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대학까지 무료에 개학지원금까지 지원하는 교육 선진국 오스트레일리아
▣ 시드니=권기정 전문위원 kjkwon@hotmail.com
얼마 전 오스트레일리아의 각급 학교가 여름방학 개학을 며칠 앞뒀을 때다. 회사의 K선배가 불쑥 편지 한 장을 내밀며 “이거 돈 맞지?” 하고 물어봤다. 편지를 읽어보니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가(오스트레일리아의 교육제도는 대학은 연방정부가, 초등학교∼고등학교는 주정부가 관장한다) 아이들 개학 준비에 사용하라며 편지지 아랫부분에 50달러짜리 수표를 붙여서 학부모들에게 보낸 것이었다.
모리스 예마 주 총리가 자녀가 있는 모든 가정 앞으로 보낸 이 편지에는 총리 역시 4명의 아이 아빠로서 자녀의 개학을 앞둔 부모가 얼마나 분주해지고 준비할 것이 많은지 익히 잘 알고 있다며 새로운 학기를 맞이하는 자녀에 대한 부모들의 각별한 관심을 부탁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모든 학생들에게 일명 ‘오스타디’로 불리는 학비 보조금도 지급하고, 개학 때마다 이런 유의 개학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의 메이저 신문사에서 북한 전문기자로 잘나갔던 K선배는 지난해 하순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온 뒤 아이들의 방학과 개학을 처음 맞이했으니, 주정부의 이런 편지가 낯설고 신기했다. K선배는 한국서 자신이 지냈던 학창 시절은 물론이고 학부모로서도 국가로부터 교육과 관련된 서비스나 복지 혜택을 거의 받아본 적이 없으니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이런 세심한 배려에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배의 말을 빌리면 그야말로 한국에서는 체험해보지 못한 ‘충격적 사건’이었다.
K선배는 “아니 애들이 개학하는데 왜 정부가 나서서 개학 준비를 걱정하고 돈까지 주는 거야” 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래서 오스트레일리아는 교육복지 제도가 잘돼 있다는 건가봐” 하면서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 보였다. 국가가 해준 작은 것에도 감동하는 K선배를 보면서 대부분의 교육비를 국가가 내주면서도 아이들 용돈이며 개학 준비 비용까지 걱정해주는 오스트레일리아는 복지 선진국으로서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자유주의를 정책 노선으로 하는 하워드 총리가 지난 10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복지 예산이 노동당 집권 때보다 많이 삭감되긴 했지만, 여전히 오스트레일리아의 공립 초등학교부터 전문대학(TAFE)은 무료다. 예전에는 대학도 무상 교육이었지만, 최근에는 정부가 학생들에게 대학등록금을 빌려주고 졸업한 뒤 경제적 활동을 할 경우 연봉이 일정 금액 이상 되면 빌려줬던 대학등록금을 매년 조금씩 세금으로 공제해가고 있다. 학비를 후불로, 그것도 세금으로 떼어가니 대학 교육도 거의 무상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이같은 무료 공교육 제도는 사회 구성원 누구에게나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주어야 한다는 공화국 이념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이다.
아직 영국 여왕을 국가의 수반으로 하고 여왕을 대리하는 총독이 존재하는 입헌군주제 국가로서 공화제 도입을 반대하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교육정책에 이런 공화국 이념이 반영돼 있는 것은 적어도 의료와 교육 분야에 대한 복지정책이 오랜 기간 제도화됐기 때문이다. 입헌군주제 국가이고 개인주의 사회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선 교육비의 대부분을 국가가 부담하는 데 반해, 헌법이 명시한 공화국이고 다분히 국가주의적인 교육을 실시해온 한국에서는 교육비를 개인에게 부담시키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교육이 한 사회의 계층 이동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기제인 점을 고려해보면 모든 사회 구성원이 국가로부터 공평한 교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교육복지 프로그램은 아무리 생각해도 매력적이다. 사교육비로 허리가 휘는 학부모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한국에서 특히 곱씹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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