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한평생 저당잡힌 집의 노예들, ‘집 안 사기 운동’에 공감
▣ 베이징=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미국의 한 노부인과 중국의 한 노부인이 천당에서 우연히 만나게 됐다. 중국 노부인이 말했다. “나는 30년 동안 죽어라고 돈을 모아서 말년에야 겨우 집 한 채를 마련했다오.” 그러자 미국 노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30년 동안 큰 집에서 살다가 죽기 전에 그 대출금 전부를 갚았다오.”
지난 20세기 말에 중국인들 사이에 널리 회자됐다는 ‘미국 노부인 이야기’다. 그 뒤 세기가 바뀌면서 이 이야기도 새로운 ‘버전’이 출시됐다. 미국 노부인에게서 ‘한 수 배운’ 중국인들이 은행 대출을 통해 내 집을 마련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결론은 역시 ‘비극’이다. 최근 중국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버전업’된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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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30년의 세월이 흘러, 미국의 노부인과 중국의 노부인이 다시 천당에서 만나게 됐다. 중국 노부인이 말했다. “당신네 미국인들에게 한 수 배워서 나도 30년 전에 은행 대출을 통해 집을 한 채 샀는데, 죽기 전에야 겨우 그 대출금을 다 갚았다오. 그런데 사는 게 얼마나 피곤했는지 알아요?” 미국 노부인이 의아하다는 듯이 “내 집이 생겨서 좋으면 좋았지 사는 게 피곤했다니 무슨 말이오?”라고 묻자, 중국 노부인은 “매달 대출금을 갚느라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데요”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미국 노부인은 다시 의아해졌다. “미국에서는 집값이 일반 사람들의 평균 수입에 비례하기 때문에 한 6년 정도 월급을 모으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오. 중국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이에 중국 노부인이 한숨을 쉬며 중국인들이 ‘피곤한 이유’를 설명해줬다. “우리는 당신네와 사정이 달라요. 중국인들의 한 달 평균 임금은 3천~4천위안이라오. 그런데 집값은 한 평당 1만위안 가까이 되기 때문에 은행에서 집값의 70~80%를 대출받아 그것을 20~30년 동안 매달 갚아나간다오. 즉, 매달 갚아야 하는 대출금과 그 이자를 합하면 월급의 대부분을 은행에 갖다바치는 셈이죠. 그러니 사는 게 안 피곤하겠소? 매달 대출금 갚는 날이 가까워지면 가슴이 다 벌렁거려요.”
2006년 중국에서 가장 ‘유행’하고 있는 신조어 중 하나가 ‘집의 노예’라는 뜻의 ‘방노’(房奴)다. 신판 ‘미국 노부인 이야기’는 21세기 들어 ‘집의 노예’로 전락한 중국인들을 풍자하고 있다. 1998년 이후 일체의 주택 배급제도가 폐지되고 개인이 ‘알아서’ 집을 마련해야 하는 시대가 되면서 많은 중국인들이 당시 정부가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내놓은 파격적인 은행 대출 제도를 이용해 ‘마이 홈’을 구입했다. 2000년 이후에는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이런 은행 대출 제도를 통해 집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부동산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폭등하고 은행 대출 이자도 갈수록 오르면서 지금 중국인들은 은행에 한평생을 저당 잡힌 ‘집의 노예’가 돼버렸다. 대부분 결혼을 한 남편의 친구들만 봐도 그렇다. 그중 한 친구는 은행빚에다 주변 지인들에게까지 돈을 빌려서 집을 샀지만 자신과 부인의 수입으로는 매달 그 빚을 다 갚아나가기 힘들어서 자주 부부싸움을 하다가 결국 이혼을 했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저축은커녕 돈 들어가는 여가 생활은 꿈도 못 꾼다. 사정이 이러니 ‘방노’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수밖에.
지난 4월 중국 선전의 한 시민은 인터넷에 “더 이상 집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 우리 모두 3년 내에 집을 사지 맙시다!”라는 글을 올려 큰 화제가 됐다. ‘집 안 사기 운동’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된 이 사건은 중국 내 많은 ‘방노’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정부에도 적지 않은 압력을 가했다.
한 달 평균 임금이 3천~4천위안이거나 그 이하인 사람들이 대부분인 나라에서 무슨 ‘배짱’으로 부동산 가격이 한 평당 1만위안을 호가하는지, 중국의 수많은 ‘방노’들은 묻고 있다. 그리고 분노한다.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 우리는 은행에 한평생을 저당 잡힌 집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 만국의 ‘방노’들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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