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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담화’의 주인공

[일본] 무라야마 도미이치
등록 2015-08-04 16:50 수정 2020-05-03 04:28

광복절 70주년을 앞두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담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아베 총리는 역대 정권의 역사인식을 계승하겠다고 했다. 물론 그 전에 재검증이 필요하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역대 정권의 역사인식은 무라야마 담화에서 시작된다.

한겨레 길윤형 기자

한겨레 길윤형 기자

1924년생인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는 올해 92살이다. 오이타 지방 어부의 집에서 11형제 중 6남으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뒤 도쿄로 상경해 주경야독하며 대입을 준비한 끝에 메이지대학 전문부 정치경제과에 입학한다. 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일본의 여느 정치인들과 비교된다.

대학에 입학한 이듬해인 1944년에 징집돼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다. 이런 경험 덕분인지 전쟁에 반대하는 사회당 소속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대학 졸업 뒤 오이타현어촌청년동맹 서기장에서 시작해 오이타시의원, 오이타현의원 등 차례차례 단계를 밟아 정치적 이력을 쌓았다. 그리고 1972년 중의원에 당선된 뒤 8선에 성공했다.

무라야마는 스스로 “운이 좋은 인생”이라고 평가한다. 특별히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총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94년 하타 내각의 총사퇴 뒤 자민당 총재 고노 요헤이가 당시 사회당위원장이던 무라야마를 총리로 세운다. 자민당 내부에 일부 반대 세력도 있었지만 결국 무라야마는 제81대 일본 총리가 된다. 이로써 자민당이 생긴 1955년 이후 처음으로 자민당을 거치지 않은 총리가 탄생했다.

1년6개월의 재임 기간 동안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다. 1995년 1월 고베 인근에서 일어난 진도 7.3의 대지진 때는 정부의 초동 대응이 미흡해 정권 지지율이 급락했다. 3월에는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가스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석 달쯤 지나 홋카이도 하코다테공항에서 비행기 납치 사건이 이어진다.

그 와중이던 1995년 8월 무라야마 담화가 발표됐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중략)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그런데 무라야마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법적 배상 문제는 국가 상호 조약 등으로 이미 해결됐다”는 발언도 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해 총리 퇴임 뒤 이사장을 맡았다. 보상금이 아닌 위로금 명목으로 위안부 피해자에게 지급되는 돈은 국민 성금으로 마련했다.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들은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꼼수로 보고 있다. 실제 이 지원을 받은 한국인 피해자는 61명뿐이다.

코모레비(필명) 일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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