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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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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가 아시아에게 말하다

동아시아 핵 문제 전문가 8인에게 묻는 ‘핵 아시아’의 미래
“최악 시나리오 막기 위해 각국 국민들이 적극 나서야”
등록 2014-04-04 08:57 수정 2022-11-08 18:58
22일 오후 경북경주시 양암면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 사용후 연료 습식저장소, 건식저장소. 월성/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2일 오후 경북경주시 양암면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 사용후 연료 습식저장소, 건식저장소. 월성/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핵 아시아’에서 탈출할 수 있는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은 기획 연재의 마지막으로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핵 문제 전문가 8명에게 전자우편으로 동아시아 핵발전의 문제점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동아시아 곳곳에서 날아온 이들의 답변을 가상 좌담회 형식으로 모아봤다. 아시아가 아시아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_편집자

핵 아시아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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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국·러시아 등 개발도상국은 핵발전소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핵발전소는 역시 개도국에 매력적인 산업인 것으로 보인다. 개도국의 특징인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핵산업의 필수 요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_김익중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이다. 인구도 많아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늘어나면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_고이데 히로아키
“핵발전소 건설이 동아시아에 집중되면, 핵 사고 위험과 사용후 핵연료로 인한 갈등이 지속적으로 촉발될 것이다. 미국·유럽에서 1970~80년대에 겪었던 갈등이 그대로 동아시아에 이어지는 것이다.”
_이헌석
“일본과 전세계 사람들이 그토록 확신했던 핵발전은 이제 모든 나라에 위협의 대상이 됐다. 문제는 핵의 위협이 다른 시간에 다른 방식으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_마리오 다마토


김익중(이하 김) -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대만은 핵발전소를 줄이기로 결정했다.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중국도 핵발전소 건설을 1년 동안 유보했다. 한국과 일본은 별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핵발전소를 재가동할 기세고, 한국은 이 기회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4위의 ‘원전 대국’이 되겠다고 말한다. 핵 사고는 핵발전소가 많은 나라에서 발생했고, 개수가 많은 순서대로 발생했다. 미국 → 옛 소련 → 일본 순서로 말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핵 사고는 확률대로 일어났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동아시아는 그 교훈을 얻지 못했다.

“동아시아서 가장 큰 문제 중국”

헬렌 칼디콧(이하 헬렌) - 나 역시 슬프게도 동아시아가 후쿠시마 사고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핵발전을 다시 가동하고 싶어 하고, 한국·대만도 핵발전을 열망한다. 중국은 원자로 수를 늘리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는 계속 진행 중인 재앙임에도 이를 막을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이 없는 상태다. 또다시 대지진이 일어나면 후쿠시마 제3원전, 제4원전에서 방사능이 공기 중으로 방출되고, 방사능 오염수가 300~400t씩 태평양에 배출돼 해양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등 일본과 다른 나라를 위협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고이데 히로아키(이하 고이데) - 핵발전을 처음 시작한 건 미국과 유럽이다. 미국·유럽은 이미 1970년대에 핵발전 산업에서 서서히 철수했다. 일본은 이들보다 10~20년 늦게 핵발전에 뛰어들었으나, 더 이상 확장하기 힘든 상태다. 한국·대만은 이보다 더 늦게 출발했다. 어쨌든 핵발전에서의 철수는 진행될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이다. 인구도 많아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늘어나면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헌석(이하 이) - 동아시아에 핵발전소가 늘어나는 이유는 미국·유럽보다 뒤늦게 산업개발이 이뤄지면서 에너지 소비 증가도 뒤늦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9년 미국 스리마일 핵발전소 사고 뒤 자국에 핵발전소를 건설하기 힘들어진 미국이 동아시아를 주요 수출 대상국으로 선정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핵발전소 건설이 동아시아에 집중되면 핵 사고 위험과 사용후 핵연료로 인한 갈등이 지속적으로 촉발될 것이다. 미국·유럽에서 1970~80년대에 겪었던 갈등이 그대로 동아시아에 이어지는 것이다.

고이데 - 핵발전은 다른 발전 방식과 다르게 현재까지도 고비용이었다. 만약 핵발전소의 안전을 강조하면 더 비싸진다. 그렇다고 일본을 포함한 핵발전 국가들이 안전성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당연히 비극적인 사고는 또다시 일어날 것이다. 핵발전에 쓰이는 우라늄은 빈약한 자원이기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든 핵발전소는 없어지고, 핵발전 산업도 붕괴한다. 단, 그때까지 10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 사이에 비극적인 사고도 일어날 것이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등을 내세워 핵무기가 확산될 수도 있다. 원자력이 자연적으로 소멸하기 전에 우리 손으로 폐기해야 한다.

마리오 다마토(이하 마리오) - 모든 위협은 동일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아무도 일본에 가장 큰 위협이 닥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일본과 전세계 사람들이 그토록 확신했던 핵발전은 이제 모든 나라에 위협의 대상이 됐다. 문제는 핵의 위협이 다른 시간에 다른 방식으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핵 기술은 본질적으로 죽고 사는 문제를 만들며, 원자로가 폐기된 뒤에도 수천 년 동안 폐기물 형태로 남는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

“지역 차별 구조에 기반한 핵발전”

- 미국·유럽은 지난 25년 동안 핵발전소를 거의 짓지 않고 폐쇄하기만 해왔다. 그 결과 유럽은 그 기간에 약 50개의 핵발전소를 줄여왔다. 미국도 별로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핵발전소 노후화가 진행돼 앞으로 20~30년 내에 핵발전소 수는 빠르게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한국·중국·러시아 등 개발도상국은 핵발전소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핵발전소는 역시 개도국에 매력적인 산업인 것으로 보인다. 개도국의 특징인 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가 핵산업의 필수 요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타오카 데루미(이하 가타오카) - 일본 정부의 ‘원자로 입지 지침서’는 원자로 주변에는 거주자 지역이 있으면 안 된다며 거리 범위 등도 정하고 있다. 지침에서도 알 수 있듯 핵발전소는 소외 지역에 지어진다.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는 건 당연한 전제인 셈이다. 사고 피해 측면에서 보면, 과소 지역은 생활·문화·경제·역사 등에서 소외되고 인구 밀집 지역(도시)만 보호받게 된다. 결국 핵발전은 과소 지역의 생활을 차별하는 구조에 기반한다. 그럼에도 막대한 핵발전 교부금을 뿌리기 때문에 과소 지역에서는 핵발전소의 위협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에바 슈테른펠트(이하 에바) - 중국에서는 조직화된 반핵운동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른바 ‘님비’(NIMBY)의 하나로 이뤄지는 개별적인 저항운동은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광둥성 장문시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핵연료 공장 건설에 항의했으며 그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당시 이들이 활용한 표어 등은 확실히 홍콩·대만의 반핵운동에서 배운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중국에서 성공적인 반핵운동으로는 양쯔강 주변 장시성 펑쩌 내륙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했던 운동을 들 수 있다.

“국민 전체는 손해, 핵산업계는 이득”“중국은 미디어와 정치가 투명하지 않다. 몇 가지 사소한 사고가 핵시설에서 발생해도 그들은 공개적으로 보고하지 않는다. 원자력 안전과 우려에 대한 시민의식은 독일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_원보
“동아시아에 국제기구를 두고 핵 안전을 모색하는 아이디어도 좋다. 만약 그런 조직을 운영한다면 핵 산업을 대변하는 사람들 말고도 방사능의 위험성을 아는 의사와 기술자 등도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_헬렌 칼디콧
“지난해 광둥성 장문시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핵연료 공장 건설에 항의했으며,그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당시 이들이 활용한 표어 등은 확실히 홍콩·대만의 반핵운동에서 배운 것으로 보인다.”
_에바 슈테른펠트
“핵발전 산업계는 후쿠시마 사고의 가장 큰 교훈으로 핵발전의 한계와 그 폐혜를 솔직히 인정하고, 폐로를 위한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후쿠시마가 ‘내일의 내 모습’이 되기 전에 탈핵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한다.”
_가타오카 데루미

원보(이하 원) - 산둥성 웨이하이시 지역에서는 2006년 주민들이 핵발전소가 들어서는 ‘은빛 해변’(The Silver Beach)을 지키기 위해 항의서한을 원자바오 총리에게 전달한 적이 있다. 중국의 핵발전소 건설 가운데 내륙 지역에 핵발전소를 지으려는 시도는 동아시아의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늘 물 부족을 겪는 중국에서 핵발전소가 들어서면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하게 된다. 핵발전소에서 사용한 물이 하천 등으로 흘러들어 다른 지역에서 사용된다는 점에서 과연 핵발전소가 경제 정의를 가져다주는지 의구심이 든다. 핵발전소가 환경적·사회적·경제적 가치를 주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 핵발전은 투명하게 정보가 제공되는 나라에서는 하기 힘든 산업인 것 같다. 한국 정부가 그토록 자랑한 아랍에미리트연방(UAE) 핵발전소 수출도 어떤 조건으로 계약이 이루어졌는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보증을 섰으니 만일의 경우 국민의 세금으로 처리해야 하므로 당연히 국민은 계약 내용을 알아야 하지만 공개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핵산업이 국민 전체에게는 손해가 되고 소수의 핵산업계에는 큰 이득이 되는 산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식하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그들이 핵발전에 대한 적절한 안전 대책을 가지고 있으며 핵 폐기물을 관리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또한 후쿠시마 사고처럼 치명적인 사고가 그들의 국가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중국은 미디어와 정치가 투명하지 않다. 몇 가지 사소한 사고가 핵시설에서 발생해도 그들은 공개적으로 보고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원자력 안전과 우려에 대한 시민의식은 독일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헬렌 - 동아시아 국가들은 지금 당장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할 수 있다. 문제는 100만 년 이상 자연환경으로부터 격리해야 하는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인데, 이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동아시아 핵발전 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는 대중과 정치인들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같은 심각한 사고가 발생한다면 식량 공급에 큰 문제가 생기고 암과 질병 발생률이 급증한다는 점을 아느냐에 달려 있다. 동아시아에 국제기구를 두고 핵 안전을 모색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그런 조직을 운영한다면 핵산업을 대변하는 사람들 말고도 방사능의 위험성을 아는 의사와 기술자 등도 함께 참여해야 할 것이다.

“‘걱정’만이 아닌 ‘대안’으로”

마리오 - 동아시아 안의 핵 협정은 가장 높은 기술 표준과 높은 규제 기준, 핵발전소 처리 문제를 돕는 단계적 자금 지원 등이 이뤄질 때 의미 있다. 물론 이러한 자금은 납세자가 아닌 핵발전 사업자를 위해 제공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협정에 어떤 기회가 있을까. 이러한 높은 수준의 문제에 대해 정부는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다룰 준비가 덜 되어 있다.

에바 - 나는 독일 출신이다. 현재 독일은 핵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2021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2050년까지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력의 80%를 공급하려 한다.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일본도 2011년 이후 핵발전소 없이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했다. 중국도 현재 핵발전이 전체 전력의 2%를 차지하지만, 대기오염 등의 이유로 석탄 의존도를 줄여야 하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재생 가능 에너지 개발을 위한 거대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가타오카 - 핵발전소 감축이나 폐지는 시민과 양심적 정치가, 과학자의 힘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핵발전 산업계는 후쿠시마 사고의 가장 큰 교훈으로 핵발전의 한계와 그 폐해를 솔직히 인정하고, 폐로를 위한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지금의 후쿠시마가 ‘내일의 내 모습’이 되기 전에 탈핵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한다.

- 어느 국가나 ‘자신들이 생각하는 최선’에서는 핵 안전에 대한 노력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기준은 너무나 자의적이고 충분치 못하다.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 상황에서 옆 나라 핵발전소 건설에 대해서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황사와 미세먼지 등 최근 월경성 환경오염이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핵발전소 사고는 더욱 큰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한 국가 차원의 대처를 각국 국민이 적극적으로 요구할 때만 ‘걱정’만이 아닌 ‘대안’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정리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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