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베이징 ‘탈출’을 감행했다. 거의 매일 계속되는 암울한 잿빛 하늘과 대낮인데도 불과 몇m 앞 건물도 잘 안 보이는 시커먼 시야. 들이마시면 당장 죽을 것만 같은 공포스러운 공기. 집 안의 모든 창문을 꽁꽁 걸어잠그고도 그 혐오스러운 공기가 단 한 줌이라도 새어 들어올까봐 하루 종일 바람의 동태마저 감시할 지경이었다. 집 밖을 나가기도 두려워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마트와 시장도 가지 않고 거의 모든 식료품을 배달에 의존해 살았다.
그렇게 비자발적 유폐 생활을 일주일 이상 하던 어느 날, 그만 격분을 참지 못하고 모든 밀폐된 창문을 활짝 열고 여전히 시커먼 스모그로 뒤덮인 베이징 상공을 향해 소리 질렀다. “난 떠날 거야~. 이게 어디 사람이 살 곳이냐고!”
당장 짐을 꾸렸고, 진짜로 떠났다. 1년 내내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를 즐길 수 있다는 중국 윈난성 리장으로. 리장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나를 반긴 것은 눈이 부시다 못해 온몸을 푹 적실 듯이 쏟아져내리는 금빛 햇살과 아주 오랫동안 마셔본 적 없는 맑고 신선한 공기의 내음이었다.
햇살 한 줌 들어오지 않는 밀폐된 감방 안에서 살던 죄수가 어느 날 갑자기 탈옥한 뒤 느끼는 심정도 그렇게 눈물 나게 감동스러운 것일까. 오랫동안 잊고 있던 파란 하늘과 금빛 햇살, 싱그러운 공기를 마음껏 보고 마시고 소유할 수 있는 자유. 리장에 온 뒤 내가 새삼 깨달은 것은 바로 그 ‘맑은 공기를 위한 자유’다. 인간에게 정말 ‘천부인권’이 있다면 그 안에는 늘 푸른 하늘과 맑고 신선한 공기를 즐길 수 있는 자유도 있어야 한다고.
중국은 올해 52년 만에 처음으로 스모그 최대 발생량을 기록했다. 연초부터 연말인 지금까지 베이징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기준치를 몇십 배 상회하는 최악의 스모그가 극성을 부렸다. 사실 스모그는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라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전후해 중국 최대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특히 시내 중심에 스모그와 오염물질을 흡수할 강과 산이 없는 베이징에서는 단순히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 차원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베이징 탈출 러시를 불러올지 모를 가장 위험한 정치·경제·사회적 난제로 떠오르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베이징에서는 폐암 발생률이 60% 이상 증가했고 근래 몇 년 사이 각종 호흡기 질환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중국 폐암학회는 향후 12년 안에 중국이 세계 최대 폐암 대국이 될 것이라는 ‘살 떨리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심지어 생식능력도 저하시켜 굳이 강제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취하지 않더라도 몇 년 안에 자연적으로 산아제한 효과도 볼 수 있다는, 스모그와 관련한 각종 공포스러운 뉴스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최근 중국 장쑤성 난징시에서는 8살 소녀가 폐암에 걸린, 중국 최연소 폐암 환자가 발생했는데 조사 결과 주원인이 바로 대기오염으로 인한 미세먼지와 배기가스 등에 장기간 노출된 결과라는 것.
스모그가 일상화된 베이징에서는 지금 중상층을 중심으로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 등 공기 청정 국가나 다른 청정 지역으로 ‘이민’을 가는 베이징 탈출 움직임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고, 실제로 주변의 적잖은 중국인 친구들이 하나둘 베이징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청정 지역 공기를 담아 하나에 5위안(약 900원)에 파는 이른바 ‘공기 청정 캔’으로 일약 부자가 된 중국판 봉이 김선달 같은 기업가가 등장했는가 하면, 미세먼지를 차단할 수 있다는 공기오염 예방 상품이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스모그가 중국인들에게 주는 유일한 긍정적 작용이라고 한다면, 공기는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것. 돈과 권력도 스모그 공기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고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계급 평등’ 수단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오늘도 스모그에 시달리는 중국인들에게 그마나 한 줌 햇살 같은 위로를 던져준다.
박현숙 베이징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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