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3일 오가사와라 미치히로가 일본 프로야구팀 주니치 드래곤스 2군 감독으로 공식 취임했다. 1973년 10월생, 마흔둘의 나이로 올해 현역에서 은퇴하자마자 바로 지도자로 변신한 건, 현역 시절의 실력과 끈기 모두를 인정받은 덕이었다.
오가사와라는 지바현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야구를 시작했고 1989년 교세이 국제고에 진학했다. 1학년 때부터 유격수와 3루수, 외야수를 넘나든 것도 모자라 ‘팀 사정’에 따라 2루수로 전환, 이듬해 역시 ‘팀 사정’으로 포지션이 포수로 바뀐다.
재미있는 것은 프로에서 ‘현역 최다 홈런’으로 이름을 날린 오가사와라지만 고교 시절 그의 홈런 기록은 0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였을까, 졸업 뒤 프로팀에 지명받지 못하고 실업팀 NTT 간토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1997년에야 닛폰햄 파이터스에 입단한다. 고교 시절의 경험 덕분인지 중견수 외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된 그에게 ‘편의점 루키’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이듬해인 1998년 여름, 손가락 골절상을 당하고도 대타로 나와 홈런을 치면서 ‘근성’의 상징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2004년 그리스 아테네올림픽에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되었고 이어 2006년, 2009년에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도 잇따라 국가대표팀에 승선한다. 2006년 제1회 대회에서는 일본 국가대표팀 첫 홈런을 기록하고,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3타점을 올리는 등 일본의 우승에 기여했다.
같은 해 정규 시즌에는 32홈런, 100타점을 기록하면서 홈런왕과 타점왕 자리에 오른다. 생애 첫 퍼시픽리그 MVP를 차지했고, 팀은 44년 만에 일본시리즈를 제패했다. 이듬해에는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해 3할의 타율과 31홈런을 기록하면서 팀을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이끈다. 이번엔 센트럴리그 MVP를 차지, 역대 2번째로 양대 리그 MVP 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누린다.
오가사와라를 이렇게 ‘일류’ 선수로 만든 것은, 그를 아는 사람들 누구나 인정하듯 근성 혹은 ‘악바리 정신’이었다. 은퇴하는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 모두 “정말 독했다”고 혀를 내둘렀고 별명이 ‘근성’일 정도로 열심이었다.
프로의 세계는 원래 냉혹하다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야만 했던 이유는, 아마 자신의 국적과 관련 있을 것이다. 2003년까지 오가사와라의 국적은 조선, ‘자이니치’(在日)였다. 그러다 아테네올림픽에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하기 위해 귀화했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포털에 오가사와라를 검색하면, 귀화 관련 이야기가 종종 보인다. 국적 문제가 선수생활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 그를 쫓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면서도 일본인이 아닌 ‘자이니치’. 그들이 일본 사회의 차별 속에서, 그리고 본국의 무관심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악바리같이 이를 악물고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오가사와라처럼 일본인에게 같은 일본인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정도니 말이다.
길주희 객원기자·인권연대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