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동네에서 어떤 이웃과 함께 자랐느냐는 성인이 된 뒤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경제학자들은 특히 어렸을 때 자란 동네가 성인이 된 뒤의 소득과 경제적 계층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거듭 연구해왔다.
미국 미시간대학 경제학과의 저스틴 울퍼스 교수는 3월25일 ‘업샷’에 기고한 글에서, 같은 대학 경제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에릭 췬의 연구를 인용해 자란 동네가 미치는 영향이 지금껏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부모의 소득이나 교육 수준과 같은 요인을 통제한 뒤에도 어느 동네에서 자랐느냐는 특히 저소득층 학생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의 경제적 상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다만 안 좋은 동네 자체가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아니면 안 좋은 동네에 살 수밖에 없는 가족이 처한 상태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지 구분하는 건 쉽지 않다.
한동네에 같이 살다가 이사하게 된 가정과 계속 그 동네에 남게 된 가정의 아이들을 비교해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텐데, 마침 미국 정부가 1994~98년 실시한 ‘기회를 찾아가는 이사’(Moving to Opportunity)라는 프로그램이 경제학자들에게 좋은 데이터를 제공했다. 기회를 찾아가는 이사란 저소득층 공영주택에 사는 가구 가운데 추첨을 통해 선발된 가구에 경제적 수준이 더 나은 동네로 이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집세를 보조해주는 정책이었다.
그런데 기회를 찾아가는 이사는 자발적으로 추첨에 참여한 가구만을 대상으로 시행한 프로그램이었다. 즉 자식을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려는 의지가 강한 부모나 주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아는 이들이 주로 참여했을 가능성이 큰데, 이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가족들을 설문조사한 결과에도 나타났다. 자녀를 최대한 나쁜 주변 환경으로부터 차단하려 노력한다고 답한 부모들이 더 나은 환경으로 이사할 기회를 잡으려 한 것이다. 이렇게 부모가 교육에 신경 쓰는 집 아이들은 프로그램에 당첨되지 않아 계속 원래 동네에 살더라도 주변의 나쁜 환경에 덜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
에릭 췬은 1990년대 후반 시카고에서 이뤄진 공영주택 강제 철거에 주목했다. 시카고 정부는 오래된 건물을 재건축하려 몇몇 공영주택을 강제 철거했고, 거기에 살던 저소득층 가구는 모두 어딘가로 이사해야 했다. 강제로 모두가 추첨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에릭 췬은 추첨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간 사람들의 경제적 상황과 살던 건물이 철거되지 않아 계속 그 동네에 남았던 사람들의 경제적 상황을 비교했다.
공영아파트가 철거돼 추첨을 통해 더 나은 동네로 이사했던 저소득층 어린이는 그렇지 않은 어린이보다 성인이 되었을 때 소득이 평균 16% 더 높았으며, 일자리를 찾을 확률도 9%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생 버는 소득도 평균 4만5천달러나 더 많았다. 이는 기존 연구에서 보고된 수치보다 훨씬 더 큰 차이로, 이사했을 당시 아이들의 나이가 어릴수록 이런 효과는 더 크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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