 청소하라고 관아에서 명령하면 “주민들은 아버지 세대는 오랫동안 아주 더러운 곳에 살았어도 그다지 건강이 나빠지지 않았다”며 맞섰고, 덜 익은 과일 판매를 금지하면 “조상은 덜 익은 과일을 먹고 살아도 오랫동안 장수했다”고 대항했다.

윤치호와 원산 주민의 대립은 질병을 둘러싸고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을 따르는 근대적 세계와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경험적 지식을 신봉하는 전통적 세계가 충돌한 사건이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 충돌은 과학의 승리로 끝났다. 집 안을 항상 청소하고 신체의 청결을 유지하는 것은 상식이 됐고, 역병으로 죽은 소를 파는 것은 생각도 않게 되었으며, 인류는 수명 연장이라는 기념비적 업적을 남겼다. 동시에, 명절과 제사 등을 제외하면, 오랜 세월 사람들 삶의 기반이었던 경험적 지식에 대한 믿음은 그 기반을 송두리째 빼앗겨 미신이 됐다.

첨단과학 시대에도 미신의 끈질긴 생명력

한데 미신은 지식에서 잘못된 믿음으로 전락했는데도 사라지지 않았고, 일종의 질병처럼 과학 주변에 머물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이어졌다. 과학이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예술 영역으로 승화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무형문화재라는 개념이 1962년 등장했고, 이 개념은 전통 공예품을 만드는 기술을 보유한 장인들에서 과거에 굿하며 치료사 역할을 하던 무속인으로 점차 확대됐다. 1985년 무형문화재가 된 무녀 김금화를 주인공으로 한 <만신>이라는 영화는 2014년 개봉해 ‘다양성 영화’ 중 높은 흥행 실적을 거두며, 예술 영역에서 미신이 과학의 비판에서도 자유롭고 대중의 인정도 받고 있음을 보여줬다.

과학이 자신감과는 달리 세계 모든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때마다 미신은 그만큼 자기 영역을 넓혀갔다. 합리적 회의론자들이 과학인 척하는, ‘헛소리’라 부르는 유사과학은 그 좋은 예이다. 구충제로 암을 치료하려는 사례를 보자. 유사과학은, 이를테면 개 구충제에 들어 있는 ‘펜벤다졸’ 성분이 항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 해외 논문에 실렸다는 주장처럼 과학의 외피를 쓰고 등장했다. 동시에 다른 치료 방식(예컨대 한의학)을 부정하면서도 말기암의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채 터무니없이 비싼 비급여약을 처방하는 현 의료체계의 모순을 드러냈다. 개 구충제를 먹은 한 암환자는 개인적 임상실험 경과를 유튜브에서 공유하며 다른 암환자를 위로하고 그들로부터 위로받았다.

오늘날 미신은 과학을 통해 크게 증폭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한 미신의 확산에는 현대 통신기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SNS)가 이바지했다. 2020년 4월 초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5G 음모론에 관한 페이스북 커뮤니티 487개, 인스타그램 계정 84개, 그리고 트위터 계정 52개가 있고 이 음모론에 대해 가장 인기 있는 유튜브 영상 10개의 조회 수는 600만 뷰에 달했다. SNS가 잘못된 정보의 발원지이자 확산지임을 인정한 페이스북은 5G 음모론과 관련된 포스팅을 지우기로 했고, 유튜브 역시 이 음모론에 대한 영상을 추천하는 알고리즘을 손질하기로 했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무차별적 확산은 정보 진위를 알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하는 ‘인포데믹’(infodemic)으로 발전했다. 사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사회적 불안은 가중됐다. 중국에서 바이러스가 비롯됐다며 중국 혐오 정서가 악화하고, 방역 당국에 대한 평가가 정치적 보수와 진보 진영의 논쟁을 일으키고, 세대 갈등도 조장한다. 미신 확산으로 그동안 단편적이고 간헐적으로 드러났던 사회의 근본적 모순이 한꺼번에 표출되고 있다.

사실과 거짓의 경계 모호해진 시대

코로나바이러스 미신과 관련해 많은 국가가 직면한 문제는 백신 접종이다. 미국에서는 백신이 자폐를 유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상당히 퍼져 있어서 초반부터 접종 거부율이 20%를 넘었다. 한국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접종 거부 의사를 밝히는 일이 늘고 있다. 1년 반 가까이 지속된 사회적 거리 두기와 감염 공포로 다들 지친 가운데, 일상 회복 전망은 백신 찬성론자나 반대론자 모두에게 불확실하다.

접종 찬반 문제를 단지 사실의 혼란을 초래한 미신의 확산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근대과학의 불가피한 산물인 미신은 그만의 영역을 구축해왔고 제한적이나마 사회적으로 긍정적 역할도 했다. 백신 미신은 수그러들기보다 인터넷을 통해 더 빠르게 전파될 수도 있다. 미신은 과학의 경계에 살고 있다.

현명호 중앙대 접경인문학 연구단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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