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핵발전소 정책은 거짓말 난무”

한·일 대표 탈핵 여성 정치인 김제남 정의당 의원·아베 도모코 일본 무소속 중의원 대담
“핵의 본질은 생명 파괴다”
등록 2014-03-19 15:03 수정 2022-11-08 18:57
지난 2월1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난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 탈핵 여성 정치인인 아베 도모코 일본 중의원(왼쪽)과 김제남 의원(정의당)의 모습.

지난 2월1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난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 탈핵 여성 정치인인 아베 도모코 일본 중의원(왼쪽)과 김제남 의원(정의당)의 모습.

핵 아시아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 이 기사는 PC와 모바일 등 디지털 환경에 적합하도록 구현한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콘텐츠로도 제작이 됐습니다. 왼쪽 이미지 또는 아래 바로가기를 클릭하시면 지면에서 만나지 못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보다 많은 콘텐츠들을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 핵 아시아 바로가기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뒤, 일본과 이웃나라 한국에는 ‘탈핵 정치’의 뿌리가 내려졌을까. 현실은 간단치 않은 듯하다. 아베 신조 내각은 핵발전소 재가동을 천명했고 박근혜 정부는 핵발전소 5기를 추가로 짓는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니 말이다. 지난 2월12일 서울에서 시대에 역류하는 두 나라의 행보에 끊임없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온 한국·일본의 대표적인 탈핵 여성 정치인이 자리를 함께했다. 소아과 의사 출신으로 일본 ‘원전제로 의원모임’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아베 도모코 중의원(무소속)과 녹색연합 사무처장 출신으로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 대표인 김제남 의원(정의당)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2시간 가까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뒤 지난 3년 동안의 소회를 털어놨다.

“국민 여론 원전 제로 바라는데 선거는?”

아베 도모코(이하 아베) - 일반적인 재난·재해는 과거를 쉽게 잃어버린다고들 한다. 현재야 어떻게든 재건해가면 되고, 미래의 극복 가능성도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 사고는 다르다. 미래 자체를 빼앗기고 미래 세대에 부담을 안겨주는 재해다. 우리가 향유하는 이 편의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지게 된다. 진지하게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일이 정치라면 이 문제는 피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제남(이하 김) -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말을 내세우며 만드는 원자력은 과연 평화적일까. 그렇다면 평화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이용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다. 핵의 본질은 생명 파괴다. 핵폐기물은 10만 년이 지나도 인간이 그 불을 끌 수 없다. 결국 우리 아이들이 감당해야 하는데, 현세대는 전기를 쓰는 편리함의 대가로 꺼지지 않는 불, 생명을 파괴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아베 - 김 의원도 여성이고 나도 여성이다. 여성들이 이런 문제를 던지면 “여자들, 또 이런 얘기를 하냐” “핵발전소 안 좋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경제는 어쩔 건데”라고 묻는 사람들이 꼭 있다. 물론 생명을 키우는 여성이기에 더 민감할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핵발전소는 사회를 일그러뜨린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거대한 송전시설을 만든다. 이 때문에 희생당하는 사람과 이해를 얻는 사람 사이의 격차가 너무나 커서 왜곡된 상황을 만드는 게 핵발전이다.

지난 2월9일 일본 도쿄도지사 선거는 ‘탈핵 정치’에 큰 숙제를 안겼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뒤 일본 사회에서 탈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도쿄도지사 선거를 통해 분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결과는 달랐다. ‘탈핵’을 공약으로 내세운 호소가와 모리히로 전 총리와 우쓰노미야 겐지 전 일본변호사연합회 회장을 상대로 자민당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마스조에 요이치 전 후생노동상이 선거에서 큰 득표 차이로 승리했기 때문이다.

- 국민 여론은 원전 제로를 바라는데 도쿄도지사 선거 결과는 왜 그렇게 나온 걸까. 아베 총리는 핵발전소를 추진하겠다는 기조를 가지고 있는데, 국민은 왜 자민당 후보인 마스조에를 선택했을까 궁금했다. 후쿠시마 사고가 일본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국민 여론과 현실정치의 차이는 왜 벌어지는지 말이다.

아베 - 탈핵 결정은 그리 쉽지 않다. 독일도 소련 체르노빌 사고 뒤 22년이 지나고서야 탈핵을 결정했다. 선거 자체만 보면, 호소가와 후보의 출마 결단이 시기적으로 늦어 탈핵 후보 단일화 등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본다. 선거 과정에서 ‘핵발전이 왜 안 좋으냐’는 질문을 받으면 생명을 해친다, 아이들한테 안 좋은 거다라는 점을 시민들이 직관적으로 알더라. 그러나 ‘핵발전이 어떻게 사회를 일그러뜨리느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동아시아서 핵발전 환상 살포한 일본”

- 전적으로 공감한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핵발전을 시작했다. 1978년 부산 고리 핵발전소를 시작할 때 ‘민족 중흥의 찬연한 등불’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핵발전을 하면 미래가 보장된다, 핵발전소는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 행복하고 값싼 에너지라는 ‘우상’을 만들었다. 시민들은 가까이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장막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밖에서 편리한 전기만 쓴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어리석은 우상’을 믿고 살아온 셈이다.


“핵발전소는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 행복하고 값싼 에너지라는 ‘우상’을 만들었다. 시민들은 가까이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장막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밖에서 편리한 전기만 쓴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어리석은 우상’을 믿고 살아온 셈이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

아베 - 일본은 원폭 투하라는 다른 요인이 있다. 핵이 사람들을 비참에 빠트리는 상황을 경험했다. 그 상황에서 기어나와 다시 살려고 할 때 자신들에게 고통을 줬던 그 핵을 평화롭게 사용해나간다면 피해를 입은 마음도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일본 핵발전은 진실이 은폐된 채 좋은 부분만 부각되면서 고도 경제성장과 함께해왔다. 일본의 뒤를 바로 한국이 따랐고, 대만도 1970년대 핵발전소 건설에 뛰어들었다.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핵발전소의 환상을 살포한 선두주자였다.

-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 정치권에서 ‘탈핵 정치’라는 말이 처음 나오기 시작했다. 핵발전을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는 큰 정책은 못 바꿨지만, 작게 보면 큰 변화가 용솟음치고 있다. 탈핵 정치인이 생기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탈핵에 뜻을 같이해 협의회를 하고 있다. 변호사·의사·교수·학생·엄마들의 탈핵 모임이 생기고, 학교급식에서도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급식을 먹이겠다는 조례가 등장했다. 후쿠시마 이후 한국의 시민의식이 급성장했다.

아베 - 음식물의 방사능 오염도 지속적인 조사가 없으면 진정한 실태가 드러나지 않는다. 일본에서 1954년 제5후쿠류마루 사고(1954년 3월1일 비키니환초에서 미국이 수소폭탄 실험을 하던 중 지나가던 일본 참치잡이 어선이 방사능에 피폭돼 선원 23명 중 1명이 사망한 사건)가 났을 때 바다에 방사능 낙진이 굉장히 많았다. 당시 일본에선 각 학교가 한 달에 한 번씩 급식에 대해 방사능 측정을 했다. 그러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중단했다. 몇십 년 동안 해온 것을 재개하라고 현재 국회에서 요구하고 있다.

- 서울에서는 원전 1기 줄이기 운동을 하고 있다. 에너지 자립을 하자는 것은 정치적 선택이지만 시민들에게 이를 호소하자는 것이다. 나는 이 운동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정부 정책을 한 번에 바꾸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오는 6월 한국의 지방선거가 도쿄도지사 선거처럼 탈핵이 핵심 공약이 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후쿠시마 사고 당사자가 아니기에 이슈가 되진 않겠지만, 아이들에게 방사능 식품을 먹이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거는 후보를 선택하려 한다. 그러나 당락을 좌우하는 핵심 공약이 되긴 어려울 것이다.


“‘탈핵 정치’는 진짜 쉽지 않다. 사방에서 거짓말, 또 거짓말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 부인인 아베 아키에 여사도 남편과 다르게 핵발전소 재가동에 반대한다고 하는 걸 보면 그렇다.” -아베 도모코 일본 중의원

아베 - 사실 핵발전소를 추진하겠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일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아베노믹스에는 진정한 성장 전략이 없다. 핵발전소나 무기를 수출하는 게 진정한 성장 전략일까. 지역에 활력이 생기지도 않고 호기를 맞은 것처럼 보이는 경제 현상도 얼마나 더 갈지 알 수 없다. 진정 경제를 살리려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말처럼 재생 가능 에너지에 투자해야 한다고 본다. 그게 아니면 막다른 상태다.

- 한국의 성장 전략 가운데 하나는 핵발전소 수출이다. 아베노믹스에서 강하게 들고나온 핵발전소 수출은 사고 위험을 아시아로 수출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고리·월성 1호기 등 노후 핵발전소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쟁점이다. 수명 연장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말이다. 고리·월성 핵발전소가 있는 곳은 활성단층대로 지진에 취약한 지역이다. 30년 전에 만든 이 핵발전소에는 내진설계가 반영되지 않아 보완한들 지진을 견뎌낼 수 있는지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도 노후 핵발전소에서 기계 결함, 인적 결함, 그리고 지진·쓰나미라는 자연재해가 합쳐져서 일어났다. 일본은 어떻게 했는가.

“아베 총리 부인도 핵발전소 재가동 반대”

아베 - 노후 핵발전소를 분석할 때는 원자로가 얼마나 노후화됐는가, 온도 변화에 따라 원자로 온도가 얼마나 변화하는가, 지금까지 사고를 얼마나 일으켰는가, 활성단층이 있는가, 주변 인구는 어느 정도인가 등 다양한 부분을 전부 수치화해 합산한 것이 결과로 나온다. 원자로 기술자, 지진 전문가, 활성단층 조사자, 그리고 전력회사의 연차보고 등을 다 들여다보고 분석해 작업에만 1년 넘게 걸렸다.

-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정책입안자들이 알아야 할 점은,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을 억지로 연장하려 할 때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기계는 오래되면 사고를 부른다. 무조건 안전을 말하지만 모든 중대 사고에는 기계 결함, 사람의 실수가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안전하게 운영하겠다고 해도 수명이 다했다면 폐로하는 게 정답이다.

아베 - 핵발전소 관련 정책에는 속임수가 너무 많다. 그 부분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 대다수 국민은 모르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탈핵 정치’는 진짜 쉽지 않다. 사방에서 거짓말, 또 거짓말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 부인인 아베 아키에 여사도 남편과 다르게 핵발전소 재가동에 반대한다고 하는 걸 보면 그렇다.

- 부부 사이에 싸움이 많겠다.

아베 - 미묘하다고 한다. 그래도 부인이 이긴다고 하더라. (웃음)

정리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