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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만 찬란한 ‘아베노믹스’

홋카이도 목장은 망하고 있는데 정부는 “일시적 타격은 있겠지만 경제는 원활해진다”?
등록 2013-06-20 10:41 수정 2020-05-03 04:27

며칠 전 우리 집에 홋카이도의 기타미칸나이(北見管內)라고 불리는 오호츠크 해안 지역의 목장에서 생산된 우유가 도착했다. 마셔보니 농후하고 고급스러운 맛이 났다. 고온살균하는 일반 슈퍼에서 파는 우유와 달리 유산균을 살리기 위해 저온으로 살균하고 있다.
이 목장에 홍콩 업체가 우유를 수입하고 싶다며 교섭을 하러 왔단다. 우유의 질이 좋아 비행기편으로 운반하고 그 몫을 가격에 반영해도 충분히 수지가 맞을 것 같다고 했단다. 목장으로선 정말 반가운 상담(商談)이었다. 그런데 교섭은 좌절되었다. 농협에 가맹하고 있는 목장은 생유를 일단 농협에 납품하고 그 뒤 농협이 각 제조업체에 파는데, 농협이 홍콩 수출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아예 농협에서 빠져나와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농협망에서 빠져나오면 융자를 못 받게 되어 불안정한 농업 가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실제 농협에 가맹하지 않고 농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한 사람이 적지 않다.
아베 신조 총리는 5월 중순 경제성장 전략의 하나로 농산물 수출액을 1조엔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 발언은 전혀 새롭지 않다. 2001년 시작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부, 2006년 시작된 제1차 아베 내각에서도 ‘농산물 수출 목표액 1조엔’을 천명했다. 결과적으로 3천억~4천억엔을 달성했는데 목표액을 천명하기 이전과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아베가 똑같은 목표를 내세웠음에도 왜 이 목표가 달성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모른 척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은 ‘목표 1조엔’을 잊었지만 농민들은 아닐 것이다.

엔저 때문에 연료비가 올라 우윳값을 올리고 그러다 보니 계약이 떨어져나가고…. 일본 홋카이도 지역에선 지난해부터 폐업하는 목장이 나오고 있다. 홋카이도의 한 목장.카미시호로초 누리집 갈무리

엔저 때문에 연료비가 올라 우윳값을 올리고 그러다 보니 계약이 떨어져나가고…. 일본 홋카이도 지역에선 지난해부터 폐업하는 목장이 나오고 있다. 홋카이도의 한 목장.카미시호로초 누리집 갈무리

일본 농산물의 수출액을 올리자면 보수적인 농협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아베노믹스는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7월 참의원 선거를 의식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문제 때문에 불안한 농민들의 표심을 붙들기 위해 ‘1조엔 타령’이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하다. 농민은 자민당의 유력한 표밭이다.

앞에서 말한 목장은 아베노믹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베노믹스에는 아베 총리가 ‘세 가지 화살’이라고 표현하는 세 가지 기본 방침이 있다. 첫 번째 화살은 ‘대담한 금융정책’이다. 이 정책의 주요한 내용인 ‘엔저’ 때문에 목장은 연료비가 올라 우윳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 개당 10엔이 오르니 계약이 수십 건 떨어져나갔다. 아베노믹스의 영향이 실제 나타나기 시작한 지난해 말부터 홋카이도 기타미칸나이 지역에서는 폐업하는 목장이 생겨났다. 올해 4월에는 4곳, 5월에는 3곳의 농장이 문을 닫았다.

우유를 생산하자면 날마다 뜨거운 물로 기계를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 그때 쓰는 물을 끓이려면 한 달 200㎘의 등유가 필요하다. 엔저의 영향으로 기름값이 급등해 이 등유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방법이 없다. 이 지역 농장은 한 호당 평균 40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다. 농장이 문을 닫으면 소는 시장에 나가는데 갑자기 시장의 소가 급증해 팔기도 어렵다고 한다.

“엔화가 내리면 일부 업체는 일시적 타격은 받겠지만 전반적인 경제는 원활해진다.” 정치권에 가까운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해왔다. 홋카이도 목장 같은 곳의 희생은 있으나 일본 경제 전반은 살아난다는 뜻일까. 6월13일 일본 주가가 1만2400엔까지 급락했다. 한때 1달러 100엔까지 내렸던 엔이 94엔까지 올라갔고 리스크를 대비하기 위해 주식을 파는 움직임이 확대된 것이다. 첫 번째 화살은 벌써 꺾였다. 한국 신문을 보면 “아베노믹스가 부럽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그런데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숫자는 호경기인데 실제 국민 생활이 좋아질 가망은 보이지 않는다.

김향청 재일동포 3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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