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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월가 금융맨들에게도 도전장

SW 프로그램으로 시장분석·투자조언 하는 스타트업 ‘켄쇼’ 무섭게 성장
등록 2016-04-07 16:21 수정 2020-05-03 04:28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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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미국 하버드대학 경제학 박사과정 학생 대니얼 네이들러는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 보스턴 지부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그리스 총선 이후 유로존 전반에 걸쳐 불안정성이 높아진 상황이었다. 네이들러는 과거 비슷한 사례가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찾아보려 했다. 그런데 과거 사례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자료도 없었고,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를 모으고 솎아내는 방법조차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았다. 연방준비제도는 물론이고 시중은행, 금융회사의 사정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게 된 네이들러는 박사과정을 잠시 중단하고 구글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켄쇼’라는 회사를 세운다.

켄쇼는 사람 대신 머신러닝 알고리즘에 따라 기사 및 자료 검색부터 시장 동향 분석, 투자 조언까지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일본 불교의 선(禪) 사상에서 사물과 자연의 이치에 대한 첫 깨달음을 얻는 상태를 켄쇼라고 한다. 학부 시절부터 일본에 관심이 많았던 네이들러는 사람이 수십 시간 걸려 작성한 보고서보다 실수가 적고 훨씬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한 보고서를 몇 분 만에 내놓는 이 프로그램에 켄쇼라는 이름을 붙였다.

는 2월25일 매거진난에 월스트리트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켄쇼와 켄쇼의 창업자 네이들러를 소개하는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켄쇼는 처음 아이디어를 구상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아 골드만삭스와 제이피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대형 은행 3곳을 고객으로 둔 수백만달러 가치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많은 데이터와 숫자를 분석하는 것이 산업의 바탕이 되는 금융업계에서 향상된 연산력을 바탕으로 한 머신러닝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뚜렷한 강점을 지닌다. 본인도 순식간에 백만장자 대열에 합류했지만, 켄쇼가 만들어낸 기회와 앗아간 것들을 정확히 알고 행동하는 점이 자신과 다른 창업가들의 차이라고 네이들러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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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영국 옥스퍼드대학 학자 두 명은 ‘고용의 미래’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에서 현재 미국인의 직업 가운데 47%가 앞으로 20년 안에 자동화돼 기계로 대체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과거 로봇에 의한 생산공정 자동화, 기계화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제는 머신러닝 소프트웨어가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이들만 할 수 있다고 여겨지던 사무직을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네이들러도 앞으로 10년 안에 금융업계 종사자의 3분의 1, 많게는 절반 정도가 켄쇼나 다른 자동화 소프트웨어에 밀려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내다봤다. 컴퓨터가 사람 대신 일해서 돈을 벌어다 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똑똑해진 지금과 같은 과도기에 자동화가 소득 불평등을 심화하는 것도 문제다.

“켄쇼가 매우 높은 연봉을 받는 극소수의 일자리를 창출해내는 대가로 적당히 높은 연봉을 받아온 아주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앗아갔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사회적으로 손익을 따져봐도 기계에 밀려난 사람들을 전부 고용할 새로운 산업이 갑자기 등장하지 않는 한,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한 사회에서 이는 순손실입니다.”

기계는 계속해서 사람을 대체해왔다. 새로운 수준의 연산력으로 무장한 머신러닝 소프트웨어의 등장도 언젠가는 도래할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네이들러가 지적하는 것처럼 적어도 과도기에는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갑자기 발생하는 패자를 구제하고 돌보는 것이 사회가 해야 할 책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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