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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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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성매매와의 전쟁’

누가 그들을 유곽으로 내몰았나
등록 2014-02-25 14:22 수정 2020-05-03 04:27

중국 후베이성 우한으로 출장을 다녀온 남편이 전하는 ‘깜짝’ 소식. 생애 최초로 성매매 단속반의 기습 단속을 받았다고. 밤늦은 시각, 일을 마치고 호텔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미처 일어나서 누구냐고 물어볼 틈도 없이 바로 문이 열리면서 ‘매의 눈빛’을 가진 한 무리의 공안들이 들이닥치더라는 것. ‘혼자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신분증 제출과 출장 경위를 묻는 질문이 마치 현행범 취조하듯 이어지더니, 별다른 혐의점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도 다시 한번 객실 전체를 ‘쪼듯이’ 훑어본 뒤 ‘실례했다’는 한마디 사과 없이 위풍당당하게 사라졌다고. 출장 가는 남편 등 뒤에 대고 “요즘 ‘싸오황’(성매매 단속) 광풍인 거 알지? 알아서 조심해~”라고 농담처럼 한마디 던졌는데, 진짜로 단속반과 맞닥뜨릴 줄이야. 광풍이 맞기는 한가보다.
지난 2월9일 중국 관영방송 가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광둥성 둥관시의 공공연한 성매매 실상을 방송한 직후, 중국 전역에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성매매 단속’이 벌어지고 있다. 벌거벗은 남녀가 뒤엉켜 있는 호텔방을 급습하는 장면과 알몸으로 앉아서 취조를 당하는 ‘현행범’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공개되고 심지어 모자이크 처리도 되지 않은 화면이 인터넷에 돌고 있다. 발단이 된 둥관시에서는 성매매를 제대로 단속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부시장 겸 공안국장이 면직됐고, 앞으로 3개월간 강력한 단속을 벌여 ‘성의 도시’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야심찬 ‘작심’을 만천하에 공표했다. 이렇게 둥관에서 시작된 성매매와의 전쟁은 광둥성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운동’으로 번지고 있고 심지어 홍콩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성매매를 단속하겠다고 하니, 뭐 딱히 나쁘다고 할 일은 아니다. 단지 최소한의 인권의식과 예의를 갖춘 단속이라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이런저런 성매매 단속 관련 보도를 보면서 문뜩 머리에 떠오른 묘한 오버랩 장면 하나. 1948년 사회주의 신중국이 건립된 뒤 중국 전역에서 역시나 광풍처럼 전개된 ‘매춘과의 전쟁’이다. 신중국 건립 뒤 중국 공산당 정부가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전국적으로 매춘굴을 소탕하고 매춘부들을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가진 사회주의 신중국 노동자로 ‘개조’하는 일이었다. 당시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매춘굴이던 첸먼 근처 빠다후통에서는 수많은 매춘부가 매일같이 트럭을 타고 어딘가로 보내졌고, 사상교육을 받은 몇 달 뒤 신중국의 건강한 노동자로 변신했다는 내용이 연일 방송과 신문의 주요 뉴스로 등장했다. 그리고 얼마 뒤, 중국 정부는 ‘사회주의 신중국에서 이제 매춘은 근절됐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선언이 있은 뒤 불과 반세기도 되지 않아 중국은 다시 한번 ‘매춘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것도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저임금 제조업 노동자들의 최대 밀집 지역인 둥관에서 말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매춘부들의 절반 이상은 원래 농촌에서 올라와 둥관이나 광저우 등에서 일하던 가난한 노동자 출신 아가씨들이다.
생각하면 참 씁쓸하고 슬픈 아이러니다. 반세기 전에 근절됐다고 선언된 매춘이 중국 전역을 ‘성의 도시화’하면서 부활한 일도 그렇고, 신중국의 건강한 노동자였던 ‘그녀들’이 어느 날 다시 매춘부로 변신한 일도 그렇다. 무엇이 과연 이런 아이러니를 만든 주범일까? 또 한 가지 드는 의문 하나. 약속한 3개월간의 집중단속이 끝나면 중국에서는 과연 매춘과 성매매가 근절되는 것일까?

박현숙 베이징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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