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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네토우요, 본명 SNS에 당하다

‘혐한류’를 넘어 ‘증한류’ 형태를 보이는 일본의 ‘우익 네티즌’… SNS가 자리잡으면서 비판 늘어나, 오프라인에서 ‘한국정벌국민대행진’ 시위 좌절시키기도
등록 2013-05-11 17:48 수정 2020-05-03 04:27

고단샤 논픽션상은 일본 저널리즘에서 권위 있는 상 중의 하나다. 2012년 대상작은 야스다 고이치의 으로 결정되었다. 우익단체인 자이톡카이(在特會)의 정체를 파헤친 내용이다. 자이톡카이는 ‘자이니치(在日)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으로 지금 일본에서 뜨거운 관심의 중심에 있다.

지난 3월31일 도쿄 신주쿠 한류거리에서 우익단체 회원들이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편에서 이들의 인종차별주의와 잘못된 역사관을 비판하는 시민들이 인도에 모여 항의하고 있다. 한겨레 정남구 기자

지난 3월31일 도쿄 신주쿠 한류거리에서 우익단체 회원들이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편에서 이들의 인종차별주의와 잘못된 역사관을 비판하는 시민들이 인도에 모여 항의하고 있다. 한겨레 정남구 기자

2007년에 결성된 자이톡카이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일본에는 재일 조선·한국인들에 대한 특혜적인 조치가 많고 이로 인해 일본인들이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 자이톡카이의 주요 활동가들은 시위·집회 등 오프라인 활동을 하고 있으나, 이들을 지지하는 층은 인터넷상에서 익명으로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에게 악담을 퍼붓는 ‘네토우요’(넷우익)다. 예를 들어 트위터에서 재일한국인을 찾으면 “개고기를 먹는 야만인”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식의 멘션을 날린다. 나도 몇 번 그런 멘션을 받은 적이 있는데 거의, 아니 하나도 빠짐없이 익명 계정이었다. 혹 그런 행동을 비판하는 일본인이 나타나면 “너 한국인이지” 하고 대응한다. ‘혐한류’라는 말이 있지만 그들의 언행을 정확히 표현하자면 ‘증(憎)한류’다. 얼굴이 안 보이는 네토우요들의 악의에 찬 언동은 재일 조선·한국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맨 처음 자이톡카이 회원이 거리에서 “재일한국인은 특권 계급이다!” “재일한국인들이 언론계를 중심으로 남모르게 일본을 점령하려 한다”고 외쳤을 때, 워낙 생뚱맞아서 신경 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최근 거의 매주 도쿄 신주쿠와 오사카의 한인 거리에서 벌어지는 ‘한국정벌국민대행진’ 시위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이들은 시위를 벌이며 “한국인을 죽여라” 등의 폭언을 외치고 한국인이 영업하는 식당의 간판을 발로 차거나 거리를 오가는 일본인에게 “빨리 눈을 떠” 하고 난동을 피웠다.

인터넷상에서는 이런 자이톡카이의 시위에 대항하자고 호소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자이톡카이 시위대가 한국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차별을 하지 말자” “(한국과 일본) 친하게 지내요” 등의 글을 쓴 플래카드를 손에 들고 거리에 섰다. 결국 그 수가 시위 참가자를 넘어서 자이톡카이의 시위를 무력화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의 사례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한국의 네티즌들은 개혁적 성향을 띠고 있다. 반면 일본에서 네티즌이라고 하면 익명의 네토우요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본명을 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자리잡으면서 익명의 네토우요에 의문을 가지거나 대항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자이톡카이가 말하는 재일한국인들의 ‘특권’이란 주로 재일한국인들에게 부여되는 특별영주권, 통명(일본에서 통용되는 이름) 사용 등이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은 식민지 시기에 끌려온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일본에 건너온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무조건 영주권을 부여하는 것은 부당하며, 그들에게 ‘통명 사용’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한다. 또 생활보호금 수급자 중에 재일한국인이 많다는 것을 문제 삼는다. 일본에서 연금제도가 시행될 당시 고령 재일한국인들이 배제되었기에, 이들이 노령연금 대신 생활보호금을 받게 된 역사적 배경이 엄연히 있는데도 말이다. 에 따르면 자이톡카이 회원에는 비정규직이나 실업자 등 저소득자층이 많다. 즉, 사회에 불만을 가진 자들이 인터넷에서 재일한국인들의 ‘특권’을 구실로 화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4월 말, 아베 신조 내각의 각료들이 줄지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보수 정치인들의 이런 행동은 국민의 불만을 정권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 정치인들이 처음부터 의식했는지는 알 바 없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자신의 지지층에 네토우요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 증거로 자민당이 그렇게 열심히 외면해온 ‘인터넷 선거활동 금지’ 해제를 집권하자마자 상정했고 4월30일 통과시켰다. 올여름에 진행될 참의원 선거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이 네토우요를 중심으로 한 인터넷 수구파일지, SNS를 통해 연대한 새로운 세력일지 주목된다.

도쿄(일본)=김향청 재일동포 3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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