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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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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는 ‘핵 안전’ 뒤에서는 ‘핵 발전’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핵의 평화적 이용과 비확산’ 주장하는 동아시아 국가들
핵발전의 경쟁적 수출로 위험 확산 중
등록 2014-04-05 17:27 수정 2022-11-08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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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0만 명.
한국·중국·일본·대만 등 동아시아에 있는 핵발전소 반경 30km 안에 살고 있는 인구수다(2010년 기준). 30km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방사선비상계획구역’(핵발전소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벌어질 경우, 그 피해를 감안해 대피시설과 방호물품 등을 미리 준비해둬야 하는 구역)으로 정하라고 권고하는 거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핵의 위협은 핵발전소 반경 30km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과거 미국·영국·프랑스 등의 기술을 이어받은 한국·일본·중국은 지구상에 핵발전소 수를 늘리는 데 앞장서는 대표적인 국가로 지목받고 있다. 늘어나는 핵발전소 수만큼이나 ‘핵 안전’에 대한 성찰도 깊어지고 있을까. 핵발전소가 ‘위험의 확산’이라고 경고했던 동아시아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왜 좀처럼 들리지 않는 걸까. 아시아의 핵 미래를 아시아에게 되물어본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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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동 중 17기, 건설 중 31기.”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3주기를 맞은 지난 3월12일, 중국 국가핵안전국(NNSA)은 을 통해 핵발전소 현황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이날 중국 국가핵안전국은 “전세계적으로 400기가 넘는 핵발전소 가운데 중국이 건설 중인 핵발전소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세계 핵발전소 21%(92기) 동북아에

동아시아가 ‘핵 집중 지역’으로 떠오른 건, 이른바 ‘차이나 신드롬’에 비유하며 폭발적인 핵발전 국가로 성장한 중국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일본·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 모두 꾸준히 핵산업에 투자해왔기 때문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발전원자로정보시스템(PRIS)’을 보면, 2014년 3월 현재 전세계에서 가동 중인 핵발전소 435기 가운데 21%인 92기가 한국·중국·일본·대만에 있다. 게다가 동아시아의 ‘핵 집중’ 현상은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세계원자력협회(WNA)가 지난해 10월 펴낸 ‘아시아의 핵발전 성장’(Asia’s Nuclear Energy Growth) 보고서에 따르면 동아시아의 핵발전 산업이 급속하게 팽창하고 있다. 보고서는 “2010년 자료를 기준으로 볼 때, 동아시아와 남아시아 지역에서 매해 38기가와트일렉트리컬(GWe)의 핵발전 용량이 추가되고 있다. 2010~2020년에는 매해 58GWe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앞으로 폐로하는 발전소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용량이다”라고 분석했다. 2020년 전세계 핵발전 점유율의 대부분은 중국·인도·일본·한국 가운데 세 나라가 차지할 것으로 보고서는 내다보았다.

그렇다면 폭발하듯이 늘어나는 핵발전소 수만큼, 동아시아 국가들은 ‘핵 안전’ 인식도 키워가고 있을까. 그 단면은 지난 3월2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의 내용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2012년 서울에서 처음 열린 핵안보정상회의는 한국·일본·중국·대만 등 주요 핵무기와 핵발전소를 보유한 약 53개국이 2년에 한 번씩 여는 회의로, 핵테러 문제와 핵발전의 안전 등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다. ‘핵의 평화적 이용과 비확산’을 주제로 내건 이번 정상회의에 참석한 나라들은 “핵안보와 원자력 안전을 모두 다루는 방식으로 효과적인 비상상황 대비, 대응 및 피해 경감 역량을 유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헤이그 코뮈니케’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날 개막식 발언자로 나선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영변에 너무나 많은 핵시설이 집중돼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한 건물에서만 화재가 발생해도 체르노빌보다 더 큰 핵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 핵 문제가 동아시아의 안전을 해치고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다 함께 나서야 한다는 취지였다. 실제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가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둔 3월14일에 펴낸 ‘2014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배경과 과제’ 보고서에는 “한국의 높은 원자력 역량과 리더십, 그리고 비핵국가 및 분열성 핵물질 비보유국으로서의 도덕적 지위를 활용하며, 우리 정부가 세계 및 동북아 차원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핵비확산 및 핵안보 강화를 위한 ‘세계(동북아) 핵리더십 구상’을 제안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 수출 선두 일본·한국, 후발주자 중국

이처럼 한국 등이 핵 안전 주장을 활발하게 펴는 것과 달리, 정작 동아시아는 전세계적으로 핵발전 시장의 확산에 앞장서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기도 하다. 한국·일본·중국이 미국과 유럽 등 이른바 ‘핵발전 1세대 국가’를 대신해 저개발국가에 핵발전을 수출하는 데 첨예한 경쟁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말 터키를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세일즈 외교’를 벌여 핵발전소 사업 계약을 따낸 바 있다. 당시 아베 총리가 터키를 방문하던 중, 일본 미쓰비시중공업-프랑스 아레바의 컨소시엄 업체가 터키 흑해 연안 시노프에 짓는 핵발전소 건설 사업에 대해 터키 정부와 정식 합의를 이끌어냈다. 일본의 공사 수주는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뒤 처음 이뤄진 것으로, 본격적인 ‘아베노믹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동아시아에서 핵발전 후발주자인 중국도 최근 몇 년 사이 수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 1월 영국 보도를 보면, 중국 정부가 파키스탄 핵발전소 건설에 65억달러(약 6조8천억원) 규모의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는 파키스탄 남부 항구도시인 카라치에 짓는 핵발전소 2기의 건설비로, 중국이 파키스탄에 지원한 사업비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 2대 전력 공기업인 광둥핵전집단공사(CGNPC)는 남아프리카공화국·베트남·타이 등에 핵발전소 건설 협력을 추진하고 있으며, 지난해 10월에는 프랑스 전력공사(EDF) 컨소시엄에 참여해 영국 정부가 내건 160억파운드(약 27조4천억원) 규모의 핵발전소 신규 건설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아랍에미리트연방(UAE) 등에 추진했던 핵발전소 수출과 함께 핵연료 재처리 사업도 추진하려 한다. 우리나라는 앞서 1956년 미국의 허락이나 동의 없이는 핵연료의 농축·재처리를 금지하도록 한 ‘한-미 원자력 협정’ 탓에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갖출 수 없는 상태다. 그러나 2016년 새로 개정하는 협정문에는 핵연료 재처리와 우리나라가 핵발전소 핵심 설비를 미국 내 인허가 없이 수출하는 내용도 담으려 노력하고 있다.

핵발전소의 ‘안전’보다 ‘추진’

그러나 동아시아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핵발전소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은 곧 ‘위험의 확산’이라고 끊임없이 지적해왔다. 1960~70년대 미국·영국·프랑스 등이 일본·한국 등에 핵발전 기술을 수출했던 구조를 그대로 이어받아, 동아시아 국가들이 사용후핵연료의 해결 방법도 없는 핵발전을 저개발국가에 납품하는 구조를 고착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일본·대만 등 탈핵 활동가들이 모인 ‘반핵아시아포럼’(NNAF)은 1993년부터 아시아 국가들의 핵발전 문제를 지적해왔다. 이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타이·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 등을 돌면서 핵발전소 안전의 문제점을 주장하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요구해왔다. 또 각국 정부가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핵발전소 관련 정보를 모으고 이를 교류해온 바 있다. 아시아 활동가들이 모인 ‘핵 없는 아시아 행동’(No Nukes Asia Action)도 2000년대 초반부터 핵발전소 수출과 핵폐기물 생산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일본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사토 다이스케 반핵아시아포럼 사무국장은 “반핵운동 자체는 궁극적으로 핵발전소를 없애는 걸 목적으로 하지만, 우리의 압력이 전력 당국 등에 핵발전소 안전에 기여하도록 하는 면도 있다. 정부가 핵발전소 관련 정보를 은폐하는 것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동아시아 각국이 모이는 국제기구 형식의 핵발전 통제기구는 핵발전소의 ‘안전’보다 ‘추진’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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