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에 있는 ‘성모의 마을(사진)’은 ‘성모의 기사 수녀회’가 운영하는 중증장애인 요양 시설이다. 1급 뇌병변·지체·지적 장애인 85명이 1층에서 생활하고 있다. ‘성모의 마을’은 턱이 없는 단층 시설로, 한 번도 증축하지 않았다. 대신 치유정원과 공원을 만들었다. 환자와 그의 가족을 배려하는 마음 때문이다. 좋은 시설에 직원들의 배려심이 더해지니 인기가 좋다. 2016년 1월 현재, 대기 인원만 50여 명에 이른다.
‘성모의 기사 수녀회’는 1949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창립된 이래, 일본의 전쟁고아나 장애인 등을 위해 사회복지·의료·교육 사업을 벌이고 있다. 1995년 당시 회장인 나카야마 가즈코(中山和子) 수녀가 수녀회 기금 60억원을 투자해 ‘성모의 마을’을 건립했다. 그가 일본이 아닌 한국의 논산에 시설을 만든 이유는 분명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국에서 저지른 잘못을 어떤 방법으로든 사죄하고 싶어서였다.
나카야마는 1919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올해 2월이면 97살이 된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시설에 나가 봉사하며 지낸다.
그는 의사인 아버지와 함께 8살 때까지 울산에서 살며 일본의 만행을 직접 보았다. ‘성모의 마을’ 개원 때 “어릴 적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일본인들이 한국에 많은 잘못을 저지른 것이 사실”이라며 “어떤 방법으로든 가슴에 응어리진 빚을 갚고 싶었고, 새로운 한-일 관계를 만들어가자는 뜻에서 ‘성모의 마을’을 건립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1942년 3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그 다음달 5일에 세례를 받았다. 1949년에는 막 창립된 ‘성모의 기사 수녀회’에 들어가 ‘성모의 기사단’ 의료 시설에서 활동했다. 성모의 기사단은 1946년 가톨릭 프란치스코회가 일본 나가사키 원폭 투하 때 생긴 고아들의 보호 시설로 만든 것이었다. 나카야마는 이듬해부터 이 시설에서 방문의료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대학병원에서 퇴직하고 성모의 기사단에서 일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을 위해 생애를 바치고자 수녀가 되기로 결심한다.
창립 10주년을 맞은 수녀회는 지적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만들게 된다. 당시 일본 내 사회문제가 되었던 지적장애인과 그 가족을 도우려 한 것이다. 경제적 기반은 약했지만 나가사키현과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1965년 5월 개원했다. 이때 나카야마는 42살의 나이로 초대 원장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듬해부터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시설도 만들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논산에 ‘성모의 마을’을 설립한다. 가족도 힘들어하는 중증장애인들을 맡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다해 “가슴속에서부터 나온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 것이다. 심지어 그는 ‘가해 당사자’도 아니었다. 그의 사죄에 수녀회가 뜻을 같이했다. 그렇기에 ‘성모의 기사 수녀회’와 나카야마의 활동은, 적어도 일본 정부가 한국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에 기부한다는 10억엔(약 97억원)보다 훨씬 큰 가치가 있다.
길주희 객원기자·인권연대 간사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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